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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 생각

꼰대생각 43. 산청

by 배정철

산청을 다녀왔다. 커피인문학 수업을 하고 왔다. 산청은 내 고향 진주와 가까운 곳이라 친숙한 곳이다. 고등학교 친구들 몇몇은 산청읍 중학교에서, 몇몇은 산청군 어느 작은 마을 중학교를 마치고 진주로 유학을 왔다. 아마도 그들은 어릴 적부터 천재나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그중에 몇몇은 그 재능과 능력을 지금도 발휘하고 있고, 또 몇은 나처럼 그저 그런 보통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리 나쁘지 않다.


진주에서 산청으로 가는 도로가 잘 닦였다. 덕분에 진주에서 산청까지는 그리 먼 곳이 아니다. 산청은 지리산이 가까워 다른 곳과는 다르게 늦가을 단풍이 제법이다. 올해는 가을에 여름이 겹쳐 쉬이 물러나지 않아 가을이 온전한 가을이 아니다. 서리 맞고 밤새 추위에 움츠리며 참고 견딘 내력을 고운 색을 뿜어내지 못한다.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수천 년을 해오던 일을 제뜻대로 하지 못하는 나무도 몹시 답답하겠다. 저러다 겨울은 또 어찌 날지.


보슬보슬한 비가 내리고 산과 산 사이 마을에는 물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사이로 마을을 이루는 집과 논밭이 언뜻언뜻 보인다. 늦은 아침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이쪽 숲에서 푸드득 작은 새 한쌍이 저쪽 숲으로 날아간다. 산과 들, 풀과 나무를 마주 보고 사는 사람들은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걸 이 아침에 알아챌까? 그저 오고 가는 것이 계절인 것을 무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듯 무심히 새날을 맞이할까? 지나간 시간은 이미 어제이고, 오늘은 어제의 오늘이 아니라 아침은 늘 새롭다. 매일 오는 아침이라 그 새로움이 무감각으로 잠식되어 가는 사태가 잠시 슬프다.


도로변에서 한참 들어간 마을 안쪽에 공립유치원이 있다. 잠시 길을 잘못 들었나, 내비게이션 길 안내가 잘못된 것 아닐까 걱정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은 두 번 놀란다고 한다. 한 번은 이런 곳에 유치원이 있나 하고, 또 한 번은 시설이 참 좋다 하고, 원장님 말씀이다.


매일 아침 저 산골짜기 마을에서 눈 비비며 잠에서 깬 아이들은 노오란 가방을 메고 신나게 노오란 버스를 타리라. 지난밤 자기 마을에 캄캄한 어둠이 어떻게 다녀갔는지 조잘대며 유치원으로 간다. 밤새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참았던 친구들이 모이는 유치원이 녀석들에게는 얼마나 신나는 곳일까. 지리산 곁 어느 마을 유치원에 산 곁에서 모인 아이들이 있다. 커피를 사랑하고 인문학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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