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생각 31
걷기에 재미를 가지게 된 건 코로나 덕분이다.
참 길고도 질긴, 요즘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 몸 저 몸을 옮겨 다니는 보이지 않은 이 녀석이 걷기 싫어하는 나를 걷게 했다.
그러니까 방콕에서 지낼 때다.
학교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고,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은 셧다운 방콕.
모든 일상이 정지된 방콕의 평온과 한가로움은 더 큰 심리적 공포로 다가왔다.
길거리뿐만 아니라 사는 콘도 건물에 있는 카페, 수영장, 헬스장도 모두 사용이 금지된 고립의 시간.
갈 곳은 없고, 시간은 많았던 그때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30여 분, 그러다가 한 시간, 두 시간으로 늘어나고, 10km가 넘는 거리도 자주 걸었다.
도심에서 차이나타운을 지나 왓포 방향으로 가서 쪽배를 타고 짜오프라야강 건너편 왓아룬(새벽사원)을 지나 돌아오기도 여러 번 했다.
근처에 있는 걷기 좋은 룸피니 공원도 폐쇄되고, 길 건너편 쭐라롱껀대학교 교정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도심을 걸었다. 문 닫은 가게들, 인적이 드문 거리,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만 질주하는 도로.
방콕을 방콕이라고 부를 수 없는 풍경이 지배하던 그 시간이 오히려 걷기에는 좋았다.
운동장 트랙을 걷거나 공원을 뱅글뱅글 돌았으면 지루했을 텐데 시선의 변화가 많은 도심을 걷는 재미가 걷기를 지속하게 했다.
그렇게 걷기에 재미를 붙여 마침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도전했다.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레온까지 25일간 493km 1차 순례 그리고 레온에서 다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의 2차 순례를 다시 떠날 예정이다.
가끔 그때의 사진을 보갈 볼때면 가슴이 설렌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시 그 길을 갈 생각에 가슴이 뛴다. 걷기가 주는 마력이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알베르트 키츨러, 푸른숲, 2023)>라는 책을 읽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얻을 수 있고, 일상과 거리를 두면서 자연을 즐기는 걷기.
안온한 내면에 이르러 나 자신과 마주하는 걷기.
적절한 정도를 찾고 삶의 단순함을 깨닫는 걷기의 즐거움에 대해 역설한다.
걷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주장하기 위해 판다로스와 데모크리토스 등 고대 그리스의 시인과 철학자, 중국의 공자, 맹자, 순자의 말씀 등 고대와 현대, 서양과 동양 위인들의 무수한 이야기를 끌고 온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로제 폴 드루아, 책세상)>이라는 책도 읽었다.
고대와 현대, 동서양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걷기로 해석하는 독특한 시선이 흥미롭다.
걷는다는 걸 예찬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걷기는 글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
그냥 걸어 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