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에서 돌아온 금동관음보살좌상
2017년 초에 무게 38.6㎏의 작은 불상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었습니다. 한국의 절도범들이 일본 대마도의 간논지에서 훔쳐 온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에 대한 판결 때문입니다. 그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973년 일본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일본 문화재입니다. 훔쳐 온 문화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으로 돌려줘야 할 것 같지만, 사정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14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의 원 소유권을 충남 서산의 부석사가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불상 안에서 신도들의 불심을 담은 ‘복장 결연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서산의 부석사가 언급이 되어 있는 것이 그 소유권 주장의 근거입니다. 부석사는 왜구의 침입 때 이 불상을 약탈당했다고 주장합니다.
대전지방법원의 1심에서는 소유권이 부석사에 있다는 판결이 났습니다.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 불상의 안전한 보호를 위해 현재 이 불상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불상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판결에 대해 일본 관방장관은 매우 유감스럽다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원래 우리 것인데, 일본이 돌려받지 못한다고 유감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이 불상의 소유권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본이 우리 문화재를 강제로 약탈해 간 것이니 당연히 서산 부석사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는 ‘약탈’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써는 없으니 ‘약탈’을 증명할 수가 없다는 거죠. 구매나 증여 등 정당하게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일본도 약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그 불상을 한국의 절도범들이 ‘훔쳐’ 왔다는 사실입니다. 사연이 어찌 되었건, 현재 일본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훔쳐왔기에 원소유주의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논란이 됩니다. 그것을 인정한다고 하면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찾아오기 위해 정부에서 절도범들을 ‘특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영국박물관의 엘긴 마블스
문화재 반환과 관련되어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엘긴 마블스’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르테논 마블스’라고도 하는데, 이 조각들은 원래 2,500년 전,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 벽면을 장식했던 것들입니다. 현재는 영국박물관에 대부분의 조각들이 소장되어 있죠. 그리스의 유물인 파르테논 마블스를 영국으로 뜯어 간 사람이 엘긴(Elgin) 경이라 그의 이름을 따서 흔히들 ‘엘긴 마블스’라고 부릅니다. 문화재 반환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엘긴 마블스’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며 ‘파르테논 마블스’라고 정확하게 불러야 한다고도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의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신전이지만 그 역사가 순탄치 않았습니다. 신전은 기독교 전파 이래 아테네 시민들의 뜻과 무관하게 개신교 교회 등으로 바뀌는 기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458년 투르크 점령 뒤에는 이슬람 사원을 거쳐 화약 무기고로 쓰이기도 했죠. 이때 보관 중이던 화약이 터지면서 신전이 큰 상처를 입고 맙니다.
하지만 파르테논의 더 큰 수난은 오스만 제국(1299~1922) 말기, 영국 외교관 엘긴 경이 그리스 주재 영국 대사에 임명된 후 벌어집니다. 오스만 제국에 대사로 갔던 엘긴 경은 1806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파르테논 신전 조각을 떼어 내 런던으로 옮겨 갑니다. 고대 유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쟁과 폭발로 부서진 잔해들뿐만 아니라 신전 벽면과 기둥을 의도적으로 잘라 내어 100개가 넘는 대리석 조각을 뜯어 갑니다. 이 조각들은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백 가지의 인물과 동물의 형상입니다. 이때 가져간 조각들이 현존하는 파르테논 조각 가운데 절반가량이나 된다고 합니다. 엘긴 경은 조각들을 뜯어간 이유를 ‘오스만 제국 지배하의 그리스에서 문화재 파괴를 우려해서’라고 하지만 시인 바이런 등의 지식인들은 ‘탐욕스러운 약탈 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렇게 영국으로 가져간 조각들을 나중에 35,000파운드를 받고 영국 정부에 넘겨 버립니다. 파르테논 마블스의 반환 논쟁은 엘긴 경이 재정 위기로 조각상을 영국 정부에 판 직후부터 시작되어 200년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그동안 문화부 장관을 지낸 배우 출신 멜리나 메르쿠리 등이 앞장서 파르테논 마블스 되찾기 운동을 전개했으나, 여전히 그리스 신들은 차가운 영국박물관 전시실에 갇혀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문화재 약탈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은 “역사는 문명을 창조했지만, 침략자는 문화재를 약탈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문화재의 ‘약탈’ 문제가 비단 영국과 그리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의 그 많은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문화재도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의 ‘약탈’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약탈’을 당한 입장에 있는 나라입니다. 5천 년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고, 특히 근대에 들어오면서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은 우리 문화재의 운명을 바꿔 놓았습니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외국에 있는 우리나라 국외 문화재는 20개국 16만 800여 점에 이른다고 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전체 국외 문화재 중 67,708점(42%)은 일본에, 44,365점(27%)은 미국에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등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에 빠져나간 것들입니다. 구매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쳐 ‘반출’된 것도 있겠지만, 혼란의 시기에 ‘정당한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을 거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외규장각 의궤입니다. 1866년 조선을 침략한 프랑스는 여러 보물과 함께 외규장각의 서적도 대량 약탈해 갑니다(병인양요). 그 수가 무려 174종 296책이나 됩니다. 그중 의궤는 왕실 잔치와 세자 책봉, 궁궐 건축 등 왕실의 모든 행사 과정이 상세히 기록된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외규장각 의궤가 발견된 건 1975년입니다. 서지학자인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에 보관돼 있던 것을 발견해 우리 정부에 알린 것이죠. 그 후 정부는 지속적인 의궤 반환 요청을 했고, 오랜 노력 끝에 2011년 4월, 145년 만에 외규장각 의궤는 한국 땅을 밟게 됩니다. 비록 5년마다 임대 기간을 연장해야 하는 형식이긴 하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외규장각 의궤와 같은 사례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파르테논 마블스의 경우는 200년 이상 지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환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반환에 찬성하는 영국 지식인들이나 국민들도 적지 않지만, 반환에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높습니다. 크리스토프 히친스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반환에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의 다섯 가지 정도라고 합니다.
