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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03. 2022

부모를 아이에게 돌려 드립니다

교장의 시선 08

# 장면 1.

"겨우 34층 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회색 빌딩. 중앙현관 위에는 '런던 중안 인공부화 조건반사 양육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고 방패 모양의 현판에는 '공유-균등-안정'이라는 세계 국가의 표어가 보인다."

올덕스 헉슬리가 1932년 발표한 <멋진 신세계>의 첫 문장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가 살던 시대보다는 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보다는 가까운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그렸다. 그가 그린 세상에서 아기는 실험실에서 인공부화를 통해 태어난다. 결혼과 출산은 미개한 방식으로 취급된다. 아이들은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세상에 나오기 전에 태아는 모두 인공부화병에서 조건반사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을 통해 태아는 알파, 베타, 감마, 텔타 입실론 등 다섯 개의 계급으로 정해진다. 철저한 계급 구분을 통해 사회에서 맡을 역할도 미리 정해진다.     

 

# 장면 2.

조지아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해리 할로(Harry F. Harlow) 박사의 원숭이 애착 실험은 심리학 분야에서 유명하다. 실험과정은 이렇다.

먼저 갓 태어난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격리한다. 이 격리된 원숭이들은 각각 4마리씩 두 가지의 다른 우리에 넣는다. 한쪽 우리에는 철사로 되어 있고 우유가 나오는 어미 모양이 있고, 다른 쪽은 헝겊으로 덮여 있는 어미지만 우유가 없는 어미가 있다. 두 우리에서 키워진 원숭이들이 두 어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을 살펴보는 실험이다.

원숭이들은 배가 고프면 철사어미 쪽으로 가서 우유를 먹고는 하루 종일 헝겊어미 쪽에서 시간을 보냈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면 모두들 헝겊어미 쪽으로 향했다. 나중에 헝겊어미에게도 우유가 나오게 하자 철사어미와 함께 지냈던 원숭이들은 우유를 소화 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설사를 자주 했다.      


# 장면 3.

초등학교 2학년 최OO은 아침에 08:30쯤에 등교한다. 09:00부터 1교시 수업을 시작해서 13:00~13:40(요일에 따라 4~5교시 수업)에 정규 수업을 마친다. 수업을 마치면 돌봄교실로 가서 잠시 쉬었다가 방과후교실에 다녀오거나 돌봄교실에서 운영하는 단체활동(전래놀이, 체육놀이, 창의미술 등)에 참여한다. 16:05에 형과 함께 집으로 간다. 이 아이가 평일 하루에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7시간 35분이다.      

최근 교육부는 "우리 모두의 아이, 학교와 마을이 함께 돌보겠습니다"라며 온종일 돌봄을 추진하고 있다. 온종일 돌봄은 20:00까지 운영한다. 만약 초등학교 2학년 최OO이 온종일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면, 하루의 절반인 12시간 가량을 학교에서 보내게 된다. 저녁 9시나 10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 집에서 깨어 있는 시간은 하교 후와 아침시간을 포함해서 고작 3~4시간이다. 매일 학교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교직원은 교장을 포함해서 단 한 명도 없다.      


부모를 아이에게 돌려주자

학교의 환경이 나아지고 특히 돌봄교실은 일반교실과 다르게 돌봄 친화적으로 꾸며 놓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학교에서 머무는 건 아이에게는 힘든 일이다. 어른도 하기 힘들 것을 아이들을 '위해서' 더 확대한다고 한다. 돌봄 서비스는 맞벌이 부부 등 자녀를 돌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가정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 학교가 대신 돌봐주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이 과연 부모를 위한 일인가, 과연 아이들을 위한 일일까?      


대안으로 좋은 예가 있다. 공무원 육아시간이다. 공무원 육아시간은 만 5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공무원이 24개월의 범위에서 1일 2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를 민간으로 확대하자. 돌봄이 필요한 유초등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도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직원에게 육아시간을 제공하는 기업이나 사업체에는 세제 혜택이나 지원금 등으로 보상하면 된다. 시행상의 어려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방법은 찾아보면 있다.      


이제, 아이들을 부모와 분리하는 정책 방향은 되돌려야 한다. 부모와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야 할 때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돌봄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의 돌봄은 최소화 하고, 부모가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함께돌봄센터,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에 아이만 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지원해야 할 때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한국교육개발원이 함께하는 방과후학교포털시스템>의 초등돌봄교실의 목표와 방향은 '대상확대, 운영시간 연장, 공간확보 및 운영모델 다양화'다. 최근, 교육감 협의회에서 <국가 돌봄청> 신설에 대한 정책연구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을,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돌볼 것인가를 연구하려는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그동안 추진해 온 돌봄교실이 아이들의 정서적, 심리적, 육체적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누가 알기는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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