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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Jun 25. 2022

너무 한낮의 연애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18

점심을 먹고 도서관 앞 나무벤치에서 과제용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고 있었다. 6월의 햇살은 따가웁지만 커다란 나무 그늘 밑은 선선하다. 에어컨이 주는 실내의 쾌적함도 좋지만, 한낮의 나무 그늘이 주는 시원함은 청량감까지 덤으로 준다. 지나치는 학생들의 대화와 웃는 소리는 백색소음이다. "너무 한낮의 연애"를 하다 보니 누가 가까이 다가왔는지도 몰랐다.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니 앳된 남학생 하나가 살며시 종이컵을 내민다. 누구지? 하는 궁금증이 드는 순간 "음료 한잔 드세요. 드리려고 일부로 사 왔어요" 내미는 컵을 엉겁결에 받아 들었다. 엉거주춤 일어서며 "누구세요?"라고 묻자 "같은 강의를 듣는...." 말 끝을 흐리면서 성큼성큼 멀어져 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굴까 더 궁금해진다. 같은 전공? 같은 학번일까? 아니면 보강 듣는 선배? 교양수업에서 만난 학생? 처음 본 얼굴 같기도 하고 몇 번 마주친 얼굴 같기도 하다. 내가 받은 호의에 대해 보답해야 할 텐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불안해진다. 설령 만난 다고 해도 얼굴이나 기억할 수 있을까?  원래 눈썰미가 부족해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 못 하는 편이다. 사회생활하면서도 상대방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여 종종 오해를 받던 나였다.


마스크를 쓰고 수업시간에만 만나니 얼굴 인식이 참 어렵다. 맨 얼굴로 만나서 서로의 인상을 알고 난 뒤 마스크를 썼다면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마스크를 쓰고 만난 사이라 마스크를 벗으면 또 다른 인물로 보인다. 몇몇 젊은 학우들과 식당에 갔다가 마스크를 벗자 드러난 맨 얼굴들이 참 생경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따뜻한 "녹차라테" 한잔을 주고 멀어져 가는 학우의 뒷모습을 부드러운 느낌으로 저장했다. 아직도 한낮이었다.      

   

오늘의 수업은 지난주에 읽기 과제로 제시한 "소설 한낮의 연애"에 대해 논하기다.

  

너무 한낮의 연애 저자: 김금희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 인하대 국문과 졸업.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 당선. 주요 저서로는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이 있다. 2015년, 2017년 젊은 작가상, 2016년 젊은 작가상 대상,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우현예술상, 2020년 김승옥 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


세상이 변하듯이 로맨스 문법도 변하고 있다.

고전으로서의 로맨스 소설의 시작이 권선징악이나 신데렐라 유형이었다면 요즘 로맨스 소설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남 여주인공의 캐릭터도 많이 바뀌어 왔다. 사랑받는 여주인공 입장에서 사랑하는 여주인공으로 바뀌었듯이, 남주인공도 야성적인 마초남에서 도회적 알파남에서 신데렐라 맨까지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어쩌면 우리, 지금, 이 시점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이는 이 시대의 사랑이야기는 모범답안이 없다. 더구나 너무 한낮에 드러난 우리들의 연애는 너무 초라하거나 애써 담백하다.       


과제) '너무 한낮의 연애'에 대한 다음 질문에 답을 하세요


1) 누구에게 더 공감하는지?


필용 씨에게 조금 더 공감하는 척하면서.

현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답답함이 먹물 묻은 습자지처럼 대책 없이 번질 때, 우리는 종종 과거를 소환한다. 그러나 떠올린 추억은 마냥 총천연색이 아니다. 내향적인 성격의 식물형 인간인 필용은 옛 연인을 16년 만에 만나지만, 결국 외면한다. 그는 항상 현실에 대한 불안심리에 젖어 살아왔다. 액셀레이터 페달을 밟으면서도 미래만을 생각하도록 조율된 삶에 익숙해졌다. 사랑도 미래를 생각하는 과정에 던져져 있었다. 소설을 읽고 느낌을 적다 보니 무미건조한 연애는 심장에서 꺼내 볼 때마다 애처롭다. 그러나 결론이 있는 연애는 심장이 멈춰져 있었다.   소설을 읽고 느낌을 적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 같다.


2) 누가 더 사랑했었는지?


계량할 필요가 없는 우리들의 사랑이 더 쓸쓸하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다. 사랑은 유리그릇 같은 것이다. 사랑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숱한 잠언들 사이에서 연애의 길을 잃고 있다. 그 많은 잠언들은 현실 속에서는 장식용일 뿐이다. 필용이나 양희나 잡히지 않는 미래를 위하여 또는 오늘의 사랑을 저당 잡힐 수밖에 없는 외로운 청춘들을 통과해 왔다.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를 이야기하거나(필용) 발목 잡힌 청춘의 시기를 말없음으로 지나가거나(양희) 표현방식의 차이지 본질은 대동소이하다고 본다. 나는 그들의 가슴 한편에 완전히 휘발되지 않고 남겨진 사랑은 과거 진행형이다. 세월의 더께가 쌓여 그 무게감에 짓눌린 우리들의 사랑은 계량할 수 없을 만큼 쓸쓸하다.    



----------------이하: 책에서 옮김


십육 년 전, 연애는 아니더라도 연애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던 사람과 재회해서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앞으로 어쩌냐는 말이지, 아내에게는 큰 불만이 없는데 아들은 소중한데. 그러니까 안 되었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너무 한낮의 연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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