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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03. 2022

제1화 산티아고 길 위에 서는 이유

드디어 출발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이동 : 세종~인천(공항버스, 2시간 40분)


드디어 출발이다

계획한 대로 잘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막상 배낭을 싸고 여행길에 나설려니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방콕에서 걷기 운동을 꾸준히 했고, 올해 초에 귀국해서도 가능한 한 자주 걸었다. 일주일에 이삼일 정도는 퇴근 후에 뒷산에 올라갔다. 주말에는 15km 내외의 트레킹 코스를 찾아다녔다. 다리에 힘도 붙고, 걷기에도 재미가 어느 정도 든 상태다. 그래도 걱정이다. 계획한 20일, 400km가 넘는 길을 하루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을까? 


배낭을 메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평소 걷기를 다닐 때는 배낭을 메지 않는다. 배낭을 가지고 걷는다고 해서 짐이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순례길을 가면 10kg 무게의 배낭을 매일 메고 다녀야 한다. 몸이 견디어 줄까, 버티어 줄까?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오게 되는 건 아닐까? 발에 물집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알베르게라는 곳에서 여러 낯선 사람들과 잠을 자야 하는 것도 걱정이다. 잘 때 코를 많이 곤다. 아내는 많이 무신경 해졌다고 하지만, 타국의 그들은 무슨 죄인가. 나 때문에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매일 그렇게 긴 거리를 걷고 나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피곤할 테고 그들도 코를 골지 모른다. 서로 골면 덜 미안해해도 되지만 그러면 내가 잠을 못 잔다. 남들을 못 자게 하는 것도, 내가 못 자는 것도 걱정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걱정스러운 건 코로나다. 외국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제출해야 비행기 탑승이 가능하다. 혹시라도 귀국 즈음에 코로나에 걸리면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호텔, 식사 등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 시국에 외국을 나가서 코로나 걸려 귀국도 못하고 출근도 못하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에휴~. (2022.9.3자로 입국자 코로나 의무 검사는 해제됨)


산티아고 길 위에 서는 이유

그나저나, 나는 왜 산티아고를 갈려고 하는 걸까? 기독교적 신앙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쉰 중반을 넘은 인생 후반기에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적 고행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편하지 않은 고생길을 걷겠다고 몇 달에 걸쳐 준비하고,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실행하는 이유가 뭘까?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생각했다. 왜 이 길을 걷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건지, 많지도 않은 버킷리스트에 버젓이 올려서 오랫동안 꿈꾸어 온 건지. 막상 그 길의 출발선에 선 지금도 명확히 떠 오르는 게 없다. 뭘까?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이다. 파올로 코엘료의 <순례자>다. 1987년에 코엘료가 쓴 이 책에는 성 야고보, 콤포스텔라, 은하수길, 태양, 조개껍데기, 별이라는 말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 놓는다. 그랬다. 이 책을 읽고서 낯설고 삭막한 그곳에 꼭 가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그저 막연한 바람이는 생각에 버킷리스트에 올려 놓았을거다. 버킷리스트라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바람이지 않나.  

영화도 생각난다. <나의 산티아고, 독일어: Ich bin dann mal weg>는 2015년 공개된 독일의 영화로, 하페 케르켈링의 기행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무대에서 과로로 쓰러진 연예인 하페 케클링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쓰게 된 긴 휴식에 적응이 안 되는 하페는 곧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나 삶의 의미를 찾기로 결심한다. 갑작스럽고 뜻하지 않게 그리고 충동적으로 순례자의 길을 나서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무척이나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나도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렇게 책과 영화, 그 속의 이야기들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아무렴 어떤가? 오랫동안 꿈꿔오고 준비한 여행이다. 인생을 되돌아보겠다는 거창한 의미가 없으면 또 어떤가. 성 야고보의 종교적 숭고함이 전혀 없던들 어떤가. 길이 있으니 걷는다. 제각각 의미를 가지고 그 길을 걷는 낯선 동무들이 있으니 걷는다. 걷다가 보면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지 깨달음이 올 지 누가 알겠는가. 


'그나저나 배낭은 왜 이리 무거운 거야. 내 마음을 비울 게 아니라 이 배낭 속의 짐들 중 무엇부터 버릴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하나?'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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