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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 밭 Mar 27. 2022

농사는 처음이라

논산, 꽃비원

NO FARM NO FOOD. 입구에 흐릿하지만 크게 쓰여진 글씨는 꽃비원의 가치관과 일상을 보여준다. 농장에서 음식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 싶은 나에게 반가운 문구였다.


목련이 하얀 얼굴을 조금 내비치는 3월에 논산으로 향했다. 딸기, 육군 훈련소 등의 키워드로 자주 검색하는 곳이지만 나에게 만큼은 꽃비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꽃비원은 과수와 밭 농사를 짓는 농장이며 직접 기른 제철 채소로 디저트, 음료 등을 선보이는 카페이기도 하다. 월-수는 농장에서, 목-토는 키친에서 일하며 농장과 키친의 밸런스를 맞춰가고 있다.




NO FARM NO FOOD


농장의 일상은 매일 비슷했다. 일하고, 요리하고, 먹고, 쉬고. 반복되는 일상에도 매일 다르게 채워졌고, 각각 다른 의미로 재미있었다.

첫날엔 콩을 심기 위해 밭을 정비하고, 풀을 뽑았다.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어엿한 콩밭이 되었고, 일정한 간격을 두어 콩을 심었다. 나의 첫 작물 심기였다. 잠시 후 새참을 먹었다. 직접 캔 쑥으로 만든 쑥떡과 직접 기른 콩으로 만든 콩고물. 평범한 메뉴였지만 평범하지 않은 첫 새참이었다. 왠지 모르게 진짜 농부가 된 것처럼 설렜다. 겪어보니 여기서는 웬만하면 직접 기른 식재료로 먹을 수 있었다. 꿈꾸던 농장 생활을 실현하며 언젠가 나의 밭에서 콩을 심는 일상이 기대됐다.



키친에서 일하는 날에는 매장을 청소하거나 식재료를 다듬었다. 다듬고 있는 작물이 어제까지만 해도 흙 속에 있었다니. 신기하고 대견한 마음이 교차했다. 그렇게 수프에 쓰일 당근과 단호박을 다듬고, 신메뉴 시식을 했다. 사실 키친에서는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었다. 매장 정리를 한 후에는 주로 요리를 하거나, 먹거나, 먹는 얘기를 하거나, 카페 분위기를 즐기는 등 먹는 일로 가득한 일상을 보냈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면 건강하고 행복한 돼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근처 걷기 좋은 곳으로 놀러 가곤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도 했고, 산책길을 따라 견훤왕릉에 다녀오기도 했다. 꽃비원 가족들과 함께 부여에 놀러가기도 했다. 부소산성에서 백마강의 경치를 감상하고, 사랑나무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성흥산성에 올라 사진도 찍고, 독수리의 위엄 있는 날갯짓도 감상했다. 아담하고 길게 이어진 부여의 산줄기가 매력적이었다. 일하는 날이건 쉬는 날이건 우리는 농장을 운영하는 평범한 가족처럼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냈다. 먹고, 놀고, 요리하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상이었다.




농사는 처음이라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정말 한 팀이 된 것 같았다. 누군가 삽질을 하면 콩을 심고, 누군가 냉이를 캐면 냉이를 다듬어 요리를 하고, 누군가 쇠파이프를 자르면 수세미 밭에 고정했다. 내가 못하는 것을 누군가는 할 수 있었고, 서로의 도움으로 수세미 밭이 완성되었다. 꽃비원을 돌아보니 여러 사람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아버님께 얻어온 장비들, 지나간 여러 사람들이 심고, 키웠을 농작물, 인테리어부터 소품 하나하나 따스한 도움의 손길이 느껴지는 키친까지. 여러 흔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농장, 그곳에 모인 흔적들만큼 농부님들도 따뜻했다. 나도 그 흔적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콩 밭에 새싹이 나오면, 수세미를 말리는 가을이 오면 3월에 함께 나눈 이야기와 서로의 흔적을 기억해주길 바라며 손을 움직였다.


농사는 처음이라 모든 일이 서투르고, 신기했다. 콩 심은 데서 콩이 나오는 게 신기했고, 냉이와 민들레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처음이기에 느낄 수 있던 기쁨과 배움이 더 컸다. 농사 외에도 자연과 가까이 하는 삶을 배웠다.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고, 또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어떤 시간보다 나에게 귀한 흙이 되어줄 것이다. 미생물 가득한 흙. 이것이 자양분이 되어 앞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큰 힘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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