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표현 방식과 정신건강에 대하여
참으면 병 된다?
화가 났을 때 참기만 하면 마음에 병이 생길까 경계하는 이 말, 사실일까?
실제로 분노가 쌓인 상황을 매번 혼자 삭힌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이 오래되면 정신 건강에 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게 더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분노 표출이 정신 건강에 이로움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그리 쉽지 않다.
화를 내는 게 득이 되기 위한 조건
일단 분노의 대상자에게 공격 행동을 하게 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보복을 통해 분노가 진정될 수 있음을 밝혀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으로만 화를 가라앉힌다. 그마저도 분노 표출의 행위가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남기지 않을 때에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Green & Quanty, 1977; Hokanson & Edelman, 1966; Verona & Sullivan, 2008).
누군가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두려움을 느낄만한 공격 행동을 한 후에 홀가분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을 곱씹어 보며 ‘잠깐만 참을걸’ 하는 후회를 하거나 미안함을 느낀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분노 표출이 정신 건강에 이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충족되기 어려운 것 같다.
분노의 역습
아이러니하게도 분노의 표출은 분노를 더 키우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 연구에서는 우주항공 회사에서 방금 해고된 100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회사에 가지고 있는 적개심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시간이 지난 후 이러한 기회가 분노를 감소시켰는지를 비교한 결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표현할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큰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Ebbesen et al., 1975). 분노를 표현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정제되지 않은 분노의 표현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야기할 수 있다. 표현 방식의 문제로 인해 상대방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문제로 시작된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져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관계도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관계는 망치기는 쉬워도 회복에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으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참는 게 답일까?
물론 그렇다고 화를 무작정 참고 사는 건 너무 가혹하다. 참는 게 답이라기보다는 분노의 표현이 생각보다 이로움만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관계를 망칠 수 있는 표현들을 하기 전에 잠시 잠깐 멈추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화가 폭발할 것 같으면 3분 동안 현장에서 3m 이상 떨어져 있으라고 조언한다.
작은 행동이지만 순간적인 화를 잠재울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불편한 마음을 공유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비난을 받으면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받은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화살을 상대에게 돌리기 십상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신은 왜 그래?”가 아니라 상대의 행동 때문에 내가 어떤 기분이 드는지를 담백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에는 정답이 없다. 갈등을 키우기 보다는 함께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대화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