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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고래가 숨 쉬는 바다

제주 올레길 21코스

by 배정철

#제주올레길21코스 #제주해녀박물관~종달바당 #우도 #지미봉


- 올레길 21코스 : 제주 해녀박물관 - 낮물밭길(1.2km) - 별방진(3.0km) - 석다원(4.0km) - 토끼섬(5.2km) - 하도해수욕장(6.7km) - 지미봉 정상(9.0km) - 종달바당(11.3km)

- 총거리: 11.3km

- 소요시간: 3:51


올레길 21코스는 11.3km로 짧다. 이 정도 거리이면 놀멍쉬멍 걸어도 3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이 코스는 제주의 동쪽, 구좌읍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작해서 밭담길, 바닷길, 그리고 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제주의 자연을 고르게 만끽할 수 있는 길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출발점은 제주 해녀박물관이다. 주차장이 넓어 자가용을 이용해서 오는 사람들은 편하게 주차할 수 있다.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버스를 이용해도 편리하다. 해녀박물관의 넓은 공터 오른쪽의 길을 따라 걷기를 시작한다. 조금 걷다 보면 야트막한 동산을 오르는데, 예전에 봉화대가 있었다는 연대동산이다. 울창하지 않은 소박한 숲길을 걷는 건 언제나 좋다. 연대동산을 넘어가니 초록의 인조 잔디가 깔린 하도운동장이 보인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운동장 옆을 지나 면수동 마을로 들어서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담과 담 사이 길 위에는 초봄의 햇살과 짠 내음을 살짝 실어 온 바람뿐이다.


뚜벅뚜벅 마을을 벗어나면 제주 고유의 멋을 지닌 밭담길이 펼쳐진다. 밭을 일구면서 걷어낸 돌로 밭의 경계를 삼았을 밭담이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올레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밭담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정겹다. 밭담길을 지나다 조금 낯선 성벽을 만난다. 별방진이다. 최근에 복원 공사를 하는 중인지 돌로 쌓아 올린 성벽에 각이 꽉 잡혔다. 별방진은 우도에 접근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 중종 5년(1510)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별방진을 빙 둘러 마을을 빠져나오면 곧 바다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지미봉까지는 왼편에 줄곧 바다를 끼고 걷는다.

이곳 바다는 해안에서 멀리까지도 얕은 모양이다. 저 멀리까지 바위들이 듬성듬성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고, 그 주위에서 물질하는 해녀들도 자주 보인다. 저 앞쪽 바다에 모래 해변이 살짝 보이는데, 토끼섬이다. 토끼섬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문주란 자생지다. 한여름에 하얀 꽃을 피우는데 그 흐드러진 모습이 마치 토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물이 빠지는 썰물 때는 걸어서도 토끼섬에 갈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문주란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종이다.


제주 올레길은 역시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때가 가장 좋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륙의 들과 산을 지나는 길이라 올레길과 그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과 옥수수밭 사이로 이어진 길을 걷는 것도 특별한 매력이기는 하다. 제주 바다는 한결같지 않아서 좋다. 얕은 숨을 쉬며 잠든 고양이 같이 얌전한 바다일 때도 있고, 흰 거품을 토해내며 거친 숨을 몰아쉴 때도 있다. 마을 앞에 있는 아담한 포구, 방파제의 품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크고 작은 어선, 잘 정비된 해안 도로를 따라 바다 쪽으로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는 현무암 무리, 그 위에서 한 줌의 흙을 간신히 부여잡고 싹을 틔워 내는 이름 모를 풀들. 제주 올레길의 자연스러운 얼굴이다.

어느덧 지미봉 입구다. 안내판을 보면서 잠시 갈등에 휩싸인다. 평탄한 둘레길을 따라 돌아갈 것인가, 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정상을 밟고 반대편으로 내려갈 것인가. 걷기를 즐기는 자에게도 편안함의 유혹은 언제나 있다. ‘올라가 보자’ 600m, 20분 정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나면 정상(126.8m)에 오른다.


'이곳에 오르지 않고 편하게 둘러 갔으면 어쩔뻔했나.'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동안 보았던 올레길 풍경 중에서 여기가 제일, 제1 경이다. 정상에서는 철새도래지, 우도, 성산일출봉뿐만 아니라 말미오름, 동눈이오름, 다랑쉬오름 등 360도로 제주의 풍광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우도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우도에서 제일 높은 오른편 쇠머리오름을 기점으로 왼쪽으로 길고 낮게 이어진 모습이 마치 고래가 잠시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살짝 몸을 내민듯하다.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담고 코스의 종착지로 향한다. 종착지 종달리 마을은 1코스를 걸을 때 점심을 먹으러 들른 곳이다. 소박한 상차림의 <순희 밥상>에서 한 번 더 점심을 할 계획이었으나, 화요일은 휴업이다. 허기를 안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종달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까지는 2km. 다 걸었다 생각했는데 더 걸어야 하는 이런 때가 제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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