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천을 건너고 건너 바다에 이르는 길
9길 신기역~ 삼척 소망의 탑 : 25.15km, 8시간 20분, 3~104m
- [아침 이동] 태백호텔-<54.9km, 1시간>-삼척종합버스터미널-<315(활기) 10:00>-신기역(10:40)
- [9길 트레킹] 신기역(10:40)-천기리-하정리 기차건널목-미로역-무사리 마을회관-마평교-삼척문화예술회관-장미공원-삼척항-소망의 탑(19:00)
- [원점 회귀] <택시, 10분>-삼척종합버스터미널-<111.6km, 80분>-켄싱턴호텔
- 볼거리 : 삼척 활기 치유의 숲, 장미공원
운탄고도 1330, 대망의 마지막 길, 9길이다.
9길은 아홉 개의 길 중에서 두 번째로 길다. 예미역에서 꽃꺼끼재의 4길이 28km(실제로는 30km가 넘음)로 가장 길고, 9길은 25km 정도다. 길지만 오십천을 돌고 돌아가는 길이라 오르내림이 없어 그리 힘들지 않은 길이다.
신기역 주변에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하기는 좋다. 신기역으로 되돌아오는 버스나 기차 시간을 잘 알아보고 시간을 맞추어야 마냥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신기역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신기치안센터>가 있는데, 건너편 철도 건널목을 건너면서 9길이 시작이다. 갈림길에는 표지판을 세워 두거나 화살표라도 그려 놓으면 좋으련만 아직 여기까지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간혹 방향을 꺼꾸로 표기해 놓은 표지판도 있다. 그런 점에서는 안내 표지판과 표식을 곳곳에 붙여 놓아 길이 헷갈리지 않게 만들어 놓은 해파랑길과 너무 대조적이다.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소망의 탑까지는 해파랑길 32길과 겹친다. 같은 삼척시에 있는 길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운탄고도는 푸대접이다. 길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자주 투털거리게 된다.
<신기노인회관>과 <신기행정복지센터>를 지나면 알록달록 이쁘게 채색된 <신동초등학교>가 보인다. 길 끝에서 경기남부도로를 만나는데 갓길이 좁아 걷기에 좋지 않다. 조금 내려가면 오른쪽에 대궐 같은 강원종합박물관이 있는데, 평일 오전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그 넓은 주차장이 차들로 빈틈이 없다. 궁금하지만 갈 길이 멀다.
여기서부터 4.0km 천기리까지 구간은 2차선 도로의 좁고 위험한 갓길을 걸어야 한다. 관광버스나 덤프트럭이 지날갈 때는 길 옆으로 피해 잠시 서 있어야 한다. 오십천을 넘어가는 작은 다리도 몇 개 건넌다. 다리를 건설할 당시에는 사람이 걷기도 한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다리 건너기가 더 위험하다. 천기삼거리 노곡입구부터는 인도가 있어서 그나마 나은 편이다.
천기리 지나 상정리, 하정리로 가는 길가에 대봉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대추나무에 대추도 서서히 익어 가는 중이다. 이곳에는 대추가 참 많다. 집집마다 대추나무가 있는 듯 흔하다. 한두 알 따서 먹어보니 아직 익지 않아서 텁텁하다. 트레킹 첫 날에 본 대추가 제법 익었다. 대추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니 추석이 가까이 왔음을,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겠다.
운탄고도 9길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인 준경묘와 장군의 부인 평창 이씨의 묘인 영경묘의 묘역이 있다. 길가에서 2km 이상 들어가야 볼 수 있는데, 두 묘역 간의 거리도 4km 이상 떨어져 있다. 부부의 묘를 왜 이렇게 서로 떨어져 조성했을까? 조선 건국 후에 선대의 묘를 찾아 묘와 비석을 정비했다고 하는데 한 쪽을 이장하여 합장하지 않았을까?
햇살은 뜨겁고 그늘이 없는 밋밋한 길은 걷다 보면 조그마한 원형의 하정교차로에 닿는다. 갈림길인데도 표지판이 역시나 없다. 지도에는 갈림길의 왼쪽으로 안내되어 있는데 오른쪽 길로 가도 하정리로 가게 된다. 하정리 마을 입구에 있는 하정 1교는 낮아서 오십천의 얼굴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다. 하정리 기차건널목을 지나니 옛 모습을 간직한 오래된 집이 여러 채 보인다. 오래된 집은 마지막 살던 이가 떠난 후에는 텅 빈 주인 없는 집이 되어 사람의 온기는 간데없고 늦여름 햇살만 마당에 가득하다.
하정안길은 자그마한 고개다. 뒤편 내리막 길은 제법 숲이 우거져서 지나온 길과는 사뭇 다르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재를 넘어서 내려가다가 상거노안길을 쭉 따라 걷지 말고 왼편에 있는 기차건널목을 건넌다. 똑바로 가더라도 구부러진 길을 돌아 다시 돌아오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도 불친절하게도 안내판이 없다. 하정 2교 양쪽으로는 시야가 탁 틔여서 풍광이 시원하다. 오십천을 산이 감싸 안아 바다로 향하게 이끌어 준다.
