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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16. 2023

꼰대 생각 35: 양반길 상놈길

충청도양반길 2코스

*트레킹 코스 : 충청도 양반길 2코스(13.27km)

-연하협구름다리 주차장-충청도양반길 출렁다리(0.2km)-양반길 전망대(0.3km)-옥녀계곡(0.9km)-선유대(0.7km)-운교리 교목(0.5km)-곰넘이재(2.9km)-사기막리 갈림길(0.5km)-옥녀봉(0.8km)-갈은구곡(3.0km)-갈론체험관(0.5km)-주차장(1.8km)

*소요 시간 : 6:28


"어르신, 충청도양반길은 어디에서 시작하면 되나요?"

"양반길은 무슨... 상놈길이유."

"아니, 왜요?"

"길이 별로 좋지 않고 힘들어요. 대부분 조금 가다가 다 돌아와요. 시작은 저기 출렁다리를 넘어가면 되유."


오늘 트레킹 코스는 충청도양반길 2코스다. 세종시에서 출발점인 갈론체험관까지 97km, 1시간 40분 거리다. 국도와 고속도로 양옆으로 산들이 바짝 다가와 있다. 경상도의 산은 높고 가파르고, 전라도의 산은 넓게 퍼져서 아늑하다. 이곳 충청도의 산들은 길에 가깝고 둥글둥글 다정스럽다. 막상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꼭 그렇지도 않지만.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도 늦었다. 갈론마을 도착하니 벌써 오전 9시. 길가에 주차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길을 돌아 나왔다. 마을에 널따란 주차장이 있긴 한데 유료다(1일 1만 원). 연하협구름다리 옆에 큰 무료 주차장이 있어서 그곳에 주차했다. 연하협구름다리를 넘어가면 양반길이 시작되나 싶어 올라갔다. 예초작업을 하고 다리 건너에서 돌아오는 어르신께 길을 물었다. 어깨에는 무거운 예초기를 매었고, 더운 날씨에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했는지 얼굴에 땀방울 송골송골 맺혔다. 미간에 주름이 잔뜩인 걸 보니 기분도 별로시다. 그래서였을까?

"상놈길이유~"

<충청도양반길 2코스 시작점 출렁다리>

상놈길이라도 양반처럼 뉘엿뉘엿 걸으면 되겠지 하는 심산으로 배낭을 고쳐 맸다. 주차장에서 양반길 출렁다리가 바로 보인다. 얼마 전 태풍과 장맛비에 주차장 화장실 지붕까지 물이 찼다고 하는데, 이 출렁다리 바로 아래까지 물이 높았다는 얘기다. 오늘의 모습으로는 쉬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출렁다리를 지나 양반길 전망대까지는 300미터 정도인데 계속 오르막이다. 초입부터 오르막이라 오늘도 산을 타듯이 트레킹을 하는 건가 살짝 걱정이 된다. 전망대에 오르니 저 아래 달천과 연하협구름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트레킹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주차장에서 여기까지만 걸어와서 잠깐 쉬었다 되돌아가도 좋겠다.


다행히 전망대부터는 길이 좋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난갈 정도의 좁은 길이지만 볕이 들지 않을 만치 숲이 우거져 있고, 오른쪽 저 아래에는 햇살에 눈부신 모래사장과 맑은 물빛을 담은 달천의 모습이 아름답다. 1km를 채 걷기 않은 지점에 옥녀계곡이 있다. 수량이 제법이다. 물이 맑고 시원하다. 손을 담그고 세수를 하며 잠시 땀을 식히고 간다.


700m를 더 가면 선유대다. 선유대 가는 길에 트레킹 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어디서 오시냐고 물었더니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이라고 한다. 선유대 지나서 길에 나무가 몇 그루 쓰러져 있어서 가기 불편하다고, 그래도 갈려면 갈 수는 있다고 한다.

선유대에 올랐다. 큰 바위가 강가 쪽으로 우뚝 솟아 오른 곳이다. 좌우로 흐르는 달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달천의 물이 남동쪽으로 내려오다 다시 북동쪽으로 꺾어 흐르는 곳이라 선유대 건너 쪽에 모래가 쌓인다. 은색 모래톱의 규모가 제법 크다. 짙은 비취색의 물 색깔로 봐서는 깊이도 상당할 듯하다. 선유대의 본모습은 운교리 쪽으로 200여 미터 지나 뒤돌아볼 때가 더 좋다. 누군가 알맞은 크기로 바위를 잘라 층층이 쌓은 모습이 언듯 피카소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연상시킨다.


