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골프를 잘 친다. 잘 치는 편이다. 보통 싱글 골퍼는 골프를 잘 친다고 한다. 싱글 골퍼란 핸디캡이 7 이하 인 골퍼를 말하는데, 전 세계 골프 상위 1%에 속한다고 한다(누군가 그렇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있는데 근거를 댈 수는 없다). 아무튼 싱글 수준의 골퍼는 잘 친는 걸로 인정해 준다.
골프를 시작한 건 2004년 9월이니 2023년 현재, 구력이 20년 되었다. 카이로 파견 당시 교민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시작했는데, 태권도장을 하시던 정사범님이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했다. 정부 파견 기관장이라 교민과 정부 눈치도 보여 나름 조심조심했다. 카이로에서는 골프 말고는 사교활동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가끔 교민회, 타 기관 사람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어 가 보면, 식사하는 두 시간 중에서 10여 분 정도만 학교 얘기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골프 얘기였다. 골프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다른 유흥거리가 없으니 모두들 그 얘기뿐이었다.
이집트는 사막의 나라인데 골프는 무슨 골프? 골프장이나 있나?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카이로 외곽에만 해도 골프장이 여러 개 있다. 교민들이 주로 가는 골프장이 2개 있었고, 이집션들이 주로 이용하는 골프장도 한국학교가 위치한 곳에서 아주 가까웠다. 한두 시간 거리의 바닷가에도 좋은 골프장이 있고, 그린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피라미드 가까이에도 골프장이 있었다. 피라미드를 바라보면 샷을 한다는 상상이 되는가?
모래사막에 만든 골프장이지만 물만 주면 죽은 나무도 살아나는 풍부한 일조량 덕분인지 회원으로 등록한 골프장(Mirage City Golf )은 지금 한국의 최상급 골프장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한국처럼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평한 환경이었지만, 선인장이 많은 모래 해저드와 인공으로 만든 워터해저드도 많아서 쉬운 코스라고만은 할 수 없는 코스 환경이었다.
지금도 그렇다는데 카이로의 골프 비용이 저렴했다. 그 당시 골프장의 연회비가 미화 2,000달러 정도였는데, 그린피 따로 없고, 라운딩 횟수 제한 없고, 캐디도 없으니 캐디피도 들지 않았다. 전동 카트(1인당 1만 원)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개인이 구입한 핸드카트를 주요 사용해서 연회비 외에는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았다. 태국을 골프천국이라는데 이집트가 한 수 위다. 한 달에 20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라운딩, 연습장, 사우나 시설을 모두 이용할 수 있고, 부부가 모두 회원이 되었으니 헬스장 연회비도 안 되는 비용이었다.(한국에서는 현재 주말 1회 라운딩 그린피만 15~20만 원 수준이고, 카트비, 캐디피를 포함하면 적어도 25~30만 원이 든다.)
골프 하기에 기후도 좋았다. 기온은 높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연중 비오는 날이 거의 없다. 겨울에도 영상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니 1년 365일 라운딩이 가능했다. 그런데도 골프 인구가 많지 않아 평일이든 주말이든 예약도 쉬웠다. 평일은 예약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골프를 하는 사람은 주로 외국인이고, 이집트인 중에 골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집트 골프 협회장이 운영하던 골프장인 까타메야 골프장(Katameya Heights Golf & Tennis Resort)에는 이집트 골퍼들이 많기는 했다. 1년에 한 번씩 두 골프장 회원끼리 대회할 때 그쪽 선수들은 대부분 이집션들이었다.
골프를 시작하고는 참 열심히 했다. 골프장에서 영국 프로골퍼에게 레슨을 받으면서 매일 퇴근 후에 거의 매일 연습장으로 가서 한두 시간 연습을 하고 집으로 가곤 했다. 요령이 없어서 그랬는지,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그랬는지, 정말로 연습량이 많아서 그랬는지 골프 장갑에 피가 배어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1년 만에 싱글 골퍼가 되었다.
다들 신기해했다. 이집트에서 처음 골프채를 잡았던 사람이, 젊기는 했지만 교장이라는 사람이, 1년이라는 단기간에 핸디캡을 줄여나가는 걸 보고 다들 놀랐다. 당시 대사님이 학교 잔디밭에서 골프 연습을 하나 안 하나 점검하러 가야겠다고 농담하시기도 했다. 나도 한마디 했다.
"대사님, 그 좋은 관저 잔디밭 그냥 보시기만 하지 마시고 숏게임 연습이라도 하세요~"
카이로에서는 골프를 잘 하면 말발이 섰다.
좋은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