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움직이는 밭 Mar 27. 2022

농작물은 배를 채우고 꽃은 마음을 채운다

영월, 내 마음에 외갓집

마당을 가득 채운 꽃들과 밭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반겨주는 장미 덩굴, 꽃 향기를 맡고 열일하는 벌과 나비들. 공기 좋고, 흙 좋고, 경치도 좋은 영월의 작은 산골마을에 위치한 '내 마음의 외갓집'. 처음 방문했을 때 내뱉은 말은 "아름답다"였다. 길가에 가득한 들풀과 밭에 줄 지어 자리  잡은 농작물만 보아도 아름답다. 게다가 다양한 꽃들이 어우러진 팜가든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알고 있을 가치와 소용이 있는 '아름다움'


아름답다는 말은 '알음답다'에서 유래했다. '무언가를 알고 깨우쳤다' 혹은 '알고 있을 가치와 소용이 있다'는 뜻이다. 아름답다는 건 '유용하다'라는 의미와도 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딘가 쓸모가 있기 때문에 간직할만한 가치가 있고, 직접 가꾸며 소유하고 싶어진다.

아름다움을 좇는 건 그 자체가 시각적으로 보기 좋기 때문인 것 보다는 시각적인 쾌감을 주고, 자신의 세계를 더욱 확장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가꾸어 터득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아름다움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생산성 위주로 바쁘게 흘러가는 농장에서 아름다움을 고려하는 건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밭에 조금이라도 공간이 생기면 먹기 위한 작물로 채워진다. 그러다보니 꽃이 심겨질 공간이 생길 틈이 없다.



농작물은 배를 채우고, 꽃은 마음을 채운다.


다른 농장과 달리 내 마음의 외갓집에는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비닐, 농약, 큰 농기구, 그리고 텃밭과 꽃밭의 구분이 없다. 앞의 세 가지가 없이 농사를 지으니 하루종일 손이 쉴 틈이 없다. 종종 해가 질 때까지 일이 이어지기도 한다. 매일 땀을 흘리고 몸을 힘들게 하는 작업이지만 일터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텃밭과 꽃밭의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 땀 흘리며 일하다가도 고개를 들면 꽃이 보인다.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 벌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매일 아침엔 새로 피어나는 꽃의 모습을 기대하며 눈을 뜬다. 그렇게 내일이, 다음 계절이 기대되는 일상이 이어진다. 정원을 가꾸는 건 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마음을, 스스로를 가꾸는 과정인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건 우리의 일상을, 마음을, 스스로를 가꾸는 과정인 것이다.


정원은 '가꾼다'고 표현한다. 가꾼다는 건 참 어여쁜 말이다. 무언가를 소중히 대하면서 그것의 본질을 살려, 더욱 발전된 형태로 다듬어가는 과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서는 수고를 들여 가꾸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힘겹지는 않다. 밭에 심겨진 농작물이 우리의 배를 채우듯 정원의 꽃은 마음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정원에서 시작되어 일상에 스며든 아름다움은 분명 우리 삶을 풍요롭게 가꿔줄 것이다.






이전 13화 우리가 맛으로 먹나, 정으로 먹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