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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Jun 29. 2022

철학과 폐지를 당장 멈춰라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19

우리 대학은 2023년도 입시에서부터 철학과 학생모집을 중단한다고 한다.  

"철학과 폐지에 대해 논하라"


'글쓰기에 대한 교양수업'의 중간고사 시험 대체 과제가 철학과 폐지에 대해 본인의 견해를 적어라는 것이다.

이건 뭐 '불난 집에 부채질 하자는 것'인가. 철학과 폐지에 대해 논하라니. 해당 학과 재학생들이 버젓이 등교하고 있는데, '상처에 소금 뿌리자는 것'인가. 그리고 학교차원에서 이미 결론 난 것 가지고 뭐 하자는 것인가. 과제치고는 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닥쳐온 현실을 인정하고 공론화할 개연성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결론이 난 사항일 망정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길이 대학다운 모습일 것이다.


같은 인문대학 내에 철학과 사무실이 위치해 있어서 전공수업 들어갈 때마다 과사무실 앞을 지나쳐야 한다. 스쳐 지나갈 때마다 열린 틈으로 과사무실에 앉아있는 학생들과 눈이 마주치면 애써 피했다. 해당 학과 학생들은 폐과에 대해 담담한 것인가, 과사무실 게시판에는 철학 관련 강좌 안내 프로그램이 여전히 손짓한다. 개인적으로도 철학과 폐과 소식을 듣고 아쉬움이 있었다. 1학년을 지나서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는 2학년쯤 되면 철학 관련 강좌를 듣고 싶었다. 글이라는 것이 쓰는 사람의 인문학적 소양의 발현이라면, 좀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바탕에 철학적 소양이 필요할 것이다.


같은 인문대학내에 철학과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었는데 아쉽다. 더구나 이번 철학과 폐과 조치가 철학과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문대학내에 설치된 여타 다른 과에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것이 뻔할 것이다. 취업이 안되니 입학생이 미달되고 입학생이 미달되니 폐과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교육부 지원도 받지 못하는 등 악순환이다. 요즘  대학의 위기는 인문대학부터라는 말이 더욱 실감 난다. 물론 신입생 충원이 안된다고 올해 당장 문 닫는 것은 아니지만, 철학과 폐과가 인문대 구성원들의 열정을 떨어트릴까 우려스럽다.  

          

철학과 폐지에 대해 800자 내외로 논하라.

주제를 받고서 고민했다. 1) '폐과를 찬성'하는 논조로 글을 쓸까 아니면 2) '폐과를 반대'하는 논조로 글을 쓸 것인가. 어차피 폐과는 현실이고 결정 난 사항인데, 반대해 봤자 실익이 있을까. 폐과를 하지 않으면 구조조정 미이행 학교로 교육부에 낙인찍혀서 연간 수십억의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뜬구름 잡는 식의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하는 주제를 잡아서 과제로 제출해야 학점에 도움 되는 것 아닐까.


다른 학생들은 어느 쪽 방향으로 글을 쓸까 궁금했다. 어차피 쓴다면 대다수 학생들이 쓰지 않는 방향으로 쓰는 것이 채점자 눈에 더 잘 띌 것 아닌가. 등등 명분과 현실 그리고 자기 개념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철학과 폐지를 반대하는 논조로 글을 쓰기로 했다. 나는 철학과 폐지를 반대한다. 소양 부족으로 철학과를 전공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철학 주변부 공부는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대학이 꼭 눈앞의 돈벌이에만 봉직해야 하는 것인가!


---------------과제 제출


철학과를 강화해야 대학이 살아남는다.


  취업률이 저조하고 신입생 충원이 힘든 학과는 무조건 폐과 되어야 한다는 논의를 당장 철회하라. 그런 비이성적이고 반 지성적인 행위는 대학의 존립 가치를 대학 스스로 떨어뜨리는 저급한 행위다. 대학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인식한다면 철학과 폐지를 쉽게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기원전에 발생한 철학은 생각하는 인간으로 사유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물질문명이 심화될수록 사유와 사유에 대한 분석 비판 기능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철학에 대한 수요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필요한 학문이다.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실용학문을 통해 단기간 내에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고 해서 경제발전이 전적으로 실용학문만의 덕은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동 서양의 철학이 자리 잡고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결정해야 하는 때가 왔다.  단순 직업인을 양성하는 고등 직업 훈련소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긴 호흡으로 철학적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적 지성인을 양성하는 길로 갈 것인가. 지난 시절 우리는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팽창과 실용 제일주의로만 살아왔었다. 대학별 특성이나 차별화는 고려하지 않았었다. 오직 양적으로 취업 제일주의로만 달려온 결과 오늘날 구조조정에 직면한 형국이다. 직업 훈련소로 연명하는 대학은 다른 대안의 고등 직업 훈련소가 등장한다면 필연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집단 성찰을 위한 철학과는 대학이 존재하는 큰 이유다. 모든 대학이 실용학문 위주로 학과를 편성하고자 하는 이때가 기회다. 지금이 기회다. 오히려 우리 대학에서는 철학과 및 인문학과를 더욱 강화하고 투자하여야 할 적기인 것이다. 긴 안목에서 미래를 보는 혜안으로 인문교육을 보강하고 철학과를 더욱 강화하라. 차별화해라. 시류에 따르지 않는 대학만이 결국은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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