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꽃비원
농장에서 재배하는 농산물은 거의 실시간으로 식탁 위에 올려졌다. 오후에 밭에서 캔 돼지감자와 냉이는 몇시간 후 저녁식사가 되었고, 농장에서 캠핑하듯 끓여 먹었던 즉석 떡볶이 위에는 바로 옆에서 뽑아온 쪽파가 송송 얹혀졌다. 그 뿐만 아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집 앞 마당 자두나무 열린 자두는 여름엔 자두에이드가, 동네 매화나무에서 열린 매화는 저녁의 분위기를 더해줄 매화주가, 어머니께서 캐오신 쑥은 카페의 대표메뉴 쑥라떼가 된다.
농장 한켠에서는 계란 자급자족을 꿈꾸며 닭을 기르고 계셨다. 마침 오전에 닭이 낳은 계란은 오후에 당을 충전해줄 달콤한 에그타르트가 되었다. 꽃비원 밭에서 자란 채소는 수프, 샌드위치, 포카치아, 음료 등 카페 메뉴에 활용된다. 이곳에서는 식사의 모든 과정이 명쾌했다. 이렇게 산다면 몸도, 마음도 배부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재료가 거의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이곳에서는 채소 본연의 맛을 더욱 생생하게 즐기게 되었다. 동시에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가령 냉이는 장아찌로 먹을 수도 있고, 채소는 오일과 오븐에 구워 먹으면 본연의 맛과 단맛이 올라와 더욱 생동감있는 맛을 느낄 수 있고, 비트는 구워 먹으면 옥수수 맛이 난다. 맛의 감각에 그리 예민하지 않은 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해주신 농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냉이 된장국
돼지감자구이
쪽파 떡볶이
에그타르트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식사도 비슷하다. 아는 만큼 맛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식재료가 식탁에 올려지는 과정을 경험한 후에는 더욱 특별한 식사를 맛볼 수 있었다. 짧게나마 농산물들이 어떤 마음으로 길러졌을지 이해하면서 식재료 하나 하나를 정성들여 음미할 수 있었다.
농부님은 요리사들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 요리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각 작물마다 가장 연하고 맛있는 시기가 언제인지, 어떤 시점을 지나면 질겨지는지 등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 농사짓는 요리사라니.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직업을 두 가지나 가지고 계신 꽃비원의 농부님들이 더욱 빛나 보였다.
그동안 농산물은 하루 세 번 가공되거나 조리된 형태로 접해왔다. 기껏해야 옥수수 껍질 다듬는 정도. 그것들이 어떻게 나고 자랐는지 눈으로 보고 만지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식사의 의미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도 우리집 식탁을 책임지는 농부가 되고싶다. 적어도 나의 식탁 위 식재료는 직접 심고, 기를 줄 아는 작은 농부가 되고싶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더욱 특별했던 식사의 경험을 모든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집 앞의 작은 농부가 되고, 아는 농부 한 명 쯤, 아는 농장 한 곳 쯤은 있는 일상이 되면 좋겠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 속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기억하고, 식사의 모든 과정에 의미를 찾으며 즐길 수 있는 일상을 꿈꾼다.
운이 좋게도 나의 소울푸드 '김밥, 쌀국수, 카레'를 모두 먹었다. 특히 함께 먹었던 카레는 먹어본 카레 중 가장 맛있었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국물을 몸보신 하듯 두 그릇 해치웠다.
농장에서, 집에서, 키친에서, 음식점에서 많은 식사를 함께 했지만 가장 좋았던 식사는 큰 창이 있는 집 테이블에서 함께 하는 식사였다.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늘 가지런하게 담겨있던 음식은 주 메뉴이면서도 부수적인 메뉴이기도 했다. 하루의 일과나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서로의 취향과 꿈, 농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먼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선배님의 말을 듣듯이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귀중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떠나는 날 농부님은 작은 엽서를 손에 쥐어주셨다. 며칠 전 맛있게 먹었던 카레 레시피가 담겨 있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뭉클해졌다. 같은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어디서든 또 만날 앞으로의 날들을 그려진다.
함께 먹었던 음식 만큼이나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