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천에 서린 소달초등학교의 추억
8길 도계역 ~ 신기역 : 17.73km, 5시간 50분, 91~247m (Garmin 측정 17.81km, 5시간 37분)
- [아침 이동] 태백호텔-<15km, 20분>-도계역
- [8길 트레킹] 도계역(9:00)-도계교차로-고사리역-소달초등학교-마차리-대평리-신기역(15:00)
- [원점 회귀] 신기역-<기차 15:43, 19분>-도계역(16:02)-태백호텔
- 볼거리 : 까막동네, 홍전삭도마을
오늘은 운탄고도 8길(도계역~신기역)을 걷는다.
태백호텔에서 도계역까지는 차를 운전해서 간다. 역 바로 옆에 깨끗하고 넓은 무료 공영주차장이 있다. 비가 올 듯 말 듯, 구름이 산 바로 위까지 내려와 낮게 깔렸다. 비 예보가 있어서 걱정이지만 운탄고도 8길은 산을 넘는 구간은 없어 비가 오더라도 완주를 할 생각이다. 역에서 내려와 농협 앞 종합안내 표지만을 살펴본 후, 길을 따라 도계초등학교 방향으로 걷는다.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라는 간판과 함께 제법 큰 건물이 있는데 아직도 석탄과 관련된 사무를 보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하는 곳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대한석탄공사’라는 단어가 연탄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도계초등학교 잔디 운동장이 예쁘다. 천연잔디는 손이 많이 가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직도 학교만 보면 눈과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싶어 혼자 웃는다. 카카오 지도를 보면 도계초등학교 앞 작은 개울을 건너가야 한다고 나오는데 근처에 운탄고도 안내판을 찾을 수가 없다. 여기뿐만 아니라 이 코스에는 길 안내 표시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걷는 내내 애를 먹게 된다. 운탄고도 1~6길까지는 초록색 표지목이 곳곳에 잘 설치되어 있지만, 7~9길은 갈림길에 표지목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앱 지도를 자주 보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 두루누비에 있는 동해안의 해파랑길, 남해안의 남파랑길, 서해안의 서해랑길 따라 걷기 서비스와 같은 '운탄고도 길안내 앱' 서비스도 제공되면 좋겠다.
개울을 건너서 골목길로 직진, 작은 굴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 올라간다. 굴다리를 지나기 전, 길가 모퉁이에 작은 카페가 있다. 카페 간판 아래에 '보헤미안 박이추'라고 새겨져 있어서 그곳과 관계되는 곳인가 싶어 커피맛이 궁금해진다.
왼쪽으로 기찻길을 두고 인도를 따라 걷는다. 도계역 기준 2.4km 지점의 도계교차로, 강원남부도로와 만나는 지점까지 줄곧 같은 방향이다. 이 길은 특별히 눈길을 사로잡는 게 없다. 공공근로를 나와 휴지를 줍고 계시는 분들,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 앞 통학버스, 어느 집 긴 담벼락에 그려진 솜씨 좋은 벽화를 보면서 교차로까지 간다. 철길 옆쪽으로 오십천이 흐르고 있는데 걷는 길 쪽에서는 보이지 않아 아쉽다.
도계교차로에서 삼척방향으로 우회전, 도로 옆 인도를 따라 걷는데 6차선 도에로 차들이 빠르게 달린다. 7길까지 느끼던 강원의 맑은 공기가 여기에는 없다.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 보도블록의 딱딱한 촉감, ‘분신’, ‘투쟁’, ‘결사반대’가 적힌 현수막(마교 지역에 석회석 광산을 개발 중이라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중)이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렇게 4.5km를 걷고, 고사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고사리역>이 있는 늑구리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로 들어가는 <늑구교>에서 오십천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오십천의 폭은 넓다. 물은 맑고 얕아서 바닥이 훤하게 다 보일 정도다. 오십천(五十川)은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와 삼척시의 경계인 백병산에서 시작되어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총길이 46.06km로 곡류가 심하여 동해로 흘러가기까지 50번가량 꺾여야 한다고 해서 오십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걸으면서 만나는 오십천의 얼굴의 다양하다. 조용조용 낮은 소리로 환하게 웃다가도 거친 숨소리를 내며 내달리기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하다가도 속을 훤히 드러내기도 한다.
마을 중간쯤에 있는 고사리역은 여느 폐역과 마찬가지로 울타리로 가로막혀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작은 역사와 단아한 글씨체의 역 표지판과 잘 어울린다. 이런 폐역에 운탄고도를 걷는 이들이 잠시 들러서 기념사진도 찍고, 역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는 쉼의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역뿐만 아니라 운탄고도 구간에 있는 폐역 모두가 사정이 같다. 광부와 석탄 산업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이라는 주제가 무색해진다.
