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중년을 채우는 것
‘말이 말을 낳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없다.’ 아주대학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센터장인 이국종 교수의 말이다. 그가 치료와 수술을 담당하고 있던 북한군 병사에 대한 언론 브리핑과 그 브리핑 내용에 대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의 의료법 위반 발언 등 일련의 논란에 대해 자신의 심정을 이 한 문장으로 토로했다. 그간의 사정은 이렇다.
2017년 11월 13일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북한군 병사 한 명이 귀순했다. 그 병사는 추격해 오던 북한군의 총격으로 중상을 입었고, 우리 군의 도움으로 남쪽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그 병사의 상태가 급박하고 위중한지라 중상 응급환자 치료 전문가인 이국종 교수가 치료를 맡았다. 그는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때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일화로도 유명하다.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상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고, 언론도 연일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와중에 병원 측의 언론 브리핑이 있었다. 이 교수가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수술 후 합병증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환자 상태에 대한 설명 중에는 환자 몸속의 분변, 옥수수, 기생충 등 우리에게는 흔하지 않은 내용들이 있었다. 일부 언론은 환자 몸 상태보다는 환자 몸속에서 나온 것들에 더 관심을 가졌고, 옥수수나 기생충으로 유추할 수 있는 북한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이런 와중에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지 않고 공개한 것은 ‘인격 테러’라며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국종 교수 입장에서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인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공격을 받게되어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두 사람의 말과 글은 언론에 자극적인 기사거리를 제공했다. 신문에서도 연일 관련 내용을 보도하고, 종편 채널에서도 시사평론가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말에 말을 보태어 말의 갈래를 만들어 그 파장을 증폭시켰다. 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정치인은 인권을 이야기했는데, 원래의 의미와 의도는 온데간데없이 고삐풀린 말들이 난무했다. 말이 말을 앞세워 새로운 말을 만들어가는 형세다. 환자 치료, 그것도 요즘 의사들이 가장 힘들어해서 전공 선택자가 아주 적다는 외상치료에 전념한 의사가 헤쳐 나가기에는 애당초 벅찬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말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말을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은 원칙이다.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하게 하는 원칙. 이 교수는 그 원칙을 ‘환자의 목숨’으로 세웠다. 의사 입장에서 볼 때 환자의 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길은 ‘환자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 어느 누가 이 말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자신의 말의 원칙을 세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꼭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 자신의 말을 바로 세워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이 말을 낳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없다.’라는 그의 말이 낯익다. 어디선가 본 듯한 말투다. 어느 기사를 보니 그의 병원 사무실에 유독 김훈의 소설이 많다고 한다. 특히 『칼의 노래(2001, 문학동네)』는 거의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읽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김훈의 말투와 닮았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2012, 문학동네)』, 『자전거 여행(2007, 생각의나무)』 등에서 이런 투의 문장을 더러 볼 수 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이 주고받는 대화를 보자.
최명길 : 싸울 자리에서 싸우고, 지킬 자리에서 지키고,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이 사리일진대 여기가 대체 어느 자리이겠습니까
김상헌 : 싸울 수 없는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 전(전)이고, 지킬 수 없는 자리에서 지키는 것이 수(수)이며, 화해할 수 없을 때 화해하는 것은 화(화)가 아니라 항(항)이오.
최명길 :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김상헌 :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은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이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 :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10년 전인 2007년에 나온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 (2007, 문학동네)』은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의 원작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소설은 1636년 인조 14년, 청의 대군이 공격해 오자 임금과 조정이 강화도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47일간 남한산성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스스로를 에워싼다. 성 밖, 삼전도에서 진을 치고 있는 청의 대군과의 대결보다는 삶과 죽음, 목숨과 명분, 임금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의 날것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청의 대군에 맞서 싸우다 죽을 것이냐, 항복하고 살 것이냐. 치욕을 감내하며 목숨을 구할 것이냐, 유교적 선비정신으로 대의명분을 살릴 것이냐. 김상헌이 주도하는 항전파와 최명길이 주도하는 화의파의 의견 대립은 첨예했다. 주화파는 화의를 하여 임금과 백성의 목숨을 살려 후일을 도모하자고 했고, 척화파는 죽어도 오랑캐에게는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주장했다. 결국 주화파의 주장대로 임금과 신하들은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지만 백성들은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수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주화파는 이후에도 두고두고 명분 싸움에서 밀려 수난을 당하게 된다.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그 선택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임금의 자리에 있었다면, 신하였다면, 그리고 힘없는 백성이었다면? 청과의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과 화친을 배격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김상헌 중에 누가 옳은가? 누가 옳다고 할 수 있기는 한가?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것일 뿐인가? 생각이 다르다고, 다름을 인정하면 그뿐인가? 두 사람의 말에는 그들 자신의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임금과 백성들의 목숨, 조선의 명운이 함께 있지 않은가?
