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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Jul 13. 2018

우주: 별을 생각하는 마음

3장 중년, 무엇으로 채우나

바하리야 사막의 별

'하늘에는 온통 별이다. 나와 별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면서 내 얼굴 위에 별이 쏟아진다. 손을 뻗어 본다. 닿을듯 말듯. 머리를 들고 상체를 세워 별에게 더 다가간다.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바로 옆 모래 언덕에는 별이 내려앉았다. 저기 가면 별을 만질 수 있을까. 여긴 별천지구나!'


별이 모래 언덕에 내려앉은 이 곳은 바하리야 사막(Bahariya Oasis)이다. 바하리야 사막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동남쪽으로 5~6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닿을 수 있다. 사막으로 들어가려면 마을 입구에서 사막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차량(대부분 오래된 일제 도요타 SUV)으로 갈아 타는 게 좋다. 본인 차량이 있는 경우에 자기가 운전해도 되지만, 사막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모래에 바퀴가 빠져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재로 이집트에서 파견 근무를 할 당시, 지인 가족과 함게 산타페와 갤로퍼 차량을 직접 몰고 사막에 들어갔다가 모래에 차량이 빠져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부드러운 모래 언덕에서는 타이어의 공기를 충분히 빼주어 면적을 넓혀야 하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 바하리야 오아시스, 백사막 >

이집트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바하리야를 찾는 이유는 보통의 사막과 다르기 때문이다. 사막이라면 흔히 떠 올리는 황금빛 모래 언덕만 있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 가면 흑사막, 백사막, 그리고 크리스탈 사막도 볼 수 있다. 흑사막에 가면 모래가 뜨거운 태양에 타 버린 듯 표면이 까맣다. 사막 여기저기에 시커먼 산도 솟아있다. 이런 곳을 사막이라고 할 수 있나 싶다. 크리스탈 사막에는 말 그대로 투명한 수정 덩어리 천지다. 크고 작은 크리스탈이 큰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여기저기 굴러 다닌다. 백사막의 모습은 신비롭다. 석회석 바위들은 사막에서 수많은 뜨거운 낮과 차가운 밤을 견디며 갖가지 모습으로 서 있다. 사람 얼굴도 있고, 낙타 모양도 있다. 버섯 바위, 스핑크스 바위 등 하나하나가  조각 작품이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어쩌면 지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막에서는 차를 타고 모래 언덕을 달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차가 뒤집어질까 걱정을 하며 손잡이를 꼭 잡고 있지만(종종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아이들은 이집션 운전사에게 연신 "얄라 비라~(빨리 달려~)”를 외친다. 한참을 달리다 모래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서 차가 멈춰 선다. 운전사는 시동을 끈다. 언덕 가장 높은 곳에서 정지한 차는 중력의 힘으로 서서히 모래 위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차에 탄 사람들은 차와 함게 모래 속으로 빠져든다. 다행히 차가 안전하게 언덕 아래에 다다르면 안도의 함성과 박수가 터진다. 바하리야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스릴과 감동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해가 진 후, 모래 위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감동에 비할까. 하늘과 모래와 별, 그리고 내가 하나가 된다. 별이 내려앉아 나를 감싸 안는다. 나는 밤하늘의 일부가 되고, 우주가 된다. 4000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주. 저 우주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우주의 탄생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는 밤하늘의 별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 많던 별이 사라졌다. 사실은 별이 사라진 게 아니라 별과 우리 사이를 도시의 먼지가 가로막고, 도시의 불빛이 별빛을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도시의 불빛이 지금처럼 환하지 않던 1970~80년대에는 어디에서든 별을 볼 수 있었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헤라클레스, 궁수, 전갈... 학교에서 배웠던 별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찾아보곤 했다. 여름밤, 마당의 평상에 누워 올려다보던 밤하늘은,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의 별만큼은 아니더라도 견우와 직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는 되었다. 그 수많은 별들이 모인 별무리를 은하수라고 한다.

<젖의 길의 기원, 틴토레토, 1570>

서양에서는 은하수를 우유가 흐르는 강이라는 뜻의 밀키웨이(Milky Way)라고 부른다. 밀키웨이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가 또 다른 연인 알크메네에게서 얻은 아들 헤라클레스를 데리고 올림포스 산에 들어온다. 헤라클레스의 출생을 안 헤라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헤라클레스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를 귀여워했던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헤라클레스를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헤라 여신의 젖을 먹여 주려 한다. 어느 날 헤라가 잠든 사이, 헤르메스는 어린 헤라클레스를 안고 몰래 그녀의 침실로 숨어 들어가 젖을 먹게 했다. 꿈결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 여신은 잠에서 깨어나 헤라클레스를 떼어 내려했지만 힘이 센 헤라클레스를 떼어 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헤라는 자신의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감수하며 헤라클레스를 떼어 냈고, 헤라클레스의 빠는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헤라의 가슴에서 젖이 솟구쳐 하늘로 흘러내려 은하수가 되었다고 한다. '우유가 흐르는 강'의 유래다.  


