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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06. 2022

제6화 순례하는 견, 히끼를 만나다

Zubiri(수비리)~Pamplona(팜플로나)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걷기 3일 차

#Zubiri(수비리)~Pamplona(팜플로나)

#23.0Km / 7시간 32분

#숙소 : Albergue Zaldiko(€50), 2인실, 화장실과 부엌은 공용


준비가 부족했나? 

현재 시간 06:51, 해는 떴고 날은 밝았다. 기온은 13도, 아침에는 쌀쌀한 날씨다. 아침에는 이너에 반소매 셔츠에 바람막이 점퍼까지 입고, 목에 손수건도 두르고 출발한다. 그러다가 10시경이 되면 날이 더워져 하나둘 벗게 되고, 개울이라도 있으면 발을 담그고 한참 쉬어가기도 한다. 아침저녁과 한낮의 기온차가 심해서 감기 걸리기가 쉽다. 미리 대비하고 조심해야 한다. 

06시 전후로 출발하면 14:00 경에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음 날 출발까지 거의 15~16시간의 여유가 있다. 낮잠 자고, 빨래 하고, 글 쓰고, 맥주 마시고 놀고먹는 시간이 더 긴데도 몸이 아프니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낮에 걸을 때는 편도가 부어서 불편한 정도지만 알베르게에 들어가면 오한과 열 때문에 계속 고생이다. 빨리 나아야 할 텐데...


몸이 아프다 보니 오기 전에 준비가 부족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순례를 여름에 하더라도 이른 아침에 걷기를 시작하니 15도 내외의 다소 쌀쌀한 날씨를 고려한 옷이 필요하다. 비가 오는 경우에는 기온이 더 떨어진다. 얇은 바람막이보다는 보온이 되는 등산 외투는 하나 준비하는 것이 좋다. 걷다가 더우면 벗어서 배낭에 걸고 다니면 크게 불편하지도 않다. 배낭 무게 때문에 짐을 줄인다고 외투 하나 준비하지 않아 감기 걸리면 한참 동안이나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발바닥이 아프다. 5km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그 정도 거리가 지나고 나면 종아리보다는 발바닥 통증이 심하다. 15km 이후에는 참기 힘들 정도다. 한국에서 유명 연예인이 광고하는 좋은 트레킹화를 구입해서 여러 달 신어보고 잘 길들여서 왔는데, 아무래도 트레킹화는 이런 긴 거리를 장기간 걷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바닥이 평평한 구간보다는 울퉁불퉁 돌로 되어 있는 구간이 많다. 산을 넘거나 들판의 비포장 도로를 걷는 구간이 길다. 


타이거와 닮은 히끼

5.5km 지점의 라라소아나(Larrasoana) 마을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개울을 오른쪽에 끼고 낮은 산길을 걷고 또 걷는다. 한참을 지나 잠시 쉬고 있는데 어제 만났던 프랑스 젊은이들을 다시 만났다. 이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볼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말을 건다. 중년의 한국인 부부가 신기해 보였을까, 아니면 걷는 게 힘들어 보여 걱정스러웠을까. 어제 라라소아나까지 왔으니 우리보다 한참 앞서가야 하는데, 아마도 아침에 출발을 늦게 한 모양이다. 


한국에서 왔냐고 묻길래, 6개월을 준비해서 왔다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주말마다 20~30km를 걸으며 연습도 했다고 했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이 길을 걸으며 죽고 싶지는 않아서 그랬다고 농담을 했더니 한참을 웃는다. 자기들은 파리에서 왔다고 한다. 하긴 파리에서는 기차 타고 몇 시간이면 생장이고, 피레네산맥만 넘으면 스페인이니 바로 이웃이지 않나. 젊은 친구들이야 몇 개월동안 준비할 것도, 주말마다 걷기 연습을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젊음이 잠시 부러워진다. 나는 저 나이 때 뭘 하고 있었을까? 


마을 끝에서 0.5km 아스팔트 길을 걷고 다시 비포장 도로다. 허리 높이의 갈대 사이에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는 걸음은 가볍다. 팔을 들어 갈대를 만져본다. 손바닥으로 생명의 싱그러움이 전해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오르막. 그래도 날씨가 화창해서 다행이다. 


10km 지점에 수리아인(Zuriain) 마을 입구의 작은 다리 건너에 바(bar)가 하나 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장사는 이런 곳에서 해야 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목이 좋다. 순례자들이 힘들고 지칠만한 곳에 딱 자리 잡고 있다. 음식 맛도 좋고, 커피 맛도 일품이다. 주인장은 요리를 할 때는 다른 주문을 아예 받지도 않는다. 주문받은 요리를 서비스 한 다음에야 다음 사람의 주문을 받는다. 요리라고 해야 스페인식 샌드위치인 보카디요(bocadillo)나 타파스(tapas), 계란프라이 정도인데도 자부심이 느껴진다. 


