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미술관에 가고 싶다

이주헌, 지식의 미술관

by 배정철

미술관에 가는 이유

외국 여행을 다닐 때 꼭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이 박물관과 미술관입니다. 영국에 가면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을, 프랑스에 가면 루브르박물관(Louvre Museum)과 그곳에서 멀지 않은 오르세미술관을 꼭 가봐야 하죠. 꼭 가봐야 한다고 해서 의무적인 건 아니지만, 왠지 그곳에는 꼭 가봐야 런던이나 파리를 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가는 경우에는 더더구나 박물관과 미술관을 빼먹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한꺼번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작은 욕심 때문이죠.


사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는 일은 어른도 힘든 일입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영국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고흐미술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들은 몇 시간 만에 다 볼 수도 없습니다. 유명한 작품 위주로 눈도장을 찍고 오는 정도라고 해도 며칠 걸릴 텐데, 그걸 단 몇 시간 만에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더 힘들어지는 거죠. 단체관광이라도 가게 되면 사정은 더합니다. 빡빡한 여행 일정 때문에 여러 군데를 짧은 시간에 다 소화하려면 바쁘게 다닐 수밖에 없죠. 경험상으로 아이들은 이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연사박물관은 그나마 좀 낫긴 하지만, 아이들은 박물관에 누워 있는 유물이나 미술관의 벽을 채우고 있는 그림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미술작품은 화가 개인의 생각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집단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창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작품을 통해서 그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 속 항구의 일렁이는 물결은 19세기 후반, 새로운 변화가 먼 바다로부터 밀려올 것임을 예감합니다.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고전주의에 반기를 든 인상파 화가들, 그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 그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른 색채의 변화를 추구했던 화가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모네의 '인상:해돋이' 1872년 캔버스에 유채 (사진 출처=마르모탕 미술관>

영국박물관의 한 전시관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인 엘긴 마블스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기에 앞서 ‘왜 여기에?’라는 질문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약탈이냐 반환이냐, 세계 문화유산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곳에서 보관하는 것이 옳으냐, 부서지고 닳아가는 것 또한 문화재의 역사가 아니냐 하는 질문들을 던집니다. 수천 년 전 생명 없는 돌에 숨결을 불어넣은 장인이 이 광경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혁신적인 작품을 보든, 오래전 그리스 신전의 벽면을 영국의 박물관에서 마주하든, 예술 작품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림 속의 단서, 알레고리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이끈 독일 태생의 벨기에 화가 루벤스는 ‘파리스의 사과’라는 작품을 여럿 그렸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전령의 신 헤르메스, 그리고 아름다움을 서로 다투던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입니다. 작품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올림포스 산에서 열린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두 사 람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부모)에 단 한 명의 신만 빼고 그리스 신들이 모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심술을 부립니다. 결혼식장에 나타나 황금 사과를 던져 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그 사과의 주인이 될 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피터 폴 루벤스, 사진출처=프라도 미술관>

헤라와 아테네, 아프로디테는 에리스의 의도대로 서로 자기가 황금 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며 다툽니다. 그러다가 하늘의 신 제우스에게 판결해 달라고 청을 하지만, 여자들의 다툼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그는 그 판단을 트로이 왕자인 파리스에게 떠넘겨 버립니다. 그 사실을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파리스에게 전달하고, 세 여신들은 파리스의 결정을 듣기 위해 모여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 바로 ‘파리스의 심판’입니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합니다. 좀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림에는 각각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는 상징인 알레고리가 있습니다. 헤르메스를 알려 주는 건 뱀의 형상이 있는 지팡이와 날개 달린 신발이나 투구입니다. 그것을 알면 그림 속의 두 남자를 헤르메스와 파리스로 금방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여신들도 누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알레고리가 있습니다. 지혜와 전쟁의 신인 아테네를 나타내는 것은 투구입니다. 투구와 가까이 있거나 투구를 쓰고 있는 여인이 바로 아테네인 거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는 사랑의 화살을 들고 다니는 큐피드가 늘 따라다닙니다. 제우스의 아내이자 결혼의 신인 헤라의 알레고리는 공작새입니다. 공작의 깃털을 두르고 있거나 공작새가 곁에 있으면 헤라라고 알려 주는 것입니다. 루벤스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또 다른 소재의 그림에도 이런 알레고리가 있습니다. 알레고리를 이해하면 작품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습니다.