길의 오른쪽으로는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곳곳에 검은 비닐 쓰레기가 걸려있다. 지난 호우 때 이곳의 물이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왔는지 짐작이 된다. 얼마 안 가, 조금 전 노부부의 말대로 큰 나무가 몇 그루 쓰러져 있다. 지나갈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 조심조심 나무를 타고 넘었다. 조금 지나 새뱅이 선착장이 있는데 이곳도 호우 피해를 본 곳이다. 곳곳이 흙으로 덮였고, 선착장 뗏목은 육지 쪽으로 바짝 당겨져 올라와 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복구가 될지...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이곳까지 일손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여기서 운교리 마을회관까지는 800미터, 곰넘이재까지는 3.2km라는 팻말이 보인다. 마을회관까지는 포장도로라 걷기에는 좋은데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가 없다. 여름 한낮이라 그런지 사람은 보이지 않고, 채소밭 작물은 지난 호우 때 피해를 많이 본 듯 성한 것이 없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도 오래다. 시골의 전원생활을 꿈꾸다가도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고, 마당의 잡초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스러워 주저하게 된다.


운교리 경로당 앞에 제법 커다란 정자가 있다. 경로당 정면에 <범죄 없는 마을> 인정패가 여러 개 붙어 있는 걸 보니 평화로운 마을인가 보다. 하긴 사람이 이렇게 없는데 평화롭지 않으면 또 어쩌겠는가. 범죄 없는 마을의 정자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정자에 있는 생수로 물통의 물도 채웠다. "이거 범죄잖아?" , "아냐 나그네들 먹으라고 둔 걸 거야. "


경로당에서 곰넘이재까지는 2km가 안된다. 마을을 지나 산 아래 곰넘이재 입구까지 왔다. 5km,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산 아래에는 최근에 지은 듯한 전원주택이 여럿 자리 잡고 있다. '계류보전'이라는 산림환경연구소가 있는데, 건물 중에 '극락보전'이 있는 걸 보니 사찰인 듯도 하고, 건물의 생김새는 모두 최신 전원주택이라 사찰이 아닌 듯도 하다. 계곡 근처에도 건물을 지어 놓았는데 무허가 건물이 아닌가 싶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은 이런 계곡도 독차지하는구나 싶어 괜히 심술이 난다.


곰넘이재까지 올라가는 길은 걷기에 좋다. 숲은 우거져서 햇볕을 가려주고,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준다. 물소리 나는 바위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찬물에 세수하고 바람을 맞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돗자리라도 펴고 드러누워 한참을 쉬고 싶으나 걷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으니 가야 한다. 곰넘이재 마루까지는 낮은 경사라 그리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이름이 '곰넘이재'인걸 보니 한때는 이곳에 곰이 서식한 모양이다. 곰넘이재에서 '윗사기막 갈림길'까지는 500미터. 내리막길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급히 오르면 급히 내려가고 천천히 오르면 내려가는 길도 느긋하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사기막리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옥녀봉(599m) 길이다. 갈론방향으로 가려면 옥녀봉을 향해 가야 한다. 곰넘이재에서 느긋하게 내려왔으나 다시 오르막이다. 이 구간이 오늘 코스에서 가장 힘든 길이다. 큰 비에 길은 묻히고 계곡의 돌다리도 사라졌다. 나무계단은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경사는 가팔라서 한 발 한 발 내 딛기도 쉽지 않다. 숨이 턱턱 막힌다. '더 이상 못 가겠다'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모기는 왜 이리 극성인지 잠시 서 있으면 수십 마리가 달려들어 윙윙거린다. 저 산 위의 옥녀가 도대체 어떤 여인이길래 이다지도 가까이하기가 힘들단 말인가.


드디어 갈림길. 옥녀봉까지는 300미터가 남았지만 그리 올라가지 않고 갈론 방향으로 내려간다. 올라온 길이 험하고 힘들었듯 내리막길도 경사가 제법 있다. 다리에 힘이 풀렸으니 내려갈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30여 분을 내려오니 계곡이다.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그고 한참을 쉬었다. 산이 깊어서 그런지 물도 차다. 이곳에서 갈론체험장까지 3km 정도인데 계곡이 쭉 이어진다. 갈론 마을에 가까이 갈수록 피서객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인다. 계곡이 깊지 않으면서 바위는 널다랗고 물이 맑고 수량이 많아 물놀이하기에 좋다.


갈론계곡 입구 지킴터에서부터 연하협구름다리 주차장까지도 1.8km, 30분 정도 거리다. 한낮의 햇볕은 식을 줄 모르고, 다리는 무겁기만 하다. 갈증에 허기까지 겹쳐온다.

'그나저나 뭐 먹지?'

양반길을 걷은 이가 양반이든 상놈이든 때가 되면 배는 고파지기 마련이다.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을 양반이든 상놈이든 경치가 좋다고 걸었을 것 같지도 않다.


코스별 안내  

제1코스 : 괴산댐 →산막이옛길→갈론마을 (산막이옛길 홈페이지)

2코스 : 갈론체험관(0.5km) - 갈은구곡(5km) - 사기막리(곰넘이재) (3km) - 운교리목교(0.5km) - 선유대(2.9km) - 양반길출렁다리(1.6km) - 갈론체험관

2-1코스 : 양반길출렁다리(3.4km) - 운교리 목교(2.6km) - 덕평삼거리(3.5km) - 용세골

3코스 : 사기막리(2.3km) - 용추폭포(2.1km) - 용세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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