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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03. 2022

제5화 순례길에서 만난 냥이와 멍이

론세바스바예스~주비리(Zubiri)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걷기 2일 차

#롱세스바예스~주비리(Zubiri)

#23.0km / 6시간 50분

#숙소: 2인실, (€45)

-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별도 룸이 있는 곳을 예약, 욕실과 부엌 공용


알베르게 첫 경험

아침 06:36 2일 차 순례를 시작한다. 아직 어둡기는 하지만 금방 밝아 오겠지 했는데, 날이 잔뜩 흐리다. 비까지 보슬보슬 날린다. 기온을 보니 13도. 유럽에 폭염이 덮쳤다고 해서 더위 걱정을 하면서 이곳에 왔는데, 오히려 춥다. 추워도 보통 추운 게 아니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마스크, 장갑도 꺼내고 판초 우의도 둘러써 겨우 버틸 정도다. 전날도 산을 넘으며 추위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또 날씨가 이렇다. 날씨야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도리가 없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걷는다. 


오늘은 롱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까지 23.0km 거리다. 롱세스바예스는 피레네산맥을 넘어와 만나게 되는 작은 마을이다. 높은 산맥을 넘어온 순례자들에게 지친 몸과 마음의 쉼터를 제공하는 중요한 곳이다. 오레아가(Orreaga)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롱세스바예스의 바스크식 이름이다. '가시 골짜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알베르게에서의 첫날은 독특하고 낯선 경험이다. 큰 회랑 같은 곳에 수십 개의 이층 침대가 있고, 남녀 구분 없이 배정받는 곳이 자기 자리가 된다.ㅊ먼저 온 사람 순서대로 자리가 주어지는데, 일행이 둘이면 아래위층에 배정을 받는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그나마 남녀 구분되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얇은 침대보와 베개 덮개만 제공되고 담요는 없다. 침대 칸막이가 없기 때문에 맞은편 침대의 아래위가 훤히 보이는 구조다. 어쩔 수 없이 눈인사를 하게 되고 순례하는 동안 가끔 보게 된다. 밤에 코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누가 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행이다. 


어설픈 기도와 경고

알베르게에서 나오면 오른쪽에 롤링의 성 십자가상이 있는 경당이 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작은 문 하나에 성 야고보의 성상이 있고,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잠시 서서 이번 순례가 계획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기도한다. 나의 간절함이 얼마나 어떻게 전달될지는 모르지만,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이 작은 경당은 나의 어설픈 기도를 꼭 들어줄 것만 같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교회 앞 도로를 건너가면서 순례길 시작이다. 2km 까지는 숲길이다. 평평한 길이라 걷기에 좋다. 이 정도면 계획했던 것보다 더 길게 걸어도 되겠다는 오만한 생각이 살짝 들었다. 어제는 피레네산맥도 넘어왔으니 이런 길 쯤은 얼마든지 걷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숲길 끝에서 커다란 개를 만난다. 이 녀석이 순례자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모양이구나 했다. 나도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갔더니 으르렁대며 달려든다. 아이고 식겁이야~ 뒤따라오던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멈춰 서고, 한참을 서로 꼼짝도 하지 않고 대치 상태, 제 녀석도 돌부처처럼 서 있다. 새벽 산책을 우리가 방해 한 모양이다. 하긴 우리가 객이고 제 녀석이 이 동네 주인인 것을. 한참을 서 있다가 한두 번 짖더니 제 집을 찾아간다. 걸으면서 생각을 해보니 그 녀석을 우리에게 경고를 날린거다. 길이 좋다고 욕심내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겸손하게 걸라고 주의를 준 거였다. 


오른편으로 돌아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작은 도로 양편으로 집들이 쭉 늘어서 있다. 마을이 너무나 예쁘다. 이 아름다운 마을 이름은 부르게테(Burguete). 길모퉁이 폐가를 빌려 커피 내리며 살아도 좋겠다 싶다. 12세기에 순례자 숙소가 생기면서 순례를 나선 무역업자와 귀족들이 마을을 찾아 번성하게 된 곳인데, 계적인 문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해 유명해지기도 했던 곳이다. 작은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도로 양 옆으로 이층의 아담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하얀 벽에 까만 창문 앞에는 빨갛게 꽃이 핀 작은 화분이 놓여있다. 지금은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인다. 


길가에서 만난 냥이와 멍이

마을을 빠져나와 들판으로 들어서는 길목, 현금지급기 앞에 다정하게 앉은 새끼 고양이 두 마리. 비에 젖은 모습이 애처롭다.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쳐다본다. 뭔가 먹을거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 말고는 가진 게 없다. 

“미안해 냥이들~”

작은 개울을 건너는데 저만치서 또 한 녀석이 뛰어온다. 이리 와 보라고 불렀더니, 쪼르르 다가온다. 누가 보면 내가 집사인 줄 알겠다. 이리저리 쓰다듬어 줬더니 아예 따라올 작정이다. 가다가 서면 녀석도 서고, 다시 걸으면 졸졸 앞서간다.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산티아고’라는 이름을 지어 기르고 싶었는데 그럴 수는 없어 아쉽다. 넓은 들판에는 하얀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구름은 낮게 내려 깔렸다. 비는 계속 보슬보슬 내린다. 바람이 불어 쌀쌀해도 걷기에는 좋다. 추우면 판초 우의를 입고, 그러다 더우면 벗어 배낭에 걸고.

들판을 2km 정도 지나 에스피날(Espinal)이라는 작은 마을을 만난다. 길 저편에 있는 교회가 참 아름답다. 잠시 서서 교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어느새 멍이 한마리가 옆에 와서는 다리에 얼굴을 비빈다. 털이 복슬복슬한 골든레트리버다. 이 종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중형 견종인데, 매우 온화하고 사교성 좋다. 그래도 그렇지 냄새도 다른 동양인에게도 이리 다정한지, 같이 사진을 찍자고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앉아서 응해 준다. 머리를 쓰다듬으니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나는 사람보다는 개나 고양이가 더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


마을을 지나 다시 산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길게 이어진다. 전날에는 메지 않았던 배낭의 무게도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종아리와 허벅지에서도 힘들다는 신호가 부산스럽게 올라 온다. 21km인 줄 알았는데 손목시계 측정으로는 23km다. 첫날인 어제보다도 짧은 거리다. 조금 더 걸을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냥 빨리 알베르게 찾아서 쉬자는 생각뿐이다. 

'그나저나 길을 걷다 두 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Are you, O.K?라고 물어주던 프랑스 젊은이 세 명은 주비리에서 5km나 더 가야 하는 라라소아나까지 간다고 했는데, 잘 갔을까?'


주비리에 도착해서 2인실 알베르게를 구했다. 샤워하고 아파서 두 시간이나 끙끙 앓았다. 갑자기 몸은 오들오들 떨리고 몸에서 열이 펄펄 끓었다. 이런 걸 순례 앓이라고 해야 하나. 야간 기차에서 에어컨 바람에 차게 자고, 첫날 피레네 산을 넘으면서 찬 기운이 몸속에 파고들었나 보다. 가지고 온 해열제와 이런저런 약을 보약 먹듯이 먹었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 이불 두 개를 모두 덮고 땀을 흘리면서 잤더니 열이 좀 내린다. 아내는 무리하지 말고 하루 더 쉬고 가자고 하는데, 나는 계획대로 가야 한다고 우긴다.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여기는 주비리다. 



#산티아고길위에서다

#매일걷고매일쓴산티아고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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