잭슨 폴록의 ‘넘버 5’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그림 ‘넘버 5’는 2006년 소더비 경매에서 1억 4천만 달러, 한화로 약 2,000억 원에 판매됩니다. 잭슨 폴록은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등과 함께 1940~1950년대 미국 미술계의 동향인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추상표현주의라는 용어는 미국 평론가 알프레드 바(Alfred Barr)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 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초기 작품에 대해 사용했던 용어입니다. 추상표현주의는 회화 작품 활동에 있어서 무의식성을 강조합니다. 잭슨 폴록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무의식성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됩니다. 폴록은 1940년대 후반부터 마룻바닥에 큰 화포를 펴 놓고 공업용 페인트를 무작위로 떨어뜨리고 뿌리는 방식, 일명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 방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의 액션페인팅 기법은 그가 그린 그림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도 예술로 승화되어 유명세를 탔습니다.

<잭슨 폴록 넘버 5,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피그말리온의 예술과 여행>

이런 그의 그림에는 시대의 정치 상황이 얽혀 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미국과 구소련의 대결구도가 강했던 냉전 시대입니다. 당시 예술의 중심지는 파리였습니다. 미국은 지적 자유가 충만하고, 창의성이 발현되고,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의 예술을 능가하는 문화적으로 풍부한 민주국가를 표방하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의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죠.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분방함이 미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특히 CIA에서 전략적으로 예술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게 됩니다. 언론과 평론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작가들을 후원하고 현대 미술의 메카로 성장한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n Art, MoMA)을 설립하는 일을 지원합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뉴욕이 세계 예술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거죠. 예술의 발전에 국가, 그것도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와는 별개로 환영할 만한 일이 못 됩니다. 예술에서 인위적인 조작의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예술 그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정치와 국가의 이익에 종속되어 버립니다. 2017년 새해 벽두에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든 ‘블랙리스트’ 사건이 국민의 지탄을 받은 이유가 그와 같습니다.


다시 오르세 미술관에 간다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알레고리를 이해하는 것, 예술의 사조가 탄 생하고 변해가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작품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그래서 이주헌은 『지식의 미술관』이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순히 지식의 양이 감상자의 감상 능력과 안목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직관을 활용해 작품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직관이란 감각의 작용으로 직접 외부의 사물에서 얻는 구체적인 느낌을 말합니다.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거죠. 이런 직관을 일곱 번째 감각 또는 7감이라고도 합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5감이라고 하고, 6감인 직감과 사고 능력을 합치면 7감이 됩니다.


직관은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지만, 경영이나 과학의 발명에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을 살며 낭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를 용기를 가지십시오.”라고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를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가 소비자의 요구와 욕구를 먼저 알아채고 시대를 앞서 나가면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만든 스마트 세상은 직관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발명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99%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 문장을 인용하지만, 에디슨의 진짜 의도는 1%의 영감인 직관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직관은 경영자의 눈에도, 과학자의 눈에도, 예술가나 감상자의 눈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예술 작품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담긴 시대정신과 삶, 역사와 변화의 힘을 알아내는데 직관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두 권의 책 읽기만으로 그러한 능력이 생길리 만무하겠지만, 이주헌이 제시하는 30가지의 미술 키워드를 통해 그림을 좀 더 제대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직접 미술관을 찾아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의 숨소리를 느끼며 그 속에서 들려오는 왁자 지껄한 이야기를 듣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요.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미술관을 가 본 지 10년이나 되었네요. 그땐 그곳에 있던 작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르세미술관의 모네 그림 앞에 서면 한동안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여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의 숨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무척이나 미술관에 가고 싶어 집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좋은 책

이주헌, 『역사의 미술관』, 문학동네, 2011

나폴레옹, 퐁파두르 부인 등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나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그림에 관한 책으로, 그림을 통해 서양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 민음사, 2015

르네상스, 프랑스 혁명, 양차 대전 등 세계사적 사건들을 표현한 그림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삶을 이야기한다.


김창대, 『미술관에 간 CEO』, 웅진지식하우스, 2011

통찰력, 융합, 일상타파 등 8가지 경영 관점에서 예술가의 눈을 통해 기업이 아갈 방향과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시사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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