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길 18코스(제주원도심~조천)
#제주올레길18코스 #제주원도심~조천 #황금무지개(초밥) #관덕정분식(떡볶이)
-올레길 18코스: 간세라운지×관덕정분식-사라봉(3.7km)-별도봉산책길(5.3km)-화북포구(7.5km)-삼양해수욕장(10.5km)-닭모루(14.5km)-연북정(18.5km)-조천만세동산(19.7km)
-총 거리: 21.8km
-소요시간: 6:58
오늘은 많이 걸었다. 거의 22km를 걸었는데, 지난여름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 이후로 하루에 걸은 거리로는 가장 길다. 올레길 18코스는 19.7km인데 ‘알바’를 좀 해서 2km 정도 더 길어졌다. 길을 잘못 들어서 이리저리 헤매는 것을 ‘알바’라고 한다고 올레안내소에서 일하는 분이 가르쳐 줬다.
오늘이 올레길을 다닌 지 일곱 번째 날인데도 자꾸 ‘알바’를 하게 된다. 코스를 알려주는 파랑주황깃을 열심히 보고 다니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들기 일쑤다.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꼭 그런다. 18코스를 마치고 안내소 직원에게도 얘기를 했는데, 길안내 표시나 표식의 위치 등이 개선이 필요하지 싶다.
그분 얘기를 들어보니 나름의 이유가 없지는 않다. 예전에는 바닥이나 벽, 돌에 페인트로 표시를 했는데, 장난으로 길을 반대로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단다. 오래전에 뉴스에도 나왔단다. 최근에는 표시 깃을 떼어서 배낭에 묶거나 머리끈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고 한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는 모양이다.
시작점인 간세라운지에서 안내 직원의 친절에 간세 한 마리 입양해서 배낭에 달았다. 간세는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이다. 처음 봤을 때는 제주도에 ‘왠 강아지?’했다. 간세라운지에서 나와 표시를 따라가면 오현단(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 송시열의 다섯 분을 배향했던 옛터)을 지나, 동문시장을 한 바퀴 빙 돌아 탐라문화광장으로 나온다. 탐라문화광장에서 산지천을 따라 바다 쪽을 내려가는 길이 시원하다. 부두에 크고 작은 여객선과 화물선이 정박해 있고, 하늘에는 몇 분만에 한 대씩 비행기가 제주공항으로 내린다. 가까이에서 비행기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를 걱정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다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제주 의녀 김만덕객주를 잠시 둘러보고, 일제강점기와 제주 4·3 사건 때의 아픔이 서린 주정공자옛터를 지난다. 3.7km를 걸으면 측화산 사라봉(146.6m) 입구다. 낮은 돌계단이 가지런하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 계단이 한참이다. 300m 남짓 숨차게 올라와야 정상의 정자에 닿는다. 정자에서는 부두와 여객터미널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낮의 풍경도 그만인데, 해넘이 때의 풍광을 일컫는 사봉낙조는 성산일출 등과 더불어 영주 십이경에 꼽힌다고 한다. 오늘은 낮경치만 눈에 담는다.
정자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내려간다. 사라봉 정상에서부터 별도봉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까지의 1.5km 구간이 18코스에서 제일 좋다. 좌측으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로를 걷는 즐거움은 걷는 자만이 알 수 있다.
산책로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화북포구까지는 바닷가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 걷는다. 제주의 바닷가 마을을 걷다 보면 돌담을 자주 보게 된다. 담은 경계와 구분이다. 이 담의 안쪽은 나의 공간이고 내 것이라는 선언이다. 침범하지 말라는 강력한 신호다. 제주의 담은 다르다. 그 높이를 낮춤으로써 경계와 구분의 엄중함에 여유를 준다. 어깨 높이의 담은 안과 밖의 경계를 살짝 허물어 나와 타인의 눈 맞춤을 허락한다. 제주의 돌담에는 그런 정(情)이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삼양해수욕장이다. 아직 바람이 찬데도 아이들이 맨발을 파도를 쫓아 뛰어다닌다. 여기까지 11km. 배가 고프다. 근처 <황금무지개초밥>에서 모둠초밥(16,000원)으로 허기를 해결하고, 중간 스탬프를 찍기 위해 마을 쉼터로 내려갔다.
마음 쉼터 평상에 중년의 부부가 바다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있다. 서로 다투는지 언성이 높다. ‘손해가 몇 천만 원인데, 그깟 이자가 몇 푼이나 된다고 그러냐’, ‘왜 소리를 지르나요, 작게 얘기해도 되잖아요.’, ‘그냥 다 처분하는 게 낫겠어.’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다. 아내는 마냥 바다만 바라보고 있고, 남편은 아내를 보다 바다를 보다 한다. 저분들은 서로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화가 난 것이리라. 재빨리 스탬프를 찍고 못 본 척 돌아 나왔다. 내일은 사정이 좀 나아졌으면•••.
조천 종착지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신촌가는 옛길을 걸으며 제주 사람들은 제삿날에 음식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 걸까를 생각하고, 카페 피플(peapel)에서는 돌고래가 솟구치는 모습도 보는 행운도 얻는다. 닭모루를 돌아 신촌 어느 골목에서는 포카리스웨트 광고 촬영하는 것도 구경한다. “청바지~ 청바지~”라고 외치는데,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는 뜻이란다.
그래, 바로 내가 “청바지”다.
내 청춘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