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수,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DDP의 간송문화전
주말에 모임이 있었습니다. 25~6년 전에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 후배끼리 방학 때마다 모이는 모임인데, 이번 여름에는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나이 50살 먹은 남자 여덟 명이 봉고차에 몰려 타고, 종로구 사직동 토속촌 삼계탕도 먹고, 북촌에 있는 백인제 가옥도 방문하고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도 갔습니다.
DDP에서는 간송문화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가끔 서울에 볼일이 있을 때, 시간 여유가 생기면 잠시 와서 전시를 보고 가곤 합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의 주제는 ‘5부 화훼영묘_자연을 품다’였고,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6부 풍속인물화전_일상 꿈 그리고 풍류’입니다. 조선시대 3원이라 일컬어지는 혜원(蕙園) 신윤복, 단원(檀園) 김 홍도, 오원(吾園) 장승업의 그림 외에도 ‘야모도추’로 유명한 긍재 김득신 등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였습니다. 특히 신윤복의 ‘미인도’와 ‘월하정인’, ‘단오풍정’ 등이 수록된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 김홍도의 ‘단오풍속도첩(보물 제527호)’에 수록된 ‘씨름’, ‘무동’과 ‘마상청앵도’ 등 유명한 그림들을 실물로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실물을 보면 우선 그림의 크기에 놀랍니다. 어떤 그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이렇게 작은 그림이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책을 통해 보는 그림들은 책 편집의 한계 때문에 다들 비슷비슷하잖아요. 도록에 그림의 크기를 표시해 주기도 하는데 그걸 봐서는 그 크기가 가늠이 잘 되지 않습니다. ‘미인도’의 경우는 길이가 114cm나 되고, ‘월하정인’이나 ‘씨름’같이 화첩에 포함된 그림들은 30cm도 안되게 작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디지털로 복원해 놓았는데, 인간적인 맛이 없긴 하지만 그 화려한 색채에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겠더군요.
이런 우리 옛 그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라는 책 덕분이라고 앞서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우리 옛 그림을 어떻게 가슴에 담을 수 있는지 차근차근 알려 줍니다.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모습이 바로 우리 조상들의 삶이며 역사라고 말해 줍니다.
기다림에 담긴 사연
그래서 그런 걸까요?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라는 책 제목이 마음을 확 잡아당깁니다. 옛 그림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으냐고 묻는 듯합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는 그림의 소재가 된 꿈의 주인공인 안평 대군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삶을 얘기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어려운 시기에도 시들지 않은 스승에 대한 제자의 의리와 그런 제자에 대한 스승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신윤복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기다림’에서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애틋하게 따라가게 됩니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조선의 화가 안견(安堅)이 세종의 셋째 왕자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산수화입니다. 세종과 문종 때의 화가인 안견은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 안평대군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1447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보통의 두루마리 그림과는 다르게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왼편 하단부에는 현실 세계, 가운데 부분은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 나머지 오른쪽 부분은 꿈 속 세계인 무릉도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첫인상은 우리가 평소 보던 산과 계곡의 느낌과는 좀 ‘다르구나’입니다. 한국화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죠. 풍화 작용으로 침식되어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 같이 생긴 산을 표현하는 운두준법이나, 가느다란 형태의 나무를 표현하는 세형침수 등 중국 화풍의 영향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낯섦은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무릉도원의 느낌과 겹쳐지면서 신비감을 가지게도 합니다.
