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롱세바스바예스(Roncesvalles)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걷기 1일 차
#생장~롱세스바예스(Roncesvalles)
#26.3km / 7시간 48분
#숙소 : Roncesvalles Pilgrims Hostel(€14)
- 남녀 구분 없이 2층 침대 배정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코스인 생장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날이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숙소라 밤에는 더위 때문에 잠을 설쳤다. 7월 말의 한여름, 한낮에는 30도를 훌쩍 넘는 더운 날씨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더위와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05:00 시간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너무 깜깜하다. 하긴 생장의 마을 한가운데라도 이 시각이면 어두울 텐데 그보다는 산 쪽으로 더 들어온 곳이라 불빛이 거의 없다. 낮에 보았던 주위의 산과 능선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단지 하늘의 별만이 점점이 박혀 밝게 빛난다.
천천히 짐을 챙겨, 05:48에 출발, 일출이 06:48로 예정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올라가다 보면 날이 밝아 오겠지. 준비해 간 작은 플래시는 배터리가 나갔는지 작동을 안 한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서 낯선 산행을 시작한다. 이른 아침이라 공기가 선선해서 걷기에 좋다. 밤새 잠을 설치기는 했으나, 들뜬 마음 때문인지 컨디션도 좋고 기분도 최상이다. 얼마나 기다리고 준비한 이 길인가. 세종시에 있는 집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는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던가. 드디어 출발점에 섰구나하고 생각하니 기운이 솟는다.
오기 전에 읽었던 여러 가지 안내 책자들과 먼저 다녀간 이들의 글에서 이 첫 번째 코스, 첫날이 무척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않고, 큰 배낭 하나는 동키 서비스(요금 €8, 안내책자에는 €5로 나와 있는데, 국경을 넘어가는 곳이라 가격이 다른 모양이다. 다음 해 2차 순례 때는 기본이 €6로 올랐다)를 이용해서 다음 목적지에 예약한 숙소로 보냈다. 배낭을 메고 걸으면 좀 멋있어 보이기는 할 테지만 무릎 생각을 해야 한다. 출발부터 삐끗하면 걷는 내내 힘들어질 테고 그러면 전체 일정이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욕심내지 않는 것이 좋다.
유럽 본토와 남서부의 이베리아반도 사이를 가로지르는 피레네 산맥의 이 길은 오래전 프랑스의 샤를마뉴 대제와 나폴레옹도 넘으며 힘들어했던 곳이라고 하지 않나. 피레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 피레네(Πυρήνη)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두 지역 간의 문화권을 구분하는 천연적인 국경 역할을 해왔다. 그런 곳을 넘어가는데 어찌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날이 더울 것이라 예상하고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작은 배낭에 물과 간식만 간단히 넣어서 출발한다. 배낭이 없으니 몸이 가볍다. 길은 처음부터 오르막이지만 날이 어두워 플래시가 비추는 바로 앞만 보고 걸으니 힘든 줄을 모른다. 오르면서 서서히 날도 밝아 온다. 어디서 오는 차들인지 간간이 자동차도 지나간다. 아스팔트 포장을 해 놓은 걸 보면, 이 길로 차들이 자주 다니는 모양이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저 아래 부드러운 언덕과 그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빨간 지붕의 집들이 이채롭다.
8km 지점의 700m 고지에 있는 오리손 산장(Refuge Orisson) 도착한다. 출발한 지 세 시간 만이다. 커피와 토르티야(tortilla) 한 조각을 주문해서 순례길의 첫 아침 식사를 한다. 산아래가 보이는 길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갑자기 주위가 안개로 덮이면서 안개비가 내린다. 안개와 함께 찬 기운이 몰려와 기온이 확 내린 듯 춥다. 작은 배낭에 판초우의라도 넣어 왔어야 하는데, 비 소식은 없었고 날은 더울 것이라고만 예상했으니 낭패다. 바람막이 점퍼를 걸치고도 추워서 오들오들 떨릴 정도다. 계속 걸으며 체온을 높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12km 지점에 반가운 푸드트럭이 있다. 늙수그레한 주인장이 우리를 보고 한국인인 줄 대번에 알아보고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가는 모양이다. 오르막이 힘들고, 추위에 떨면서 걷지만 경치는 장관이다. 올라갈수록 끝없이 보이는 주위의 구릉과 낮은 산들이 이곳이 피레네 산맥임을 말해준다. 안개가 깔린 구릉 여기저기에서 산양과 말들이 풀을 뜯는다. 오드득오드득 풀 뜯어먹는 소리가 내 귀에도 참 맛있게도 들린다. 고산지대의 이슬을 머금은 신선한 풀이 얼마나 맛있을까.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오리손 산장을 지나 피레네 정상을 넘어가는 길과 피레네 옆 계속을 따라 발카를로스 마을을 지나는 산아래길이 있다. 피레네 정상을 넘어가는 길은 나폴레옹 군대가 지나던 길이라 하여 나폴레옹 길(Route de Napoleon)이라고도 불린다. 이 길은 겨울에 온 눈이 3~4월까지도 녹지 않고 남아 있어 그 시기에는 길이 폐쇄된다.
나폴레옹 길의 정상은 레푀더 고개(Alto de Lepoeder 1425m)다. 여기까지가 생장에서 20km가 좀 넘고, 고개를 넘어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내리막 초기에는 바위와 돌이 많아 걷기에도 불편하고 경사가 심하다가 내려올수록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숲 사이로 안개가 짙게 깔렸다. 안개에 젖은 나무의 검은빛이 안개의 흰빛과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숲의 신비로움과 영험함을 소리 없이 보여준다.
숲길을 따라 내려와 오늘의 숙소에 도착하니 아직 오픈(오후 2~3시) 전이라 먼저 온 이들이 줄을 서 있다. 동키로 보낸 배낭이 혹시나 길을 잃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무사히 와 있는 걸 보고 안도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날, 26.3km 피레네 산맥 정상을 넘는 코스를 걸어 7시간 48분 만에 무사히 도착한다.
여기는 롱세스바에스다.
#산티아고길위에서다
#매일걷고매일쓴산티아고여행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