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소비의 시대다. 하루에도 수십만 가지의 물건이 생산되고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길 기다린다. 누구나 손쉽게 물건을 살 수 있다. 인터넷으로 클릭 한 번이면 이 세상 어디에 있는 물건이든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다.
인간의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바로 이런 소비의 시대가 낳은 부작용이 아닐까.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더 많이 팔아야 하고, 더 많이 사야 하고, 그러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하고, 더 많은 돈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른 채 그저 열심히 소비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점점 인간 냄새를 지워가는 것은 아닐까.
꼰대처럼 옛날과 비교를 하고 싶진 않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으니까),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자랐던 그 시골 마을에는 많은 '물건'은 없었지만 무한한 '물건'들이 있었다. 흙과 나무와 강물, 곤충과 동물들은 그 어떤 '물건'보다 다양하고 질리지 않는 장난감이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집에 가득 차 있는 아들내미의 수많은 장난감 중 그 어떤 것도 시골마을의 '물건'들 보다 나은 것은 없다. 어쩔 수 없다. 시대는 많이 변했으니까.
언제부터일까. 이렇게 물건들로 꽉꽉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서 살게 된 것은. 분명 처음 이사 올 때는 넓은 집이었는데 어느새 의자 하나 들일 공간도 없을 정도로 집은 좁아졌다. 아니 물건이 많아졌다. 아이 장난감, 옷, 책. 주방가구, 생활용품, 옷 등. 물건을 사기 위해 일하고 사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내 방만 보아도 그렇다. 한쪽 벽면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 이사할 때 과감하게 한번 정리를 했지만 여전히 책은 넘쳐나고 테트리스를 하듯 책꽂이에 이리저리 가득 차 있는 책들. 중고서점에 가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라며 반갑게 집에 사서 들고 왔는데, 이미 책꽂이에 버젓이 꽂혀 있는 겉표지만 다른 똑같은 책. 그때 받았던 충격.
그래. 이제는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물건이 가득 차면 그 공간만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도 함께 복잡해진다. 청소를 하면 정신도 맑아지는 것과 반대로 물건으로 가득 차면 내 머리도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찬다.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고 내 머리도 비워야겠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물건을 줄이는 일이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일이라 했다.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내가 잊고 있을지도 모를 숨어있는 행복을 찾기 위해, 우선 책부터 정리해야겠다.
책꽂이를 천천히 둘러보니 예전에는 그렇게 읽고 싶었지만 이제는 흥미가 떨어진 책들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다. 그중에 깨끗한 책만 골라내어 중고서점으로 가져가자. 읽고 난 후 내가 과대평가를 했다고 깨달은 책들을 우선 꺼내야겠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발견해 줄 그 누군가를 위해 책을 정리하자.
그런 때가 있었다. 물건을 사는 것으로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했었다. 물건을 샀을 때 몰려드는 쾌감과 만족, 행복감.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 살 수 있다는 허영심. 그와 동시에 늘어 나는 빚. 그런데 이제는 깨달았다. 물건을 샀을 때 보다 어떤 물건이든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쾌감이 더 크다는 것을. 물건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길어야 몇 주지만 경험을 통해 얻은 행복은 평생 간다는 것을.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느냐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 물건으로 자신을 나타내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좀 달라야겠다. 정말로 내가 필요한 물건만 사려 노력하고, 물건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로 매력을 뽐낼 수 있을 만큼 깊어져야겠다. 물건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경험이든 똑같다. 성장하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소화하지 못한 것은 소화시키고, 삼키기 힘든 것은 버려야 한다. 비워야 새로워진다. 비워야 행복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그 모습을 위해 계속 비우고, 그 빈 공간에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채우고 소화시키자. 그리고 다시 비워진 그 공간에 다시 새로움을 채우자. 그렇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