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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Jul 07. 2022

교감의 추억

교장의 시선_07

교장을 하려면 교감은 반드시 거쳐야 할까?

예전에는 교감을 하지 않은 사람은 교장으로 발령을 내주지 않았는데,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교감을 경험하지 않은 교장들도 더러 있다. 장학직에서 바로 교장으로 가기도 하고, 공모를 통해서 교사에서 바로 교장으로 가기도 한다. 세간에는 능력 있는 사람은 교감은 안 하고 바로 교장 하는 걸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교감은 별 매력이 없는 자리인 게 틀림없다.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없을 때에는 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교감의 임무다.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 교육 보다는 아마도 교장을 '보좌'하는 일에 스트레스가 많지 싶다. 어느 기관이나 조직이던 일보다는 사람이 힘든 법이고, 교장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고역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장과 교사의 중간 역할을 원만히 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러니 되도록 교감을  하거나 가능한  짧게 하려고 한다.


교감을 3년 6개월 했다.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 기간 세 분의 교장과 근무했다. 호흡이 잘 맞을 때는 신나게 일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소위 꿍짝이 잘 맞은 교장과 근무할 때의 몇 가지 재미있는 일을 소개한다.


1. 시청각실: 뭐 저런 교감이 다 있어?

학교 앞 재건축 아파트 조합에서 우르르 몰려온 나이 지긋하신 부녀님들께서 교감인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학교 앞 도로 건너편에 5층의 낡은 아파트를 헐고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학교도 대책을 세웠다. 학부모를 포함해서 교감을 단장으로 대응팀을 구성했다. 아파트 건축에 따른 소음과 먼지 등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에 대비해서 공기청정기 등을 요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아파트 조합에서 1 협의를 왔는데, 요구사항을 말했더니 아예 도둑놈 취급이다. 2 협의 때는 나이 지긋하신 부녀님들이 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와 세를 과시했다. 근데 이분들이 교감을 잘못 봤다.  정도에 '오메 기죽어~'  교감이 아닌데. 건축학과 교수인 학부모를 통해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줄을 모르셨다. 시물레이션 결과, 학교 운동장에 하루 4시간 이상 연속으로 그늘이 지는 부분이 있어, 학교가 협조하지 않고는 건축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규정 알고 있었다. 결국 조합에서 백기를 들고 시청각실을 지어 기부채납 했다. 학교 내부 방침  생각한 금액보다 5 정도 많은 금액이었다.


2. 현관 신발장: 히트다 히트!

A 학교에서 교감으로 3년 근무하고 B 학교로 옮겨간 뒤에 A 학교 교장이 전화로 하신 말씀이다.

하루는 교장이 학교 현관에 학생 신발장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교실 복도에 신발장이  있는데  말씀이시냐 했다.  오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 들고 교실까지 가면서 양말이  , 무거운 책가방에 실내화 주머니까지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안타깝고 마음 아프다 했다.


행정실장과 의논했다. 발전기금과 학교 여유 예산을 합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말씀을 드렸더니 주저하신다.  정년 퇴임하고  사람이 많은 예산을 들여서 그걸  놓으면 뒷사람이 뭐라고 하겠냐고.

"아이들 생각해서 하시고 싶으신 거죠?"

"하고 싶지."

"그럼, 추진하겠습니다."

설치되는   보고 전근을 하였는데, 후에 히트를 쳤다는 반응을 전해 주셨다. 학생들도 좋아하고, 특히 학부모들이 너무 좋아했단다. 소문 듣고 현관에 신발장 설치하는 학교가 많아졌다고 으쓱 해하셨다. 선생님들의 우려처럼 처음   신발 분실 사례도 있었지만,  안정이 되었단다.


3. 교통지도: 와우, 넌 장군감이다~

학교  저편 아파트에서 초등 3학년  명이 걸어온다. 걷는 모습이 씩씩하고 멋지다. 가까이 왔을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마디  줬다.

"너 걷는 모습이 진짜 멋지다. 나중에 장군 되겠어~"

녀석은 그다음 날부터는 저만치서 눈을 마주치고 나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늠름하게 걸어왔다. 그런 아이들을 매일 보는 게 후 교통지도의 즐거움 중 하나였.


학기 초에 학부모들이 문을 통해 학교 안으로 진입해서 자녀를 내려주고 다시 나가는  보고  교통지도를 시작했다. 입구에서 아이들 안전을 위해 교내로의 차량 진입을 막았다. 짜증을 내는 학부모도 간혹 있었다. "교감입니다~"하고 인사하며 아이가 내리도록  문도 열어주곤 하니 분위기가 점차 달라졌다.  오는 날은 우산도 받쳐주니 좋아했다. 어느  교장이 오시더니 당신이 하시겠다고 했다. 좋아 보였던 모양이다. 아이들과 눈 마주치며 인사하는 교감의 소소한 아침 행복을 교장에게 원치 않게 넘겨 드렸다.


8년이 지난 지금, 기부채납 받은  시청각실에서 <선생님의 인문학 수다: 선수다> 모임을 매달 운영. 현관 신발장은 여전히 이쁘게 사용 중이다. 대학생이 되었을  녀석은 어떤 모습일? 교감 시절을 뒤돌아보니 좋은 추억이 많다. 교감도 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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