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길 14-1코스 (저지~오설록)
#제주올레길14-1코스 #저지~오설록 #저지오름반점_짬뽕
-올레길 14-1코스: 저지예술 정보화마을-강정동산(2.8km)-저지곶자왈(4.1km)-문도지오름 출구(5.5km)-저지상수원(8.8km)-오설록 녹차밭(9.3km)
-총 거리: 10.5km
-소요시간: 3.07
14-1코스도 14코스와 같은 장소,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시작한다. 종착점인 오솔록 녹차밭까지는 10km가 채 되지 않아서 거리도 부담이 없다. 버스 정류장 길건너 마을로 들어서면서 시작인데, 초입부터 14코스와는 다른 분위기다.
시멘트 도로가 아닌 흙길이라 발로 전해져 오는 감촉이 좋다. 걷기를 하다 보면 아스팔트길, 시멘트 포장길, 울퉁불퉁 바위길, 잡초나 잔디가 깔린 흙길 등 여러 가지 길을 밟는다. 그중에서 흙길이 단연 으뜸이다. 흙길에서는 발과 무릎에 전해져오는 충격도 적고, 걷는 사람의 발을 잘 받아준다. 한 발이 흙에 닿으면 잠시 품었다가 다른 발이 흙에 닿을 때 살며시 놓아준다. 그렇게 발을 품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한 발 한 발....
흙의 기운에 잠시 취해 있을 즈음, 시골마을 작은 책방이 눈에 들어온다. 책방의 이름은 <소리소문>. 주인장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대문도 없는 마당을 들어서서 책방 문 앞에 서니, “봄방학”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휴가 중인가 보다. 유리 너머로 내부를 살짝 들여다보니 책을 사기보다는 앉아서 책을 읽고 싶은 분위기다. 책방 바로 옆 집은 <쌤>이라는 미술카페다. 책방과 미술카페라...어쩐지 이 길이 초반부터 마음에 든다.
오늘은 완연한 봄날씨다. 바람이 자는 탓에 햇살의 온기가 그대로 몸에 스며든다. 겉옷을 하나 벗어 배낭에 넣었다. 현무암 돌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딸기, 천혜향 비닐하우스를 몇 동 지나면 강정동산이다. 이곳에서 문도지오름(해발 260m) 입구까지 5km 정도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어디선가 은은한 향기가 밀려온다. 곶자왈 지역에 자생하는 녹나무과 식물의 향기인지, 이곳에서 유명한 제주백서향의 향기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은은한 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이 코스 주위가 저지곶자왈이다. ‘곶’은 산 밑의 숲이 우거진 곳,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불모지 용암대지에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와 덤불이 우거져 숲이 만들어진 곳이 바로 곶자왈이다.
14코스가 있는 이곳 저지곶자왈 외에도 산양곶자왈, 서광곶자왈, 신평곶자왈 등 여러 곳의 곶자왈이 있다. 저지곶자왈에는 개가시나무, 제주백서향 등 희귀 식물과 긴꼬리딱새, 팔색조, 두견이 등 법정보호종을 비롯한 수백 종의 동식물의 보금자리다.
숨이 목까지 찰 때 즈음 문도지오름 입구에 닿는다. 오름 입구에 말목장이 있는데 사유지라고 한다. 길을 내어 준 땅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달라는 푯말이 있다.
문도지오름은 해발이 260m로 높지 않지만, 여느 오름처럼 정상 가는 오르막은 짧고 가파르다. 정상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시야가 탁 트였다. 오름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숲,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오름들, 그 너머의 바다까지 내려다보인다. 줄이 메어있지 않은 두 마리 말도 어슬렁거리며 사람들과 어울려 논다. 어디서 왔는지 이마에 상처난 개 한 마리도 와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지나 가는 사람들을 반긴다.
배낭에서 간식을 꺼내 간단히 요기를 하려는데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 아쉽다. 나무 벤치라도 몇 개 두면 좋을텐데 싶다. 작은 나무 둥치를 하나 찾아 걸터앉았다. 여기까지 캠핑의자를 가져온 분들도 있다. 음악도 켜 놓고, 차도 마시는 모양새가 벌써 한참 된 모양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멀리 숲과 바다를 바라본다. 뒷모습이 보기좋다.
“우리도 캠핑 의자 있는데 다음에는 가져오자.”
“잠깐 앉았다 갈 건데 뭐 하러 무거운 걸 들고 와?”
“저렇게 앉아 있으니 멋있잖아.”
“내가 다 들어야 하는데, 무거워서 힘들어. 안돼~.”
티격태격 하는 사이에 바람이 이마의 땀을 쓸고 지나간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도 짧아 금방이다. 오름을 내려오면 다시 숲길로 이어지는데, 이 코스의 백미는 바로 여기서부터 7km 지점에 있는 산불감시초소까지의 1.5km 구간이다. 저지곶자왈 숲길이다. 이른 봄인데도 숲은 제법 울창하다. 제주백서향의 은은한 향기가 숲에 스며 있고, 잡목들 아래로 개고사리가 낮게 깔렸다. 바위와 나무 둥치를 감싸고 올라가는 콩짜개덩굴과 젖은 바위를 감싼 이끼의 모습은 더불어 사는 숲의 속살이다.
비가 오는 날이나 혹은 비가 온 뒷날 이 숲길을 걸으면, 숲 속에 잠겨 어쩌면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하게 된다.
숲은 빠져나오면 그리 넓지 않은 녹차밭이 보인다. 녹차밭 건너에 <오설록티뮤지엄>이 있다. 녹차소프트(5,000원)와 제주한라봉케이크(9,500원)를 먹으며 잠시 쉬었다.
오솔록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820-2번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거리가 짧아 졸지ㅜ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