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16코스(고내포구~광령1리사무소)
#제주올레길16코스 #고내포구~광령1리사무소 #묵은지고등어쌈밥
-올레길 16코스: 고내포구-남두연대(2.8km)-구엄어촌체험마음(4.8km)-수산봉(물메오름)정상(6.6km)-예원동 복지회관(7.1km)-항파두리 코스모스 정자(11.7km)-광령1리사무소(15.8km)
-총 거리: 15.8km
-소요시간: 5:17
어제저녁부터 불던 바람이 더 거세어졌다. 창문을 살짝 여니 바람이 훅하고 들어온다. 바람이 차고 매섭다. 애월 앞바다에 흰여울이 넘실거린다. 저 정도면 파고가 2~3m가 넘는다. 간혹 보이던 고깃배들도 오늘은 항구에서 잠시 몸을 피하고 있는지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 작은 배에서는 갑판에 서 있기도 힘들겠다.
이틀을 걸었더니 발바닥도 다리도 아프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나 보다가 맛집 탐방이나 할까?’ 게으름이 몽글몽글 올라온다. 걷기는 즐거우면서도 힘들다. 집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나가서 걷기 시작하면 잘했다 싶어지는데도. 오늘은 숙소가 있는 올레길 16코스를 걷는다. 어제는 멀리 성산포까지 가서 1코스를 걸었는데,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계획을 좀 바꾸었다.
16코스는 애월읍 고내포구에서 광령1리사무소까지 15.8km다. 고내포구에서 남두연대까지는 차도 옆 해안 쪽 산책로를 따라 3km 정도 거리인데, 첫날 이 부분은 이미 걸은 길이라 남두연대를 100여 미터 지나온 지점부터 걷는다.
숙소를 나가자마자 세찬 바닷바람이 오늘은 날씨가 만만치 않음을 알려준다. 창밖으로 내다보던 바다와는 다르게 가까이서 마주한 바다는 쉴 새 없이 으르렁거린다. 잠잠하던 바다도 어제오늘은 겉과 속을 뒤집어엎는 날이다. 바다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일까.
거세게 밀려와 바위에 부딪치며 흰 포말을 뿜어내는 바다를 언제 보았던가. 거친 바다의 모습이 멋지다. 상남자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넥워머는 귀까지 끌어 올려 덮었다.
구엄어촌체험마을 평평한 바위 위에 인공 무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천연돌염전(빌레)라고 한다. 서해안의 광활한 염전과는 색다른 모습이다. 여기서부터 동네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차도를 하나 건너가면 수산봉(물메오름)이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오름을 가끔 넘어가게 되는데 정상의 높이는 100~200미터 정도로 높지 않지만 오르내리는 길은 제법 가팔라 숨이 차다. 오름은 올레길의 고도와 풍경에 크고 작은 변화의 재미를 주는 요소다.
오름을 넘어가서 고려말 대몽항쟁의 마지막 보루인 항파두성까지는 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감귤밭이 자주 보이는데, 감귤을 수확하지 않아 그대로 말라 버려진 곳도 더러 있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수확해도 경제성이 없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괜스레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항파두성을 지나가니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다. 800년 전, 처절했던 백성의 외침과 그들이 흘린 핏방울의 흔적은 오간데 없이 마른풀 위로 바람만 휩쓸어 간다.
항파두리 코스모스 정자에서 올레패스 확인 도장을 찍고 다시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니 초등학생들이 하나 둘 보인다. ‘그렇지, 오늘이 개학날이구나!’ 지난 32년 동안 3월 2일은 개학날이었다. 긴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학, 왁자지껄하게 정신없이 보내는 하루. 떠나온 그곳 학교도 개학을 하고 아이들을 맞이했겠지 싶어 마음이 허허롭다. 광령초등학교 옆은 지나니 오늘의 종착지 면사무소다.
오늘 올레길 탐방의 백미는 거센 파도도 마른풀 위의 바람도 아니라 묵은지고등어찜이다. 16코스 중간에는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다. 늦은 점심 식사를 위해 택시를 타고 <이춘옥원조고등어쌈밥>으로 내달렸다. ‘아니, 고등어쌈밥집 뷰가 이래도 되나?’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는 예약석인데 저런 뷰에서는 고등어쌈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겠다 싶었다. 그나저나 고등어맛이 예술이다. 묵은지찜의 김치와 국물맛도 그렇다. 2인분 36,000원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그럴만하다.
고등어 살과 묵은지가 오늘의 피로회복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