그림 양쪽으로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 한 수가 적혀 있고,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등 당대 20여 명의 찬문이 있는데 모두 친필입니다. 찬문을 쓴 면면을 보면 안평대군의 인품과 인간관계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 새겨진 충절과 우의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그림의 주인인 안평대군은 형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1453년)으로 귀양을 가게 되고, 얼마 후 결국 사사되고 맙니다. 이 그림에 찬문을 지었던 이들 중에 정세에 따라 안평대군에게 등을 돌리고 수양대군에게 붙은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던 안견은 안평대군의 귀한 먹을 일부러 훔친 일로 인해 안평대군과 의도적으로 멀어지면서 자기 몸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림 속에는 꿈을 꾼 안평대군과 그와 함께 무릉도원을 찾아갔던 신하들, 그림을 그린 안견의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는 소나무와 잣나무 네 그루와 소박한 집 한 채가 그려진 그림입니다. 1844년에 제주도로 귀양을 간 추사 선생이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것입니다. 그림 왼쪽에 있는 발문에 이 그림을 왜 그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 간 자신에게 역관인 제자 이상적이 북경을 다녀오며 가져온 귀한 서책을 두 번이나 보내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적혀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인심은 권세와 이익을 따르기 십상입니다. 귀양 간 스승에게 마음을 보이는 것은 자칫 본인도 화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제자 이상적은 그런 세태를 따르지 않고 상관하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림의 이름이 세한도인데, 발문에 쓰인 내용에 그 사연이 있습니다.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라는『논어』자한 편에서 인용한 글귀입니다. 날이 차가워져도 시들지 않은 소나무와 전나무의 올곧음을 제자 이상적에게서 느낀 스승의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추사 선생의 높은 이름 때문이 아니라, 이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스승과 제자의 늘 푸름이 우리 모두가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국보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이 그림의 유래도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박물관에서 이 그림의 실물을 볼 수 있게 된 이야기가 따로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 년대 중반에 이씨 문중을 떠난 이 그림은 경성제대 교수인 후지쓰카라는 일본인에게 넘어갑니다. 그는 이 그림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그 그림을 찾으러 일본으로 직접 건너갑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선생은 근 100여 일을 후지쓰카의 집으로 찾아가 그림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돌려줄 뜻이 없던 그도, 선생의 노력에 감복해 결국 그림을 돌려주게 되었다는 겁니다. 꿈에도 그리던 그림을 가슴에 품고 현해탄을 건너오던 소전 선생의 마음을 생각하면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 이후 후지쓰카의 자택은 미군의 폭격에 의해 피해를 당했다고 하니 만일 소전 선생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세한도’라는 그림을 알지도, 보지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추사와 이상적이 나누었던 스승과 제자의 따뜻함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림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그림 중앙에 담에 기대어 선 여인이 있습니다. 구김이 없는 하얗고 긴 앞치마를 두르고 트레머리를 단아하게 올린 여인입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얼굴의 생김새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여인이 기대어 선 담 너머로 버드나무가 흐드러져 있는 걸로 보아 만물이 생동하는 봄인가 봅니다. 기대어 선 담장, 버드나무, 여인... ‘노류장화(路柳墻花)’입니다. 노류장화는 누구든지 쉽게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드나무와 담 밑의 꽃이라는 뜻인데, 기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여인이 뒤로 맞잡은 손에 송낙이 들려 있습니다. 송낙은 불가의 승려가 평상시에 쓰는 모자입니다. 아마도 여인이 기다리는 임이 송낙의 주인인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기생과 승려, 누가 알기라도 하면 한바탕 소동이 날 기다림입니다. 여인의 기다림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세속의 여인이, 그것도 기생이 불가의 승려를 기다리는 모습이라 더 애틋하고 아립니다. 여인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봄바람에 한들거리는 버드나무가 야속합니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어 집니다. 혜원 신윤복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기다림’이라는 이 작은 그림에서 요즘의 시 한 편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입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책 출간 이후, 시인이 미투 운동에 관련되어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크게 실망했다>
사랑하면 달리 보인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서문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에 보이는 것과 다르다.” 이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다’, ‘사랑한다’, ‘보인다’라는 세 가지 동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알아야 사랑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옛 그림을 알게 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 그림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게 되면 다시 보게 되고 그때 보이는 그림은 이전에 보았던 그림과 확연히 달라집니다. 가슴으로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림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됩니다.
내가 보는 그림 속 어디쯤에 어느새 내 마음이 조그맣게 자리를 잡습니다. 유배지에서 쓸쓸히 사약을 받은 안평대군과 무릉도원을 찾아 떠났던 신하들은 지금쯤이면 그들이 함께 꿈꾸던 무릉도원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겠지요. 추사 선생과 제자 이상적은 서로 주고받은 책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사제의 정을 나누고 있겠지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던 담장 옆의 그 여인은 이제는 기다리는 임을 만나 서로의 애틋한 눈빛을 느끼겠지요. 내가 사랑하게 된 옛 그림에는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난 오늘도 여전히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오주석,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 솔, 2005~2006
1권에는 11점, 2권에는 6점의 우리 옛 그림과 관련된 일화와 출처, 시문, 그리고 화가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와 삶을 담고 있다.
백인산, 『간송미술 36: 회화』, 컬처그라퍼, 2014
신윤복의 미인도, 신사임당의 포도 등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36점의 회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안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