소설과 영화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은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최명길의 원칙은 목숨이다. 살고자 하는 원칙이다. 그 삶이 자신의 목숨만을 부지하는 삶이 아니라 백성의 목숨을, 임금의 목숨을 지키고자 함이다. 내게 힘이 없음을 알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피하고자 했다. 지금 당장보다는 내일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은 가벼운 것이 아니니 그 죽음으로 삶을 대신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임금이 청의 칸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하더라도 백성의 목숨을 지켜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욕과 수모는 결코 사람의 목숨보다 무거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상헌의 원칙은 명분이다. 기울어져 가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충정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오랑캐의 무리에게 능멸당하고 치욕적인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는 죽음으로써 그 명분을 지켜내는 것이 곧 삶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청의 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은 결코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었다. 임금을 그들 앞에 무릎 꿇게 하는 것은 임금에 대한 불충이며, 명에 대한 배신이다. 그 원칙이 무너지면 그 무엇도 지켜낼 수가 없다. 충과 효, 임금과 신하, 양반과 평민의 질서가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청의 무력과 무례에 짓밟히면서 지킨 목숨은 목숨이 아니라고 말한다. 욕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했다.
두 사람은 제각각 자신의 원칙으로 말을 세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때로는 최명길의 말이 옳고, 때로는 김상헌의 말이 이긴다. 목숨과 명분을 지키고자 하는 두 사람의 말은 조정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나의 원칙에 이른다. 명길은 자신이 아니라 백성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청 앞에 나아가 말의 길을 열고, 임금을 설득할 수 있었다. 상헌 또한 자신만의 명분이 아니라 나라의 근본을 지켜내고자 하는 원칙을 가졌기 때문에 욕됨 삶을 죽음보다 가벼이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최명길과 김상헌 같을 수는 없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두 사람 외에는 자신의 말의 원칙을 세우지 못한다. 영의정도 그렇고 임금인 인조 역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그만큼 자신의 말을 바로 세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11월의 어느 주말에 ‘남한산성’에 갔다. 일찍 찾아온 겨울이긴 해도 햇살이 넉넉한지라 차 안은 따스했다. 영화와 소설 속의 남한산성은 바람 많고 춥고 허기진 곳이다. 그 날의 남한산성을 느끼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배부른 투정 때문이었을까, 산성로터리 근처 남문주차장에 주차하고 나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고 준비해 간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고 목도리도 하고 장갑까지 꼈다. 눈을 막기 위해 우산도 들었다. 남한산성의 대문인 남문으로 올랐다. 남문은 남한산성의 정문답게 제법 웅장하고 크다. 남문에서 성벽을 따라 걸었다. 이 성벽 아래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버티어 내던 400여 년 전, 그들을 그려 보려 했으나 생각은 멀리 나가지 못했다. 들고 있는 우산이 조선 병사들이 추위를 막고자 뒤집어썼다가 말먹이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멍석 생각으로 이어졌다.
말의 목숨을 살리고자 추위에 맨 몸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던 그 날의 백성들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말을 살려야 싸움을 계속할 수 있다는 관리들의 말에 그들은 동의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절실했던 멍석을 내어 놓게 한 것은 관리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검과 창'이었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존위와 관리들의 가문과 자리를 보존하고자 한 것이었다. 김상헌과 최명길처럼 임금 앞에 나아가 큰 소리로 말할 수 없었던 백성들은 저잣거리와 성벽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말을 쏟아 냈고, 그들의 삶과 살아있음으로 말을 세웠다. 굶주린 백성의 말소리는 작고 자주 끊어졌지만 길고 오래 나아갔다.
성안에서의 성벽은 높지 않았으나 성 밖의 경사면이 깊어 밖에서 보는 성벽은 높았다. 성 안에서 성벽에 서면 가슴 높이에 닿았다. 성 밖으로 숲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너머에 도시의 아파트 숲이 보였다. 나무의 숲은 따스하고 아파트의 숲은 차가웠다. 특히 성 안의 숲은 눈발이 날리는 날씨에도 따스하고 고왔다. 눈이 녹은 물 위에 내려앉은 늙은 단풍이 긴 시간의 간격을 잠시 떠 올리게 했다.
한참을 걸어 서문에 닿았다. 남문에 비해 서문은 작고 낮다. 두 사람이 나란히 겨우 설 정도다. 문에 이르는 길도 좁다. 성문 밖의 길은 경사가 급해 인조가 말에서 내려 걸었다고 했다. 이 문을 따라 나아가 삼전도에서 청의 칸에게 머리를 조아린 인조의 모습을 생각했다. 길지 않은 그 길이 인조에게는 얼마나 먼 길이었을까? 생각은 숲 너머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멀리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물안개에 잠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