‘첫째, 조각들을 떼어 내 영국으로 가져간 것은 예술과 고전학 연구에 크나큰 축복이었음. 둘째, 아테네가 아니라 런던에 있었기에 온전했음. 셋째, 아테네보다 런던에 있어야 더 안전함. 넷째, 엘긴 경은 문화재를 보존하겠다는 심정에서 조각을 떼어 냈음. 다섯째, 조각의 반환은 주요 박물관과 컬렉션을 절멸하는 선례로 남을 것’등입니다.
파르테논 마블스가 영국의 예술과 고전학 연구에 큰 축복이었다거나 런던에 있었기 때문에 온전하게 보전되고 안전하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히친스는 말합니다. 엘긴 경의 반출 의도 또한 문화재 보존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합니다. 처음 계획된 의도는 스코틀랜드 블룸 홀의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었고, 나중에 영국 정부에 소유권을 넘길 때의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순수한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거죠. 그리스 정부는 모든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파르테논 마블스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관리와 보관, 관람을 위해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는 곳에 뉴아크로폴리스 박물관도 지어 신들의 귀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화재를 지키려는 자와 뺏는 자
이처럼 한 나라의 문화재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관련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반환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번 반출된 문화재가 다시 고향을 찾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간송문화재단(간송 전형필)이나 호암미술관(호암 이병철), 성보문화재단의 호림박물관(호림 윤장섭)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들이 얼마나 귀하고 반가운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특히 간송 전형필의 문화재 사랑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해례본에 얽힌 일화가 특히 유명한데요.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을 창제한 이유와 글자를 만든 원리 및 사용법 등을 수록한 훈민정음 해설서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합니다. 이는 세종대왕이 광산 김씨 문중에 여진 정벌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 내린 서책입니다. 종가 긍구당 서고에 보관되던 가보로 광산 김씨 문중 사위였던 이용준이 안동 자택에 옮겨 보관하고 있는 것을 간송이 입수하게 됩니다. 소유자가 제시한 액수(당시 기와집 한 채 1천 원, 쌀 한 가마니 16원)의 11배인 1만 1천 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합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은 일본인 수장가 마에다 사이치로에게서 2만 원에 구입하고,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화첩인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은 한양의 기와집 25채 값인 2만 5천 원에 입수합니다.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가 가지고 있던 고려청자를 입수한 일화도 유명한데, 논 1만 마지기를 처분해 40만 원(현재 가치로 약 1천200억 원)에 청자 20점을 구입합니다. 그중 7점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겸재 정선이 72세 때 금강산 일대를 둘러보고 남긴 작품인 해악전신첩의 경우, 친일파 손병준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쓰려던 것을 구해 냅니다. 이 소장품은 겸재 정선에 대한 연구의 물꼬를 트게 한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파르테논 마블스의 반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합니다. 파르테논 마블스가 영국박물관에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인류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외규장각 의궤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니라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문화재는 단지 보이는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는 그것을 만든 국가의 역사이며 그 민족이 지나온 삶의 흔적입니다. 파르테논 마블스가 영국박물관의 커다란 전시관에 조각조각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때의 감흥과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쓰러져 가는 파르테논 신전의 원래 자리에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콩코드 광장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를 보면서 단순한 웅장함이 아닌, 파라오의 신비와 고대 이집트인의 숨결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영국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서 제국주의의 ‘힘’과 ‘약탈’이 아닌, 인류의 지혜와 삶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문화재는 그것이 존재해 왔던 곳, 그것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왔던, 그리고 그 후손들과 함께 있을 때 그것이 가지는 고유의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세계 여러 나라의 박물관에는 고향을 떠나온 문화재들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귀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솔, 2003
우리 문화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과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문화재 해설서로, 저자의 친절하고 편안한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간송 전형필』, 김영사, 2010
간송 전형필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투신하게 된 과정과 문화재 수집에 얽힌 이야기가 실려 있다.
『국보, 역사로 읽고 보다』, 이야기가있는집, 2016
국보와 보물, 국보의 지정과 해제, 진짜와 가짜 유물의 감정, 문화재의 약탈과 반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