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
얼굴에 주름이 는다.
이마의 주름 골도 깊어지고, 눈가 주름도 많아졌다.
생각하지도 않던 목주름은 언제 이렇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며 언제 이렇게 늙었나, 세월이 이렇게 지나가 버렸나 하고 가끔씩 생각한다.
거울을 보며 씨익 웃어 본다.
웃으면 주름이 더 선명해진다.
TV에서나 영화에서,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 가끔 그런 이들을 본다.
아름다운 주름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주름 사이에는 연한 미소가 보인다.
뭔지 모를 여유로움도 보인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젊은 시절에 대한 후회나 동경도 없어 보인다.
화냄도 없고, 원망도 없다.
나도 그런 주름을 갖고 싶다.
2009년 12월에 ‘아름다운 주름’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배정철의 서재)에 써 놓은 글입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한참이나 더 흘렀으니 얼굴의 주름은 한층 깊어졌습니다. 나이 듦의 증거는 얼굴의 주름뿐만이 아닙니다. 시력도 나빠집니다. 안경을 벗고 싶어 40대 중반에 라섹 수술을 하고 새로운 세상을 찾았습니다. 그것도 겨우 1년뿐.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다 잘 보여서 얼씨구나 싶더니 시간이 갈수록 그 밝은 세상은 자꾸만 흐려져 갑니다. 전등 불빛 아래에서 책이나 핸드폰을 볼 때 돋보기를 찾게 되는 일은 이제는 자연스럽습니다. 돋보기를 챙기지 못한 날은 하루 종일 불안합니다.
늘어나는 뱃살은 또 어떤가요? 하루 이틀 술자리라도 하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 바지 입기가 불편해집니다. 바지가 줄었다고 탓하고 싶지만, 사실은 늘어난 뱃살이 원인입니다. 작심하고 저녁 운동을 나가 보지만 며칠 운동을 한다고 체중계 앞자리가 변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검은 머리카락이 흰 머리카락으로 빠르게 변해갑니다. 머리카락이 점점 비어 가는 주변의 동년배들을 볼 때면 그나마 흰 머리카락이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팔이며 목, 배 여기저기에 생긴 빨간 점들은 또 어느샌가 까만 점이 되어 몸 구석구석을 점령해 갑니다. 그것들은 그래도 옷으로 가릴 수 있지만, 얼굴에 생겨나는 검버섯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얼굴에 나타나 매일매일 눈에 띄는 나이 듦의 표식은 다른 어느 것보다 강력합니다.
어디 신체적인 변화뿐이겠습니까? 스마트폰 스케줄에 메모해 놓지 않으면 출장이나 약속이 자주 겹칩니다. 저녁 약속을 해 놓고서는 집으로 그냥 퇴근해 버리기도 합니다. 등산모임에 가야 하는 날에 골프 약속도 해버려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예전의 기억력을 믿고 있기에는 이제 무리입니다. 사람 이름은 왜 그리도 생각이 나질 않을까요? 얼굴 생김새는 환히 떠오르는데 이름은 도무지 감감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생각해 내도록 노력해야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하는데 노력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집을 나왔다가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뭔가를 가지고 나와야 하는 것도 흔한 일상입니다.
노래는 트로트가 좋고, 우리 가락 민요가 예전보다 정겹게 느껴집니다. 반면에 새로 나온 스마트 기기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원래 있던 것과 오래된 것에 편안함을 느끼고,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커져 갑니다. 자식이나 후배와 이야기할 때 흔히 나오는 말이 “옛날에는 말이야~”입니다. 그러면 ‘또 시작이시군!’ 하고 따분해하는 표정이 역력해집니다. 변화에 대해 점점 둔감해지고 새로움에 대해 불편함이 커져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 문득 슬퍼집니다. 아직 퇴직 직전이거나 손자를 둔 할아버지가 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늙어가는 걸까요? 빌헬름 슈미트(Wilhelm Schmid, 1953~)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서지 않으며, 아름답게 채색하지도 폄하하지도 않고, 삶의 편익과 어려움, 아름다움과 처참함이 만들어 낸 스펙트럼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이 듦이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것, 되도록 일찍 발견해서 도려낼 수 있을 때까지 단호하게 싸워야 할 병으로 여긴다는 것이 현대의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이 드는 것과 늙어 가는 것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나이 듦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그래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무찔러야 할 것이 아니라는 거죠.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기울였던 그 많은 노력이 모두 헛된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요? 서안 진시황릉에 도열한 병마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웅장함에 놀라면서도 영생불사의 허망함도 그만큼의 크기로 다가오는 건 저 혼자만의 느낌이 아닐 겁니다.
요즘엔 남녀 구분 없이 사람들이 예전보다 젊어 보인다고 합니다. 예전의 50대는 40대처럼, 60대는 50대로, 10년 정도 더 젊게 보인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이도 있더군요. “나이보다 젊어 보이시네요.”, “보기에는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요”라고 하는 등 실제 나이로 안 보인다는 말이 좋은 인사말이 되기도 합니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그만큼 듣기 좋다는 건 사람들이 젊어 보이기를 바란다는 거죠. 이런 현상은 나이 든 사람이나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름을 없애기 위해 마사지숍을 찾고, 여러 가지 약물 주사를 맞고, 시술을 받기도 합니다. 헬스장을 열심히 다니며 젊었을 때도 가져보지 못한 복근 만들기에 열심인 이들도 있습니다.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도 더 멋진 근육을 자랑하는 나이 든 사람을 볼 때면,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아 오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때론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한 생각도 듭니다. 저 사람은 주름살에 새겨진 삶을 자신 있게 자신의 모습 앞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있구나, 나이 듦과 맞서 싸우느라 저렇게 힘을 낭비하고 있구나 싶거든요.
나이 들어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화방지(Anti-aging)가 아니라 노화의 기술(Art of aging)이 아닐까요? 나이 든다는 것에 맞서 살아가는 대신에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긍정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나이 듦의 기술,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삶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젊은이처럼 멋진 근육을 자랑하려고 할 게 아니라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겠다는 생각, 스무 살 때의 그 팽팽한 피부를 되살려 보겠다는 게 아니라 나이와 더불어 생겨난 삶의 지혜를 빛나게 하는 기술 같은 것 말입니다.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인생이 긍정할 만한 가치를 지닌 채 잘 흘러가도록 말입니다.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졌습니다. 아마도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인가 싶습니다. 나이가 아주 많은 분을 보면서도 이젠 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제게도 올 그 시간에 대한 걱정이 없지는 않지만, 그 크기가 이전보다 훨씬 작아졌습니다. 그건 아마도 익숙함 때문일 겁니다. 나이 듦과 죽음이 불쑥 제 앞에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믿거든요. 나이 듦은 자기 자신과 친숙해질 수 있을 정도의 느린 속도로 제게 다가올 겁니다. 감사하게도, 위대하고 경이로운 자연은 세상의 작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 이런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아내의 눈에 비친 제 얼굴의 주름은 나이 든 눈 덕분에 돋보기로 보는 그 주름의 깊이는 아닐 테니까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컬처그라퍼, 2012
우리 시대 대표 건축가인 승효상이 여행길에서 만난 건축과 그것이 이루는 삶의 풍경들을 기록한 에세이로 건축과 인간의 삶과 아름다운 고뇌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