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4코스
#제주올레길14코스 #저지~한림항 #칡덩굴 #선인장_백년초 #꽁순이네_고기국수
-올레길 14코스: 저지예술 정보화마을-큰소낭숲길(2.4km)-무명천산책길(6.5km)-월령선인장 자생지(910.1km)-일성제주비치콘도(11.9km)-금능해수욕장(14.km)-용포포구(16.6km)-한림항(19.1km)
-총 거리: 19.1km
-소요시간: 3.27(12.4km, 일성제주비치콘도까지)
이틀 동안 거칠게 몸부림치던 바다가 잠잠해졌다. 밤사이 바다는 거친 숨을 고르고 화기를 가라앉혔다. 멀리 어선들이 이른 아침부터 그물을 내리고 끌어올린다. 잔잔한 바람이 수면 위를 핥고 지나간다. 여객선 꼬리 뒤로 하얀 포말이 선명하다. 걷기에 좋은 날씨다.
‘저지예술정보화 마을‘이 14코스의 시작점이다. 14코스보다 짧은 14-1코스의 시작점이고, 13코스의 종착점이라 스탬프 박스 안에 올레 스탬프가 3개나 들어있다. 안내소 뒤편에 있는 저지오름을 마주 보면서 길을 따라가면 된다. 올레패스북을 보니 전체 코스가 내리막이라 많이 힘들지는 않겠다.
길을 따라 걸으면 현무암 돌담으로 경계 지어진 밭과 드문드문 있는 집들 그리고 바람을 만난다. 코스 중간 지점까지는 오로지 그것뿐이다. 2km 지점에 큰 카페(그린 페블)가 있는데, 왠지 생뚱맞다. 돌담과 바람뿐인 여기까지 사람들이 차를 마시러 찾아올까? 안내 책자에는 중간에 큰소낭숲길, 오시록헌 농로, 굴렁진 숲길이 있다고 하는데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감귤밭, 마늘밭, 대파밭이나 천혜향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아닌 곳은 나무와 수풀이 제법 울창하나 칡덩굴이 모두 집어삼킨 모양새다. 도시의 고속도로변과 강가의 수풀도 마찬가지 형국인데 이곳 제주의 숲도 다르지 않다. 햇살이 따뜻해지면 저도 싱싱한 수풀인 양 하겠지만, 회색빛 칡덩굴이 뒤덮인 숲의 모습은 을씨년스럽다.
별다른 간식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칡을 잘게 찢어 종일 씹어 먹곤 했다. 동네 뒷산으로 칡을 캐러 가는 모험도 했다. 요즘도 등산로 입구 쪽에 몸에 좋다는 칡즙을 파는 곳이 더러 있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덩굴을 낮게 뻗어 생명을 유지하던 칡이 이제는 대놓고 수풀을 점령해 간다. 다른 생명을 앗아 제 목숨을 이어가는 칡의 진액이 사람 몸에도 이롭기만 할까?
길은 7.3km 지점 <연세선교센터> 입구 건너편으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500m 정도는 제법 숲이 우겨져서 상쾌하다. 그러다 잠시 도로를 걷고 무명천 산책길을 만난다. 가뭄이 깊은지, 무명천이 바짝 말랐다. 이 길을 따라 1.0km 정도 내려가면 바다, 월령코지에 닿는다. 시작점에서 여기까지가 10km다. 후반 1~2km를 제외하고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길이다. 올레길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찾지 않을 것 같다.
한참 지루할 즈음, 어디서 냥이가 야옹야옹 울면서 뛰어온다. 제 집사가 돌아오는 마냥 반긴다. 볼록한 배를 보니 배고픔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사람이 그리웠던가? 혹시나 하고 배낭에서 삶은 달걀을 꺼내 주니 조금 핥고 만다. 소시지라도 하나 가져왔으면 좋았으련만... 햇살이 좋은지, 사람이 반가운지 배를 드러내 놓고 길에서 뒹굴뒹굴하며 같이 놀자고 보챈다. 강아지 마냥 한참을 따라 내려오다 돠돌아간다. 집에 두고 온 팬서와 짱아는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월령 해안가 마을 담벼락은 온통 선인장 천지다. 신기해서 선인장 가시를 만지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시며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찔리면 많이 아프니 조심해요, 우리도 백년초 딸 때는 완전무장하고 들어가요.”
“이 백년초가 몸에 좋나요?”
“모르겠수. 좋다고 해서 먹어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여.”
그러고는 쓱 댁으로 들어가신다.
월령바닷가 바위 위에도 선인장이 무더기로 자랐다. 처음 마주하는 풍경이 낯설고 신기하다. 이 모질고 짠 바람을 이겨내고 저렇게 자랄 수 있는 걸 보니, 사람 몸에도 좋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딱딱한 가시로 무장하고 거친 땅과 바위 위에서 버티어 내는 선인장의 모습은 칡과 다르다.
14코스는 전체 거리가 19.1km인데, 아내가 많이 힘들어해서 오늘 완주하지 못했다. 12km 지점, 일성제주비치콘도 앞 정류장에서 202번 버스를 타고 가서, 한경면사무소 앞에서 772-2번 버스를 갈아타고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버스 안에서 잠깐씩 조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다.
늦은 점심은 지난번에 검색해 둔 맛집 <꽁순이네>의 고기국수(8,000원)와 비빔국수(8,000원)다. 돔베고기(小 17,000원)를 꼭 먹어 보고 싶었는데, 국수에 고기가 들어있다고 해서 국수만 주문했다. 일반 국수의 소면보다 더 굵은 중면으로 요리했는데, 면발이 탱글탱글하고 고기는 졸깃하고 고소하다. 설렁탕 국물 같은 육수는 연한 멸치맛에 고기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오늘의 피로회복제는 고기국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