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달팽이 텃밭
꼬불꼬불한 산 길을 지나, 좁은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숲길을 따라 '여기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하며 들어가니 펼쳐진 풍경은 여기까지 오는 모든 과정을 납득시켜주었다. 소백산 자락의 풍경이 동양화처럼 펼쳐진 단양의 말금 마을에 있는 달팽이 텃밭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비탈진 산에 있는 고사리 밭으로 향했다. 산에 둘러싸여 산다는 건 산속에 산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모든 밭이 산에 있다. 산에 밭이 슬그머니 껴있는 것이다. 따로 씨앗을 뿌리거나 물을 주거나 약을 주지 않음에도 자연에서 그대로 자라고 있었다. 이곳의 고사리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약을 뿌리고, 거슬리는 풀을 베고, 온도를 조절하는 대신 나무 사이로 흐르는 바람과 샘물, 햇볕, 그리고 새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날이 추우면 충분히 올라오지 못하고, 수확량이 일반적인 고사리 밭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고사리에게는 가장 편안한 환경일 것이다.
고사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바짝 들어 올린 고개는 앙증맞은 아기의 주먹처럼 보였다. '똑' 하는 소리와 함께 고사리를 하나하나 꺾을 때마다 축축하고 향긋한 고사리 향이 번져나갔다. 경사진 고사리 밭을 오르며 처음 고사리를 꺾어보았다. 삶아지기 전 고사리의 모습을 보는 것도, 고사리를 '꺾는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낯설었다. 5월이 제철이라는 것도 처음 깨달았다. 마트에 가면, 산채 정식 식당에 가면 늘 먹을 수 있던 나물이었기에 처음 마주한 고사리의 민낯은 조금 생소했다.
처음으로 독립해 자취를 하던 시절, 싱크대 위 쪽 천장에 전등이 나간 적이 있었다. 천장은 너무 높았고, 발을 딛고 올라설 의자나 물건도 없었다. 무엇보다 전등을 갈아본 적이 없었다. 엄청난 고민 끝에 옆 집에서 의자를 빌리고, 다이소에서 전등을 구매하고, 유튜브에서 전등 가는 법을 검색했다. 태어난 지 이십여 년 만에 전등을 교체하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전등 아래 살아오고, 보내왔을 테지만 내 손으로 전등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산에서 마주한 고사리도 그랬다. 식탁에서 수없이 마주하고, 소화시키고, 덕분에 에너지를 얻었던 고사리를 내 손으로 만지고, 꺾어내고, 날것 그대로의 향을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고사리가 지나왔을 계절을 상상하며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녔다. 고사리를 찾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따사로운 햇볕에 등이 뜨거울 쯤엔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다리가 무거울 때는 나무와 초록 잎들을 관찰하며 잠시 멈춰 섰다. 아침부터 분주한 새소리는 훌륭한 BGM이 되어준다.
자연에서는 보물 찾기보다 쉽게 감사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러 물을 주거나 약을 주지 않아도 자연에서 그대로 자라 주는 고사리에게 감사하고, 힘이 들 때 쉼이 되어주는 그늘과 바람에 감사했다. 고개를 숙여야 발견할 수 있는 고사리, 비탈지고 높은 곳에서도 단단하고 올곧게 고개를 들어 올린 고사리를 보며 삶의 가르침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