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3코스(용수리포구~저지)
#제주올레길13코스 #용수리포구~저지 #우영담_전복뚝배기
-올레길 13코스: 용수리포구-용수저수지(2.7km)-특전사숲길(4.4km)-고사리숲길(7.0km)-낙천의자공원(9.4km)-뒷동산 아리랑길(12.4km)-저지오름 입구(13.4km)-저지예술정보화마을(16.5km)
-총 거리: 16.5km
-소요시간: 4:58
출발지가 애월 숙소에서 점점 멀어진다. 13코스 시작점은 용수리포구인데, 애월에서 자동차로 30km, 40분이 넘게 걸린다. 큰 도로인 일주서로에서 용수리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 전체가 바다 쪽으로 낮게 깔렸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마을 입구에서도 바다가 보일 정도다. 마을의 좁은 길 양쪽으로 늘어선 집들이 소담스럽다. 새로 지은 집들도 여럿인데 기존의 옛집들과 조화롭다. 욕심부리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러겠다.
용수리포구 주차장에 주차하고 시작점에서 올래 스탬프를 찍었다. 바다 쪽을 돌아보니 바다 건너에 차귀도라는 무인도가 보이고, 시선이 포구 쪽으로 다가오면서 포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에 머문다. 어딘지 낯설다. 포구의 왼쪽에는 ‘차귀도 요트’라고 커다란 이름표를 단 화려한 요트가 있고, 오른쪽에는 밤새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낡고 작은 어선들이 쉬고 있다. 무엇이 낯선 걸까?
젊은 어부 부부의 애틋한 사연이 있는 절부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를 시작한다. 계단을 올라가면 커다란 팽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가지만 남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봄의 새잎 자리를 예비하기 위해 가지에서 가지를 뻗어 나가는 모습에서 생명의 반복과 영원성을 본다.
코스의 시작점에서부터 고목숲길을 만나기 전까지의 5km가 넘는 길이 모두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흙길은 발을 품어 주지만 아스팔트는 발을 튕겨낸다. 발뿐만이 아니라 빗물도, 햇볕도 튕겨낸다. 빗물은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고여서 흐르고, 햇볕 또한 튀어 올라 등산모자로 가린 얼굴에 기어이 닿는다. 아스팔트 길에서는 걸음도 빨라진다. 천천히 걷고 싶어도 아스팔트의 매끄러움이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빠르게 한다.
일주서로 횡단보도를 건너가자 길가에 낯선 교회가 우둑하니 서있다. 겨우 한 사람이, 그것도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교회다. 지난여름 산티아고 순례길, 론세바스바예스 알베르게 근처의 롤링의 성 십자가가 있는 작은 교회의 모습이 떠 오른다. 믿음과 감동의 크기는 교회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소박한 두 교회가 제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어느덧 용수저수지 입구다. 가축방역초소와 출입금지 팻말이 눈에 띈다. 조루인플루엔자 확산 우려로 코스가 임시로 변경되었다고 올레패스에 안내되어 있는데, 길은 용수저수리 왼쪽으로 이어진다. 길을 따라 걷다 저수지의 풍경이 좋아 벤치에서 잠시 쉰다. 14-1코스에는 올레길을 걷는 사람을 위한 벤치 하나 없어 아쉽다고 지난 글에서 투덜거렸더니 벌써 벤치를 가져다 놓은 모양이다. 공무원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리가 없는데.... 13코스에는 이곳 말고도 서너 군데 벤치가 있다.
철새들은 자기들 때문에 감시초소가 생기고, 길이 막히고, 가축이 죽어가는데도 물 위에서 한가롭기만 하다. 이 난리가 난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난리가 난 쪽은 사람일테고, 오히려 사람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막아주고 있으니 제 녀석들은 더 좋아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내자료에는 특전사숲길, 고목숲길, 고사리숲길 등이 안내되어 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있어도 그 거리가 짧아 숲길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저지오름에 가면 마음껏 숲길을 즐길 수 있으니, 체력을 비축하며 천천히 걸으면 된다. 13코스에서 가장 시원하고 걷기 좋은 구간이 저지오름의 둘레길이다.
9km 정도를 걸으면 수령이 120년이 넘는 커다란 팽나무를 만난다. 아홉굿 전설이 있는 낙천리 마을이다.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진 곳이 여럿이다. 어느 집 담벼락에는 누군가 이런 글을 새겨 놓았다.
설문대 할망이
섬 제주를 만드는 게
농사일처럼 힘들더니
오뉴월 땡볕에서
한경이라 낙천지경을 만들다가
땀방울을 떨어뜨렸다
그 떨어진 자리마다 조화가 일어
아홉 연못이 되었다
아홉굿은 아홉 개의 샘이 있다는 말인데, 영어 표기로는 나인굿(Nine Good)이라 아홉 개의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낙천 마을을 지나 울퉁불퉁 돌길인 낙천리 잣길과 뒷동산 아리랑길을 지날 때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라 힘들다. 그런데 힘든 게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멀리서 보이던 저지오름이 바로 코앞에 기다리고 있다. 저지오름(높이 239m)에는 닥나무가 많아 닥물오름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저지(楮旨)는 닥나무의 한자식 표현이다.
저지오름에는 저지오름둘레길(1.6km)과 정상둘레길(830m)이 잘 조성되어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힘들다면 굳이 정상둘레길로 오르지 않고 바로 저지오름둘레길을 돌아 종착점으로 내려와도 된다. 정상에 있는 분화구를 보기 위해서는 정상둘레길로 올라야 하는데, 계단이 제법 가파르고 힘들다. 정상둘레길에서 분화구 가까이 갈려면 다시 90m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힘겹게 올라, 정상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분화구 구경은 아픈 무릎을 핑계로 다음으로 미루었다. 계단을 조심조심 다시 내려와 시원한 둘레길을 따라 13, 14코스의 종착점이자 14-1코스의 시작점인 저지예술정보화마을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