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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새인 Sep 08. 2020

듣자마자 무조건 기분 나빠지는 말

대화할 때 절대 하면 안 되는 그 말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나의 의도와 같이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말들은 내 의도와는 정반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어떤 말들은 이렇게 내 의도와 다르게 전달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제부터 이야기할 '이 말'은 가능성이 아니라 무조건이기에 대화 시에는 피하는 게 좋다. 그 말은 바로,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이 말이다. (자매품: "오해하지 말고 들어")

신기하게도 이 말은 정확히 그 말과 반대의 역할을 하게 된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 우리는 기분이 나빠진다. 온몸은 긴장상태가 되며 싸울 태세를 갖추게 된다. 오해하지 말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단단히 오해할 준비를 하게 된다.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앞으로 나올 말에 혹시나 충격을 받을까 봐 완충작용을 하도록 한 얘긴데 뭔가 억울하지 않은가? 대체 왜 이런 정반대 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






무의식의 장난


지금부터 당신은 사과를 생각하면 안 된다. 절대로 사과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자, 어떤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사과를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부정형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과를 떠올리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그 말에서 부정형은 쏙 빼고 사과를 떠올리라고 받아들이고는 새빨갛고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자동으로 순식간에 떠올려버리고 만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는 말은 우리의 무의식에서는 '기분 나쁘게 들어'로 바뀌게 되어 무조건 기분이 나쁠 준비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부모들이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청개구리냐고 하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말하는 것의 반대로만 한다고 청개구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부모가 청개구리를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하지 마", "장난치지 마" 등 "OO 하지 마" 시리즈의 말들은 아이들의 무의식 속에 자동으로 "OO 해"로 오번역되어 전달되는 것이다. 



연인들이 이별한 후 그 사람을 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그리워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그 사람이 그립다는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하고 꾸역꾸역 자기 삶을 살아 내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을 잊고 잘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잊겠다고 악착같이 받은 편지를 태우고 사진을 지우고 매일같이 '널 잊고 잘 살아보겠어.'라며 이 악물고 있다면 나의 굳은 의지와는 정반대로 그때마다 그 사람을 더 떠올리게 된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 삶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모든 일들은 부정형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특징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말할까?


그렇다면 정말 기분 나쁠까 봐 걱정돼서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고 먼저 말하는 건데 이 말을 안 한다면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그냥 불쑥 말하면 충격받을 수도 있고 너무 마음 상할 수도 있는데? 






먼저 그 말을 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보자. 내가 정말 이 사람이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말이다.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닌지, 혹은 그냥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나를 높이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진짜는 후자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얼마 전에 옆 팀 김대리가 너 말투가 불편하다고 뒤에서 얘기하더라."와 같은 말은 표면적으로는 상대방이 걱정돼서 하는 얘기 같지만 실제로는 내가 불편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얼마 전 김대리에게 들었던 얘기를 끄집어내어 하거나, 혹은 '사람들이 다 너 좋아하는 줄 알지? 그렇지 않거든? 훗'과 같은 질투의 의미가 담겨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듣는 사람은 그런 진심을 귀신같이 느낀다. 그렇기에 말해주어 정말 고맙다고 느끼는 사람보다는, 그 말을 해준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불편해하는 일들이 흔히 생긴다. 그래서 일단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려고 하는 그 말이 정말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꼭 하고 싶고 해야 하는 말인지, 왜 하고 싶은지.  




그래도 꼭 말하고 싶다면?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항상 꾹꾹 참는 게 좋다는 건 아니다. 

위의 예시 상황에서 상대방의 말투 때문에 불편했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굳이 다른 팀 김대리 얘기를 꺼내지도 말고, 무조건 기분 나빠지는 '기분 나쁘게 듣지 마'를 앞에 붙이지도 말고 말이다. 그래도 그냥 말하기엔 조금 마음이 쓰이고 당신이 쉽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얘기하기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 '내가 고민을 좀 해봤는데...' 등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상대방이 자세를 고쳐 앉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위의 말들은 무조건 기분 나빠지는 말은 아니니까 말이다. 



기분 나쁘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정말 기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는가. 그런 마법 같은 말은 없다. 그런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생각해준 듯 포장하려는 속임수는 쓰지 말자. 우리의 무의식이 당신과 상대방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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