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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03. 2022

제3화 밤기차를 타고 생장으로

파리~생장 피 에드 포드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파리 아우스터리츠(Paris Austerlitz) ~바욘(Bayoone, €138.4)

#바욘~생장(St Jean Pied De Port, €8.4)

#숙소 : Chambres Zazpiak(2인실 €85)


기차를 기다리며

파리 아우스터리츠(Gare Austerlitz)역에서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공항에서 아우스터츠역으로 바로 오지 않고 중간에 내려서 파리의 망중한을 즐기기까지 했는데도, 출발 시각까지 5시간 이상 남는다. 대합실 나무의자는 딱딱하고, 사람들이 많아 혼잡하다. 파리의 지하철이나 다른 역과 마찬가지로 깨끗하지도 않다. 배낭을 두고 어디 잠깐 다녀오는 것도 걱정이다.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이 도시에는 소매치기가 많다. 

몇 해 전, 파리 여행을 왔을 때다. 노트르담 성당에 입장하려고 서 있는데 뒤에서 누가 툭툭 친다. 돌아보니 외국인 관광객인데, 등 뒤로 향해 있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매라고 주의를 준다. 소매치기가 많다고 조심해야 한단다. 3년 전, 스페인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핸드폰을 잃어버린 경험까지 있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역사 안을 쭉 훑어보니 모두는 아니지만 내 눈에는 반쯤은 소매치기로 보인다. 


눈치 작전 끝에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잡았다. 혹시나 싶어 큰 배낭을 두 사람 사이에 두고 시간이 빨리 가기를 한동안 기다린다. 그런다고 시간이 빨리 갈 리가 있나. 시간이라는 녀석은 항상 반대로 간다. 빨리 가라고 바라고 있으면 언제나 더 느리게 가고, 좀 붙들고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면 뿌리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게 시간이다. 마음을 거꾸로 먹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시간이라는 녀석은 언제나 사람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본다. 


밤기차를 타고 가야 하니 먹거리 준비를 미리해 두는 게 좋다. 역사 매점에는 마땅한 게 없어서 밖으로 나가서 찾아본다. 역 뒤편 길 건너에 있는 카페와 과일가게에서 샌드위치와 사과 몇 개를 사고 다시 역에 와서 기다린다. 21:05 기차에 타라고 핸드폰이 울린다. 파리 교통 앱인 'SNCF Connection'을 설치하고 구간 검색, 티켓을 구매해 놓으면, 출발 시간 전에 알림으로 승차 시간과 장소까지 알려준다. 그렇지 않으면 전광판이 있는 곳에 가서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6인실 침대 열차를 타고

예약한 차량, 호실을 찾아 들어가니 6인실이다. 양쪽으로 3층까지 침대가 있고, 우리 자리는 좌우 3층이다. 침대 열차는 처음인데, 2층까지 있는 기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본 적이 있지만 3층으로 된 6인실은 처음 본다. 사다리를 타고 3층에 올라가니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공간이 좁다. 얇은 침낭 하나와 베개 하나가 침대에 놓여있다. 초저녁에는 덥다고 느꼈는데, 자다가 추워서 침낭 안으로 들어가 잤다.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기절, 기차가 출발도 하기 전에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보니 코 고는 소리도 들리고, 그러다 다시 자다 깨다, 생각보다는 편안했다.


떼제베(le TGV)보다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려 완행열차인 줄 알았더니 기차는 빠르게 달린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복도에 나와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이 나라도 참 넓은 땅을 가졌구나 싶다. 기차는 프랑스 남부의 중심을 지나 서남부로 길게 돌아간다. 빠르게 달리지만 섰다 가다를 반복하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차는 중간 기착지에서 한참 동안 서서 배낭을 멘 사람들, 자전거를 끄는 사람들을 우르르 쏟아낸다. 타는 사람의 거의 없다. 바쁜 파리 사람들이 여름의 긴 휴가를 남부의 한적한 동네에서 보내려는 모양이다. 

밤을 지나, 새벽을 뚫고 날이 한참 밝은 다음에 바욘역(Gare de Bayonne)역에 내린다. 여기서 생장까지는 1시간 거리다. 기차는 바로 연결되지 않고 좀 기다려야 한다. 역사 매점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쓴다. 그러다가 그만 기차를 놓쳤다. 다음 기차는 3시간 뒤에 있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며 잠시 아내와 실랑이를 하다가, 긴 여행의 액땜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시간 동안 예정에 없던 바욘 구경을 하기로 한다. 역에서 나와 쎙떼스쁘히다리(Saint-Esprit bridge)를 넘어 바욘대성당(Cathédrale Sainte-Marie de Bayonne)까지 갔다가 강변으로 나와 다시 역으로 돌아온다. 대성당 돔의 채색은 어느 성당에서도 본 적이 없는 굉장히 화려하다. 빨강과 흰색 우산으로 설치 미술을 해 놓은 듯한 골목도 인상적이었다. 바욘을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으면 후회할 뻔했다. 


순례자 여권을 만들고

바욘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생장으로 간다. 생장까지는 1시간 거리다. 두 칸짜리 지하철 같은 열차인데 좌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 열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생장에서부터 순례길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모두들 들뜬 모습, 상기된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생장에 도착. 순례자들은 우선 순례자를 위한 안내소(Pilgrim Information Office SJPP)에 가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 안내소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가는 곳으로 그냥 따라가면 된다. 이곳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순례자 안내소로 가기 때문이다. 사무실에는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 분들이 앉아 있다. 여권(발급 비용은 €2)에는 이름과 국적, 출발하는 날짜를 기입하고 확인 도장을 받는다. 여권에는 순례 확인 도장(sello)을 찍을 수 있는 칸이 72개가 있다. 순례길에 있는 알베르게, 카페, 성당에는 각자 독특한 문양의 도장을 가지고 있다. 도장을 찍고 칸을 채우는 재미도 있다. 배낭에 성 요한의 상징인 조개껍데기로 하나 단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오늘은 이곳 생장에서 쉬고, 내일 아침부터 순례의 시작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버킷리스트에 올린 지가 20년 전인가. 막연히 생각했던 일이 바로 눈앞에 왔다. 가슴이 띈다. 



#산티아고길위에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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