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몇 가지로 추릴 수 있다.
"그렇게 힘든 일을? 먹고 살기 어려울 텐데."
"땅 있어?"
"부모님께서 농사 지으셔?"
"농사짓는 남자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농사가 어려운 일이란 건 알고 있다. 뒤돌아서면 자라는 풀과의 전쟁으로 매일 쉼 없이 움직인다는 것, 들인 수고에 비해 많은 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 점점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와 기후의 변화 때문에 한 해 농사를 몽땅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것. 뉴스나 주변 사람들의 말로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농사를 짓고 싶다고 생각한 건 제대로 먹고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먹고산다는 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매달 월세와 공과금을 내기 위해, 어떻게든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수익을 벌기 위해, 친구들과 연남동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것들을 먹었지만 나름 즐거웠고, 어떻게 하루가 흘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나름 잘 살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먹고사는 동안 나의 주체성은 점점 잃어갔다. 전자레인지 옆에 가득한 즉석 밥과 가공식품, 그것들로 채워진 일상은 늘 더부룩하거나 부족했다.
그래서 먹는 일부터 제대로 하기로 했다. 매일 점심 도시락을 싸며 내가 먹을 것을 스스로 챙겼다. 퇴근 후에는 고구마를 삶고 신선한 과일을 씻었다. 김밥이 간절한 날에는 아침 6시에 일어나 김밥을 말았다.
"내가 먹는 것을 직접 돌본다는 건 멋진 일이구나."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하지만 마트나 시장에서 구매한 식재료를 대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웠다. 제대로 살기 위해 제대로 먹고 싶었고, 내가 먹는 것들의 절반 정도는 스스로 책임지며 돌보고 싶었다.
어떤 일상을 보내며 어떤 모양을 거쳐 나에게로 오는 것일까? 결국에는 그들이 태어난 밭, 흙으로 찾아가야만 했다. 농장에서 함께 일하며 농사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제대로 먹고살기 위한 시작,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그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다.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무거운 발걸음으로 농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