배낭을 벗고, 음식을 주문하고 쉬면서 보니 반가운 순례견이 있다. 이틀 전, 롱세스바예스 알베르게 뒤뜰에서 누군가 텐트를 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야영객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 텐트가 이 녀석 잠자리였던 거다. 아빠랑 두 아들, 딸 한 명과 히끼(셰퍼드 종으로 이름은 히끼), 다섯 가족이 순례 중이다. 녀석도 음식을 기다리는지 얌전히 앉아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덩치가 아주 큰 녀석인데 목줄도 차지 않았다. 그런데도 순례객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녀석은 아빠만 졸졸 따라다니는 순둥이다. 


히끼를 보니 타이거 생각이 났다. 타이거는 2004년 카이로 한국학교에서 같이 살던 셰퍼드다. 처음 갔을 때는 닭장에 갇혀 있었다. 아이들 안전 문제 때문에 가두어 키운 모양인데 엄청 사나웠다. 야간 경비하는 친구가 저녁에 풀어놔도 되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아침 출근 때까지 묶어 놓지 않았다. 그런데 풀어놨더니 이 녀석이 순해졌다.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다니고 놀았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아침에 출근하면 냉큼 달려와서는 내 어깨에 두 발을 걸치고 얼굴을 마구 핥곤 했다. 이집션 직원들 밥값보다 더 비싼 사료를 사다 먹였다. 임기 마치고 귀국할 때 즈음, 같이 지내던 검둥이 따라 마실 나갔다가 차에 치여 엉치뼈를 크게 다쳤다. 수의사가 수술이 어렵다고 해서 한동안 지내다가 안락사를 시키고 묻었다. 히끼가 타이거랑 너무 닮았다. 녀석도 내 마음을 아는지 쓰다듬는 손을 다정히 받아 준다.


유쾌한 스페인 할머니

시원한 콜라와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12km 지점부터는 다시 오르막 산길이다. 다행히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와 전날 수비리까지의 길보다는 힘들지 않다. 특별한 경치를 구경할 만한 것도 없고, 뭔가 성스러운 느낌을 받을 만한 것도 없다. 이 길을 걸으면 가슴이 무언가로 가득 채워질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문득 그런 길인가 싶다. 얻는 길이 아니라 버리는 길, 채우는 길이 아닌 비우는 길, 생각과 고민을 가만히 내려놓는 길.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고, 비우기 위해 이 길에 서 있는데 가슴이 채워지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니...


산길을 내려오니 작은 도시, 부를라다(Burlada)다. 두 번째 들른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타이레놀 비슷한 약을 구입했다. 첫 번째 들어간 약국에서는 목 아프고 밤에 열 많이 난다고 했더니 코로나인 줄 알았는지, 약사가 뒤로 물러서며 처방전 없으면 약 못준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하긴 나도 걱정되어 아침에 코로나 진단키트로 검사를 해 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음성이었다. 걸리려면 지금쯤 걸려야 귀국 비행기 타고 갈 때 즈음에는 나아서 갈 수 있을 텐데. 


도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자그마한 스페인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코리아?”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영어를 전혀 모르셔서 대화가 제대로 되질 않는다. 서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참이나 대화를 했다. 한국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한국을 좀 아는 건지 모르지만 밝게 맞아주는 느낌에 기분이 으쓱해진다. 이곳 사람들은 지나가다 사람을 마주치면 "올라(Hola)~"하고,  순례객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부엔 카미노(Buen Camino)~"하고 인사한다.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사람을 만나도 아무도 인사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강원도 <운탄고도 1330>을 걸을 때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 '운탄고도'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잘 몰랐다. 


자, 이제 조금만 더 가자. 큰 공원과 아랍 동네를 지나고, 팜플로나 성곽을 지나 드디어 구시가지에 도착한다. 나 보다 먼저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온 낯익은 얼굴들도 더러 보인다. 팜플로나(Pamplona)는 지나온 마을과는 다르게 1200년 전, 나바라(Navarra) 왕국의 옛 수도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북적인다. 순례객뿐만 아니라 관광을 온 사람들도 많다. 

이곳에서는 스페인 3대 축제 중에 하나인 산 페르민(San Fermin) 축제가 열린다. 산 페르민 축제는 스페인의 북부 나바라 주의 수호성인이자 3세기말 주교였던 산 페르민을 기리기 위해 매년 7월 6일에 나바라 주의 주도인 팜플로나에서 개최되는 축제이다. 7월 6일 정오에 시작하여 7월 14일 자정에 끝난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하여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대표 축제이다. 


북적이는 거리를 따라 헤밍웨이가 좋아했다는 카페(Cafe Iruna)를 지나 까쓰띠요 광장(Palza del Castillo) 뒤편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현재 시각은 14:28, 여기는 팜플로나다. 

* 오후에는 팜플로나 대성당을 잠시 둘러보고 줄 서 있는 맛집에서 빵도 몇 개 샀다. 숙소에 들어와 밤새 끙끙 앓았다.감기는 여전하고 편도가 많이 부어 말도 하기 힘들다. 아직 발에 물집에 생기지 않았다. 맥주가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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