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백팩을 매고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선다. 열흘 일정으로 해외 여행을 간다. 학교는 개학으로 한참 바쁜 시기인데 이렇게 한가로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건 백수의 특권 중에 하나다. 언제나 처럼 직접 여행 일정을 준비한 배낭여행이다. 싱가포르를 거쳐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쿨알라룸푸르를 둘러 볼 계획이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여행의 설레임으로 작은 흥분이 인다.
직접 준비하는 배낭여행에서 오는 설레임은 사실 즐겁고 흥겨운 순수한 설레임이 아니다. 적잖은 불안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 설레임이다. 언어가 다르고 환경이 낯선 곳에 간다는 불안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더 직접적인 불안이다. 여행 준비물은 빠뜨린 것은 없는가? 공항버스 표는 제 날짜로 예약을 했을까? 예약한 항공권에는 문제가 없을까? 한 국가 한 도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 군데의 호텔과 싱가포르에서 말라카로 이동하는 버스 날짜와 시간은 제대로 예약을 했을까? 평소에도 지하주차장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두고 간 물건을 챙겨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외국으로 갈 때는 걱정이 더 할 수 밖에 없다.
코미디 같은 일이 있었다. 세종시에서 혼자 생활할 때, 아내가 주말에 창원에서 올라왔다. 저녁 시간에 영화를 보러 갔다. 상영 시작 시간 임박해 도착해서 서둘러 입장을 하고 자리에 앉아 정신응 차리고 보니 예약한 영화가 아니다. 분명 예약한 영화는 외국영화였는데 한국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들어오기 전에 직원이 영화표를 확인했고, 영화관 번호와 자리도 맞게 앉았는데도 그랬다. 휴대폰에 있는 영화표를 다시 확인해 보니, 예약한 곳은 세종시가 아니라 창원시에 있는 영화관이었다. 영화관에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직원도 자세히 보지 않고 통과를 시킨 것이었고, 다행히(?) 관람객이 많지 않아 자리도 비어 있었던 모양이다. 웃기지도 않는 영화를 보면 키득키득 웃었다.
잘못 예매한 영화는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라도 어쨌던 다른 영화라도 보았지만, 잘못 예매한 기차표는 그 댓가가 제법 컸다. 일요일 저녁, 세종 집으로 돌아가는 아내를 배웅하고 막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다.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좌석에 앉아 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고, 검표원이 와서는 그 날 표가 아니라 전날 표라면서 무임승차 벌금까지 물며 다시 표를 사야한다는 거다. 아내는 특실 좌석보다 훨씬 비싼 값을 내고도 서서 갔다.
이런 일을 가끔 벌이다 보니 취소 수수료가 크고 환불도 안되는 호텔 예약을 여럿 해야 하는 해외여행을 준비한다는 것은 정말로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안전하게 탑승, 탑승권 발급도 무사 통과, 공항 검색도 가뿐하게 지나 오늘 탈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탑승구 앞에 도착한다. 탑승구 안내 표지판에는 내가 들고 있는 탑승권에 있는 번호와 똑같은 TW173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그러고 보니 여행은 소소한 불안이 편안한 설레임으로 바뀌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