늑구리에는 유명한 은행나무가 있다.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59호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는 수령이 무려 1,500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마을 끝에 있는 소달초등학교로 넘어가는 갈림길에서 왼쪽 오름길로 가야 볼 수 있다.(트레킹을 하는 중에는 가 보지를 못했고, 다음 날 9길을 가기 위해 차로 이동할 때 가 봤는데, 차로 가기에도 길의 경사가 심해서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1,500년 전이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인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마을 끝에 있는 성황당을 지나면 소달초등학교로 넘어가는 길이다. 이곳 늑구리 아이들도 이 고개를 넘어서 소달초등학교에 다녔지 싶다. 지금 늑구리에서는 어린아이는커녕 사람을 보기 조차 힘들다. 고갯길은 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허벅지 높이까지 자란 풀 때문에 발이 걸려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고 풀잎에 맺힌 빗물에 바지도 다 젖는다. 소달초등학교 주변을 청소하고 있던 분들 얘기로는 도계읍에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길이 그 지경이라고 한다. 운탄고도 8길은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은 길이다.
소달초등학교 뒤쪽으로 들어와 운동장이 보이는 조회대 겸 쉼터에 자리를 잡는다. 학교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정문과 옆문에 차량 출입을 막는 철책이 걸려 있는 걸 보니 폐교된 듯 보인다. 검색해 보니, 1927년 개교, 2021년에 도계초등학교 분교장이 되었다가 2023년 2월 말로 폐교되었단다. 폐교 후에도 관리를 주기적으로 하고 있는지 주인 없는 운동장에 잡풀도 없이 깨끗하다. 심지어 화단에는 꽃도 예쁘게 피어 있다.(시니어 클럽에서 주기적으로 청소 등 관리를 한다고 한다.)
이곳에 앉아 있으니, 1991년 첫 부임한 거제도 둔덕초등학교 상동분교장 시절 생각이 난다. 유치원 1 학급에 초등 4 학급, 학생 수가 서른 명이 채 되지 않은 작은 산골학교. 이곳 산달초등학교보다 규모가 더 작았다. 아침마다 노래를 부르며 학교를 오던 대성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소변이 마렵다며 뒤돌아서서 골대에 소변을 보던 현득이, 엄마가 내 또래 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엄마딸 현이, 마흔이 넘은 그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학교를 나와 왼쪽으로 돌아 나오니 오십천이 눈앞이다. 맑은 물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내달린다. 뒤돌아 서서 소달초등학교에서 보이는 전경을 그려 본다. 이곳 아이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매일 눈에 넣고 살았겠구나. 이렇게 더운 날 오십천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리면 아이들은 오십천으로 뛰어들었으리라. 저 산과 들이 빨갛고 노랗게 물이 들면 단풍잎으로 그림을 그렸으리라. 오십천 위로 하얀 눈발이 날리면 아이들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소란스러웠으리라. 텅 빈 운동장은 지금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겠구나.
교회 같지 않게 이쁜 교회, 은광교회를 지나 마을로 들어가니 초록색 조끼를 입은 노인분들이 휴지를 줍고 계신다.
“공공근로 하세요? 하루 3시간요?” 하고 아는 척을 했더니, 하루 3시간에 2만 7천 원을 받고 일주일에 나흘 일 하신다고 밝게 웃으신다. 고향에 계신 여든이 넘은 어머니도 가끔 공공근로 나가시는데 운동도 되고, 말동무도 되고 좋으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작은 마을에 노인들이 참 많다.
여기에서 마차리역(폐역)까지 4km는 그야말로 길을 만들면서 걷는다. 카카오 지도에서 알려주는 길과 간간이 있는 운탄고도 안내 표시판이 약간씩 달라져 주의해야 한다. 가다가 보면 길이 없거나 오십천을 건너야 하는데 징검다리에 물이 높아 건널 수 없거나, 풀이 많이 자라서 걸을 수가 없는 곳이 곳곳이다.
특히 발이리(차구리)에서 표지판을 보고 오십천을 건너 가면 길이 없다. 강변의 자갈을 밟으며 걷다가 겨우 길을 찾아 올라간 후, 마차리역으로 가는 길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표지판은 다시 반대편으로 오십천을 건너가라고 되어 있지만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건널 수가 없다. 물을 건너지 못해 할 수 없이 차도를 따라 걷는데 덤프트럭이 빠르게 지나가고, 인도 없는 갓길이 좁아 차가 지나갈 때마다 옹벽에 바짝 붙어 서서 마음을 졸여야 한다.
고사리역, 하고사리역, 마차리역은 모두 폐역이다. 운탄고도 트레킹을 하거나 추억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잠시 들어가 살펴볼 수 있도록 입출구를 마련하고, 역의 역사를 소개하는 간단한 자료도 전시해 놓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십천을 따라 걷는 경치는 절경인데도 불구하고 가까이에서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오십천을 따라 걸을 수 있게 코스를 개선하고, 필요하면 테크길도 설치하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12km, 마차교차로에서 삼척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걷다가 마을길로 내려선다. 마차리에서는 한동안 길게 뻗은 농로를 따라 걷는다. 마을 끝에서 다시 큰 도로 쪽으로 올라왔다가 대평리로 내려가고 철로변을 따라 걸으면 신기역에 닿는다.
추신 : 돌아오는 길에 도계 5일장에 들러 메밀부침과 메밀전병을 사 먹고, 밤과 찹쌀 도넛도 샀다. 보헤미안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셨는데 커피 맛은 주인장의 자부심과는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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