헤라의 젖으로 만들어졌다는 신화이야기는 우주와 지구의 탄생에 대해 신이 아닌 인간 중에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사실, 지난 세기까지는 그랬다. 유대-기독교 경전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라고 적혀 있다. 17세기 아일랜드의 주교였던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는 우주가 창조된 날이 기원전 4004년 10월 23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종교적 창조설을 부인한 인물도 있다. 대표적인 이가 16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도미니크회 수사였던 조르다노 부르노(Giordano Bruno, 1548~1600)다. 그는 '우주는 변하지 않으며 크기와 나이가 무한하다'는 주장을 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다 화형에 처해진다.

<로마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 있는 부르노의 동상>

안타깝게도 브루노의 주장은 현대에 와서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오늘날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관측사실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생각은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하여 제시한 방정식에서 비롯되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우주의 팽창을 나타낸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알렉산더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 1888-1925)이다. 이에 근거하여 조르쥬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 1894-1966)는 팽창하는 우주 모델을 만들었다. 그리고 1920년대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의 외부 은하 관측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허블은 윌슨산 천문대에서 직경 250cm짜리 천체망원경을 통해 외부 은하들을 관측하던 중 이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은하는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이는 은하가 운동하는 게 아니라 우주공간이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주장한다. 은하가 내일이면 지금 있는 곳보다 더 먼 곳에 있을 것이고, 반대로 어제는 더 가까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다면, 우주가 점점 작아지다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뜨거운 하나의 점으로 수렴될 것이다. 르메르트는 이 점을 우주 달걀(cosmic egg)이라고 불렀다. 이 달걀이 폭발하면서 우주가 탄생했다고 보는 우주생성이론이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와 관측 테이터에 빅뱅이론을 적용하면 우주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우주의 팽창계수(허블상수라고 한다)를 이용하여 우주가 우주댤걀에서 지금의 크기로 팽창하는데 걸린 시간을 계산하면 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정확한 값은 138억 년이다. 우주가 탄생하고 90억 년이 지난 후, 지금으로부터 약 50억 년 전에 태양계가 형성되었다. 태양계에 있는 우리 지구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정확한 나이는 46억 년이다. 이 값은 소행성 벨트(화성과 목성 사이에 100~200만 개의 소행성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지구로 떨어진 운석을 방사성 연대 측정법으로 분석하여 알아낸 것이라고 한다.


작고 푸른 점, 지구

46억 년의 나이를 가진 지구에 생명체는 언제 출현했을까? 지구 상에 최초의 생명이 출현한 것은 약 35억 년 전이며, 그 주인공은 단세포 미생물(박테리아)로 알려져 있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서는 아직까지 생명체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여타 행성과 달리 지구는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정도로 기후가 적절했기 때문에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초의 미생물에서 현생 인류가 탄생한 것이다. 인류가 등장하기까지는 최초의 다세포 생물이 탄생하고 수억 년이 걸렸다. 예일대학교 교수인 데이비드 버코비치는 『모든 것의 기원(책세상, 2016』에서 지난 7000년 동안 기록된 역사와 고고학적 증거를 종합해 볼 때, 동물은 인간보다 6억 년쯤 전에 등장했고, 인간은 약 700만 년 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구나이 46억 년에 비해 겨우 700만 년이다. 90억 년의 우주의 나이를 하루로 생각할 때, 인간은 하루의 마지막 시계 초침이 12시를 가리키기 불과 몇 초 전에야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의 모습,  출처=NASA>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생명과 역사, 인류의 문명이라는 것은 찰나의 존재에 불과하다. '별들의 일생에 비하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 덩어리에서 10억 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라고 칼 세이건이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지구 또한 마찬가지다. 4000억 개의 행성 중에 하나의 작은 점이다. 우주에서 바라 본 지구는 쥐면 부서질 것만 같은 창백하고 푸른 점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최초의 수소에서 시작하여 생명이 탄생하고 오랜 세월의 진화를 통하여 인류가 생겨났다. 그 인류는 광대한 우주 공간의 행성들 중 유일하게 지구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이러한 역설이 인간 존재 하나하나가 그 무엇보다도 귀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 존재의 경이로움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은 하루살이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인종과 민족을 가르고, 종교를 앞세워 총칼을 겨누며 그 단 하루를 무던히도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토록 짧고 귀한 시간을 다툼과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류와 함께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 종을 멸종시키고 있다. 숲을 파괴하고, 강물에 오물을 흘려보내고, 대기에는 이산화탄소를 끊임없이 방출하고, 지구를 수십 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안달이다. 인류는 인류 스스로의 생명뿐만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와 지구라는 행성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위기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인간에게는 '상상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생명과 그 기원은 우주에 비해 비록 미미할지라도 인간의 상상력은 우주의 저 끝 어디에까지 미친다. 지구 이외에는 생명의 존재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인류가 살아있는 동안 그 탐험은 계속될 것이다. 지구가 건강하게 존재해야 우리 인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미래 세대에 어떤 지구를 물려줄지, 어떤 우주로 안내해 줄지를 상상하기 때문에 조만간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는 무한의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경이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 ~ 2012)가 이렇게 노래한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한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가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 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처럼.

- 경이로움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최성은 옮김) (출처 : 『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2018) 』



참고도서

모든 것의 기원, 데이비드 버코비치, 책세상, 2016

코스모스,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10

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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