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선생~ 하고 부르는 분이 있다. 지금도 가끔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고는 하는데, 호칭이 여전히 배선생이다. 배'교장님'도 아니고, 배'교장'도 아니고, 배'선생님'도 아닌 그냥 배'선생'이다.
이 분을 만난 건 2004년 카이로한국학교장으로 파견 근무를 때다. 한인식당을 하시는 분인데, 지금은 연세가 팔 순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내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이라 전혀 교장으로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몇 안 되는 주이집트 대한민국 공기관의 기관장인데 그 분만 매번 호칭이 '배 선생~'이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교장이라기에는 너무 젊었으니 '님'자는 빼더라도 '배교장' 정도로 불러주면 했는데, 오로지 그 분만 배 선생~으로 불렀다.
국어사전에 '선생'은 1.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2.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3. 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꼭 '님'자를 붙이지 않고 아무개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는 의미다. 그분이 사전 1의 의미로 불렀어도 맞는 말이고, 2의 의미로 불렀다면 분에 넘치는 일이고, 3의 의미로 불렀으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님'자를 안 붙여 불렀다고 서운해하는 내가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사전적 의미가 그렇기는 해도 우리 사회에서 '아무개 선생~'하고 부르는 건 어쩐지 좀 하대하는 느낌이다. 윗사람이 조금 높여 부르는 듯 하기는 해도 아랫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교장이 같이 근무하는 교사를 부를 때도 그럴 수 있지만 친밀도가 높은 사이일 경우에라야 그럴 수 있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님'자를 꼭 붙여서 OOO 선생님이라 부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건 적건 상관이 없다. 직함을 가진 사람은 OO부장님, 실장님, 수석님 등으로 호칭한다.
사회생활하며 만나는 사람, 알게 된 사람은 대부분 그 직함에 따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부르기에도 무난하고 듣는 상대방도 싫어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지위가 높을 때는 더 그렇다. 회장님, 사장님, 대표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부장님, 실장님 등등. 상대방의 직함을 제대로 몰라 교장을 교감으로, 장학관을 장학사로, 국장을 과장으로 잘못 호칭하면 핀잔을 듣지는 않아도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잘 모를 때는 한두 단계를 높여 부르는 게 상책이다. 특히, 국회의원, 도의원 등 의원 나리님들을 호칭할 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호칭하는 걸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기는 하지만.
직함에 따른 호칭은 퇴직 후에 더 빛을 발한다. 교직의 경우, 교장으로 퇴직한 분은 은퇴 후에도 O교장님~이라고 부르고, 교육장으로 퇴직하거나 교장으로 퇴직하더라도 교육장을 한 번 거친 분에게는 꼭 교육장님~으로 호칭한다. 그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분을 본 적이 없지만 다들 그렇게 호칭하고 또 상대방도 흐뭇해하는 것 같다. 퇴직한 분들 여럿이 모인 자리, 퇴직 전 경력이 섞여 있는 경우, 살짝 난감할 때가 있다.
묘비명이나 제사 지낼 때 지방에 직함이 들어가기도 한다. 교장을 지낸 사람은 현고교장부군신위(顯考校長府君神位)로 쓸 수 있다. 관직이 없었던 사람은 통상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로 쓴다. '학생'이라고 쓰는 건 아마도 살아 있을 때도 죽었을 때나 늘 배우는 자세로 이승과 저승에서 살라는 선조들의 큰 뜻이 담긴 것은 아니었을까?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후손들은 '학생'에서 벗어나려고 죽을힘을 다해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애를 쓰며 산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은 남긴다는데, 알고 보면 사람은 죽어 빈껍데기 직함만 남긴다.
"앞으로 회장님이라 부르지 마세요"
오늘자(2023.2.2.) 자 신문 기사다. 삼성전자에서 '유연하고 열린 소통 문화를 위해 경영진, 임원까지 수평 호칭을 확대한다'는 내부 공지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재용 회장의 경우 '재용님', 영어 이름 'Jay', 이니셜 'JY'로 호칭한다고 한다. 회사 내에서 회장님, 팀장님, 그룹장님, 파트장님 같은 직책명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수평적 호칭 문화는 이미 IT기업 등에서 실시하고 있고 확산하는 추세이긴 한데,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서도 실시한다고 하니 더욱 확산될 듯싶다.
학교의 경우라면 어떨까?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이랑 호칭하지 않고,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서 교장이던 교감이던 부장교사이던 OO님~고 부르는 것이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다른 조직에 비해 수직적 위계가 많지 않지만 서로 OO님~이라고 호칭하면 좀 더 편안한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학교에서부터 시작하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겠나. 교장 할 때 해 볼걸 하고 이 글을 쓰면서 후회하는 중이다.
한 가지 고민은 있다. 교직원끼리는 그렇다 하더라고, 학교에서 학생들도 선생님을 부를 때, 이름으로 OO님~이라고 부르게 한다면? 상상을 해 보니, 이건 좀 아닌 듯도 하다. 아직 여기까지는 못 가겠다. 선생님들의 생각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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