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참 많이 하고 살았다. 결혼 후 분가하기 전에도 이사를 많이 다녔고, 결혼하고도 이사를 많이 다녔다. 세어 보니 무려 열여덟 번이다.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낸 두 번은 빼고도 그렇다. 살아 본 곳도 다양하다. 진주에서 나고 자라서 거제, 창원, 일산, 안양, 카이로, 세종, 그리고 방콕. 결혼 후 처음 살았던 거제 월셋집에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당이 있었는데, 그 후에는 줄곧 아파트나 콘도에 살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남은 인생을 보낸다 해도 나가달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어쩐지 이곳에서 그러고 싶지 않다. 아파트가 아니라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그래서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어떤 집을 지을까? 양동마을 관가정 같은 옛집 스타일이 좋을까, 아니면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를 닮은 단아한 집이 나을까? 서소문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처럼 현대식 건물 위에 기와지붕을 얹어 볼까? 집을 지은 친구 말로는 건축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고 한다.
사실 집의 겉모양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집을 짓고자 하는 건 가지고 집이 아니라 갖고 싶은 공간 때문이다. 아파트 방보다 넓은 서재를 갖고 싶다. 키보다 훨씬 높은 삼면 벽 가득히 책장을 두고, 열 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책상을 둘 수 있는 서재. 커다란 통창으로 햇살이 무시로 쏟아지고, 비 오는 날 그 창가 작은 탁자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 서재 바닥은 입구보다 한참 낮추어 라우렌시오 도서관의 미켈란젤로 계단을 만들 거다.
서재 옆에는 드럼을 한 대 놓을 수 있는 음악실을 둘 생각이다. 책을 읽다 지치면 한두 시간 마음껏 두드리고 그러다 흥이 나면 혼자 노래를 불러도 좋겠다. 아무리 세게 두드려도 층간 소음 때문에 아랫집에서 전화가 오지 않고, 옆집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곳.
그리고 커피를 볶을 수 있는 별채도 있어야 한다. 프로밧이나 기센 중에 하나를 골라 설치하고, 생두는 좀 넉넉하게 쌓아두고, 일주일에 두세 번 로스팅해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낼 거다. 커피를 볶는 일은 나이가 좀 많을 때 까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책 읽다가 드럼 치고, 커피 볶다가 햇볕 쬐고 그러고 살면 시간이 참 따뜻하게 흘러갈 것 같다.
그런 집을 짓자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땅 사고 집 지을 돈은 있어?"
늙으면 꿈도 못 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