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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생각47_ 철학이 필요한 시대

by 배정철

철학은 그 시대의 아들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어떤 철학이 있을까?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지금의 시대를 대변하는 철학인가? 저마다의 손에 최첨단의 소통 기계를 들고 있으면서도 불통의 시대, 나만 옳은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같음만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라는 말은 구태가 된 지 오래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 또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생각이다. 내 편은 옳고 저 편은 늘 틀리다. 나는 살고 너는 죽어야 한다. 法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판단의 기준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법은 이미 아는 자, 만드는 자, 이용하는 자에게만 유용한 도구다. 神에게서 절대의 진리를 찾는 것도 무의미하다. 신은 절대적으로 나만 옳은 내 편에서의 신일뿐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식 능력에 의한 이성을 신뢰하고 하나의 명제로부터 개별적 명제를 찾아가는 합리론도, 후천적으로 쌓는 경험에 의한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경험론도 무용지물이다. 이성은 내가 옳다고 믿는 명제만을 선택하고, 경험은 내 편이 쳐놓은 감옥 안에서만 유효하다. 하나의 사실로부터 극명하게 다른 두 개의 결론이 도출될 뿐이다. 이 편에서 참은 저 쪽에서는 거짓이고 이쪽에서의 거짓은 저쪽에서는 늘 참이다. 객관적 세계는 단지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주관적 세계의 다름 아니다.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 철학이 필요하다고 한다. 과잉 소통, 과잉 정보의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나마 버틸 수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흔들리더라도 내 다리가 굳건히 설 수 있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무엇이 옳고 그런지, 나와 다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불안하고 두려운 시대다. 지금,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일까? '진영'이라는 팝놉티콘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


욕망을 절제하고 인내하며 살아야 한다고 설파한 세네카 같은 스토아 철학을 삶의 지렛대로 삼을까 하다가, 누가 뭐라고 하는지 상관없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며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 철학에 마음이 기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만 잘 살면 돼. 이 추운 날씨에 저게 뭐 하는 짓들이야. 저런다고 세상이 변하나?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사는 게 옳은 거야. 골치 아픈 일은 하고 싶은 사람이나 하라고 해!'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거야? 인생 헛살았구나.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무엇이 옳은지 뻔히 알면서 입 닫고 모르는 척하며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런 것은 그르다고 얘기해야 돼. 그게 올바른 삶이야!'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아 줄 시대의 철학을 찾고 있다. 빙빙 돌아가는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아 줄 든든한 기둥은 어디에 있을까? 시대의 철학을 바깥, 나의 외부로부터 찾는 것 또한 어리석은 생각인가? 철학서를 읽으며 생각은 더없이 흔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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