다리를 지나 잠시 도로변을 걷게 되는데 길가 어느 집에서 아저씨 한 분이 일을 하고 계시면서 계속 눈을 맞춘다.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다.
"여기 지나다니는 덤프트럭이 아주 많던데, 뭘 운반하는 건가요?"
"석탄이나 석회석이 아니라 크랭크라고 하는 주먹만 한 광물인데 제련제철에 사용된다고 해요."
"삼척에 있는 공장으로 가는 건가요?"
"삼척 공장이 아니라 동해항으로 가서 배에 실어 포항제철로 보내는 거죠."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이장님이세요?"
"지금은 아닌데, 이장을 몇 년 했거든요."
덤프트럭이 큰길로 가면 과적차량 단속을 당하게 되어 작은 길로 우회를 하는데, 관청에 신고를 하고 도의원에게 민원을 넣어도 해결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운탄고도 9길을 만들 때 도의원과 강원대학교 교수들과도 여러 차례 협의를 하며 직접 참여를 했는데, 당시 계획대로 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서 아쉬워한다. 갓길이 좁고 빠르게 달리는 덤프트럭 때문에 가끔 마을회관으로 모이는 노인네들이 위험하다고 걱정이 많다. 도청에서는 관련 예산이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고 하는데, 언제 개선이 될까?
11km, 미로초등학교가 보이는 곳까지는 말 그대로 오십천의 굽이를 따라 돌고 도는 길이다. 미로초등학교를 지나면 저만치 미로역이 보인다. 길가 단층 건물인데, 이곳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한적한 동네다. 미로 1교를 건너 미로우체국, 미로면 행정복지센터, 미로면 복지회관, 미로파출소, 미로보건지소, 미로119지역대가 줄줄이 있다. 이 작은 마을에 온통 공공기관만 번듯하게 지어 놓았구나 싶다. 게다가 미로 어린이집을 지나 미로 둔치에 이르면 이전에 보던 오십천변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캠핑장으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비를 잘해 놓았고, 오십천 건너편에는 파크골프장까지 있다.
이후의 길은 지나온 길과 비슷하다. 오십천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 길, 경치가 비슷비슷하니 다소 지루하다. 16km 지점 쯤 가면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인다. 삼척시에 가까워진 거다. 삼척중학교에서 지도에 안내된 큰길을 따라 걷다가 서부초등학교 앞에서 우측으로 내려와도 되고, 삼척중학교에서 건지대교를 건너 주공아파트 쪽으로 걸어도 상관없다. 이곳에도 안내표시가 없다. 엑스포로를 따라 삼척문화예술회관까지 걷는 길은 그나마 가로수가 그늘을 드리워줘 시원하다.
삼척시립박물관에 들어가 잠시 둘러본다. 강원도와 삼척시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찾아 오는 이는 없고, 입구 안내 직원 두 명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 느긋하다. 삼척시에도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같은 누각인 죽서루가 있다. 죽서루는 보물 213호로 관동팔경(총석정, 청간정, 낙산사, 삼일포, 경포대, 망양정, 월송정, 죽서루) 중 하나이다. 다른 관동팔경의 누, 정이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죽서루만이 유일하게 강(오십천)을 끼고 있다. 죽서루의 건립 시기는 미상이나, 여러 역사적 기록을 통해 볼 때 고려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석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17개의 기둥을 세워 지은 정자로 관동팔경의 정자 중 가장 크다.(출처: 위키백과)
삼척 죽서루가 죽서교 왼쪽 강변에 보인다. 아쉽지만 가야할 길은 삼척장미공원이 있는 오른쪽이다. 천변 화단에는 9월인 지금도 장미가 아직 많이 피어 있다. 장미향이 코를 찌른다. 장미화단 쪽은 그늘이 없어 자전거 도로 쪽으로 올라와 걷는다. 자전거 도로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미공원 끝에서 삼척항을 지나 오늘의 종착지 소망의 탑까지는 3km, 40분 거리다.
어제 그리고 오늘 같이 걷던 오십천은 흘러 흘러 동해의 넓은 품 속으로 파고든다. 오십천의 그 맑은 물은 동해를 만나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바다를 만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내 달렸나 보다. 동해 바다는 넓고 깊어 그 품을 가늠하기 힘들다. 바다는 길과 멀지 않고 가까이에서 부딪친다.
드디어 소망의 탑에 도착, 아쉽게도 소망의 탑은 보수 중이다. 지난 태풍 때 피해를 입었는지 가림막으로 막아놨다. 틈새로 들여다보니 뿔 모양의 조형물 가운데에 종이 매달려 있다. 운탄고도를 완주하고 저 종을 울리며 소망을 빌었어야 하는데, 아쉽다. 그래도 9개의 길을 9일 동안 무사히 걸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리고 저 종을 울리며 소망을 빌었을 게다.
'또 내일도 이렇게 걷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철이의하루여행 #운탄고도1330 #운탄고도9길 #삼척소망의탑
10월 4일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2차 순례(레온~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연재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