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변방의 목소리

1장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

by 배정철

신영복 선생과의 만남

신영복 선생의 책을 처음 만난 건 『강의』입니다. 그 이전부터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접하기 전에는 선생을 제대로 알지 못했죠. 『강의』는 동양 고전에 대한 책인데 어려운 내용이 편하게 읽혔습니다. 글로 먼저 쓴 것이 아니라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이유도 있을 테고, 그보다는 어려운 내용을 독자에게 쉽게 설명하는 선생의 내공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내공이 깊은 사람은 어려운 것을 쉽고 편하게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청중에게 직접 강의하는 경우 그렇고, 책으로 글을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반면에 얄팍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쉬운 것도 어렵게, 어려운 것은 더 어렵게 설명한다고 합니다.


『강의』 다음에 만난 책이 『담론』입니다.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이것 또한 이전의 『강의』처럼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겠지만,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선생의 이른 소천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담론』의 전반부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이고, 후반부는 20년 수형생활에서 얻은 삶의 통찰입니다.


책의 저변에 흐르는 큰 주제는 ‘관계’입니다. 존재란 개별자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개별자 간의 관계로 인식되고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 개개인이 그렇습니다. 내 이름 석 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엄마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내로, 또는 선배나 후배로,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모두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로 존재합니다.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누군가와도 그렇습니다. 그러한 관계망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삶도 달라집니다. 『담론』에 대해서는 뒤에 나올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선생 써 준, 처음처럼>


신영복 선생은 201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가 살아온 길을 생각하면 마음 저림이 더합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근무하다가 1968년 일명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1988년에 전향서를 쓰고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하기 전까지, 20년 20일 동안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후에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를 하다가 2006년 말에 정년퇴임을 합니다.

퇴임 당시, 소주 ‘처음처럼’의 브랜드 이름을 붓글씨로 써주고 1억 원을 받게 되는데, 그 돈을 모두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한 일화는 소주와 함께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강의』와 『담론』으로 엮여 나온 것입니다. 선생이 좀 더 우리 곁에 있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참으로 큽니다.


주체와 중심사상으로부터 소외된 곳, 변방

『담론』 이후에 만난 책은 『변방을 찾아서』입니다. 경향신문에 여덟 차례에 걸쳐 연재한 글을 모은 소책자입니다. 150페이지가 채 되지 않으며 사진도 많아 금방 읽힙니다. 선생이 써 놓은 현판 글씨가 있는 곳, ‘변방’을 찾아다니며 쓴 기행문입니다. 선생은 해남 땅끝 마을의 서정분교를 시작으로 강릉의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충북 제천의 박달재, 충북 괴산의 벽초 홍명희 문학비와 생가, 오대산 상원사,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와 김개남 장군 추모비, 작품 ‘서울’이 걸려 있는 서울특별시 시장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작은 비석이 있는 경남 봉하마을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덟 곳을 답사합니다. 선생이 글씨를 써 준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글을 써 준 인연과 사연을 들려줍니다. 글도 강의도 좋지만, 글씨도 참 좋습니다. 선생의 글씨는 소박하고 정겹습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강인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글씨 연습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글씨는 쓰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 담겨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글씨에 선생의 살아온 날들의 무게와 사색의 깊이가 오롯이 담겼습니다.

선생이 말하는 변방의 개념에 주목해 봅니다. 공간적, 지형적 개념의 변방을 말함이 아닙니다. 공간적, 지형적 변방이란 중국을 중심에 둔 한반도의 위치가 변방이며, 서울을 중심에 둔 지방이 변방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변방은 지리적으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주체와 중심사상으로부터 소외된 곳, 변화와 변혁으로부터 무관심한 곳, 그런 생각들이 변방으로 읽힙니다. 변방은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정치권에도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2016년, 여당(당시 새누리당) 내에서는 주류인 친박이, 비주류인 비박이 있었습니다. 어디 여당뿐이겠습니까. 야당(당시 민주당)에도 주류인 친문과 비주류인 반문이 있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죠. 학연과 지연을 앞세워 그룹을 형성하고, 그 그룹이 직장의 파워 그룹으로 자리 잡으면 주류가 됩니다. 주류에 합류하지 못하면 정보가 늦고, 관계 네트워크가 약해져 비주류로 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핵심부서에서 밀려 한직으로 떠돌다 남들보다 일찍 퇴직을 맞이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변방은 끊임없이 주류로 향합니다.


정부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부처인 경우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이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합니다. 대개의 경우 고시 서열에 따라 탄탄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고시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지만, 가끔 비고시 출신이 주류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고시 출신 내부에서, 비고시 출신 간에도 경쟁이 벌어지죠. 그렇게 중심과 변방은 늘 존재합니다. 중심과 변방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변방이 중심이 되고 중심이 다시 변방으로 밀려나는 역동성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역동성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조직이나 사회, 국가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는 의미입니다.


창조 공간으로서의 변방

중심과 변방, 그중에서도 변방의 담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변방은 주류 담론이 아닌 비판 담론, 대안 담론으로의 변화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주류 담론은 중심에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는 단체나 조직, 크게는 국가의 중요 결정사항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중심이 변화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중심에는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그 권력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차단합니다. 반대와 이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중심은 고인물이 썩듯이 부패합니다. 그래서 변방의 담론이 중요합니다.


변방은 창조 공간이기도 합니다. 중심이 부패하지 않고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비판이자 대안이요, 변화의 목소리입니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변방이 중심부로 끊임없이 흘러들어 가는 순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중심은 쇠퇴해가고 변방이 다시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 역사의 역동성입니다. 이 역동성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국가나 조직은 망하거나 무너지게 됩니다. 변화와 혁신을 차단하면 결국 마주치게 되는 결과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역동성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변방은 중심을 향해 끊임없이 진격하고, 반면에 중심부는 견고하게 성을 쌓아 변방으로부터의 유입을 차단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지키고자 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커지는 지점에서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와 현실 모두에서 목격합니다.


스마트 혁명시대의 변방

변방이 지형적 개념이 아니라 사상과 주체의 문제라는 건 스마트혁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 12월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아랍의 봄’이라고 합니다. 이 반정부 시위에서는 파업 참여 운동의 지속, 데모, 행진과 집회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조직, 의사소통, 인식 확대를 통해 광범한 시민의 저항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아랍의 봄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긴 독재정권이 마침내 무너졌습니다. 뜨거운 열기에 갇혀있던 중동에 봄이 찾아온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가 시민들에게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은 거죠. 스마트혁명 시대의 변방입니다. 변방에서 모여진 힘이 중심으로 향했고, 중심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고 거부함으로써 충돌이 발생한 것입니다. 중심의 저항은 변방의 썰물을 결코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스마트 시대에는 중심과 변방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변방은 소외된 곳이 아니라 변화와 혁신, 창조의 생성 공간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선생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변방’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까닭입니다.

여럿이 함께.jpg <쇠귀는 선생이 즐겨 사용하던 호>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돌베개, 2017

선생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글과 강연록 중에서 책으로 묶이지 않았던 글을 모은 유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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