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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01. 2018

유전자: 유전자에 새겨진 역사

안젤리나 졸리의 '아주 특별한' 선택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1975년 생)는 2015년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란에 기고문(수술 일기, Dairy of  a Surgery)을 게재했다. 자신이 나팔관과 난소절제 수술을 받았고, 2년 전(2013년)에는 유방절제 수술과 재건 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유방 절제술을 받은 것은 지난 2013년, 그녀의 나이 불과 38세 때이다. 여섯 명의 자녀를 둔 엄마이자, 섹시하고 건강한 여성미의 상징이며, 세계적인 스타인 여배우가 자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가슴을 제거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난소와 나팔관도 절제했다는 기고문의 내용은 그녀를 아는 모든 이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 나면, 전부는 아니더라고 다소 이해가 된다. 그녀는 병원에서 실시한 간단한 혈액 검사로 BRCA 1(Breast Cancer 1)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돌연변이 유전자는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데, 유방암 위험은 87%, 난소암 위험은 50%로 나타났다.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도 난소암으로 10년 가까이 투병을 하다 56세의 이른 나이에 숨졌고, 외할머니와 이모도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녀도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다. 그대로 둔다고 해도 암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 안젤리나 졸리, 출처=뉴욕타임스 >

유전자 변이에 의한 유방암 환자는 전체 유방암 환자의 5~10% 수준으로, BRCA 유전자 돌연변이가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BRCA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5~8배, 난소암에 걸릴 확률은 20~25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암에 대한 두려움도 컸겠지만,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과 난소를 제거하는 수술을 선택한 것은 그 두려움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BRCA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선택이 다른 여성들에게 과도한 의료행위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여성성의 상실로 심리적 상처와 함께 호르몬 계통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녀도 기고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다만 BRCA 1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수술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BRCA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많은 의사들, 자연요법 전문가들과 의논을 했고, 다른 옵션들도 많았다. 어떤 여자들은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먹어서 방지하기도 하고, 또 대체 약물로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건강 문제든 꼭 한 가지 특정한 옵션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개인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선택하라는 것이다"(The New York Times, 2015.3.24)


유전자에 대한 높아진 관심

유전자 검사는 친자를 확인하거나 범죄 수사에 주로 활용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 질환을 사전에 알아내는 데 많이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안젤리나 졸리의 영향으로 여성의 유방암 유전자 검사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한국일보 기사에 의하면, 한국유방암학회는 안젤리나 졸리의 예방적 수술이 알려진 2013년을 기점으로, 2012년과 2015년 사이 BRCA 검사가 3배 이상 증가했다고 소개했다.(한국일보, 2016.10.31.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인용). 


유전자 검사가 늘어난 것은 비용이 크게 낮아진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1년 애플의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는 췌장암 치료를 위한 풀 시컨싱(Full Sequencing, 인간의 유전자를 구성하는 30억 쌍의 염기서열을 전부 분석하는 것) 유전자 분석을 위해 약 10만 달러를 지불했다. 하지만 유전자 분석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비용은 100분의 1 수준인 1000 달러 선으로 낮아졌고, 검사에 소요되는 기간도 단 며칠로 단축되었다. 많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부자들만이 아니라, 지금은 원하는 사람,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 누구나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 유전자 검사, 출처=medgadget >

유전자 분석은 단지 사람의 질병을 사전에 예측하고 진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고, 그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게 사전에 예방하거나, 돌연변이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특히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치료법을 적용하는 맞춤형 의료 수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유전자가 무엇이길래 그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 그토록 중요할까? 유전자(gene)는 유전의 기본단위이다.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유전자는 생물의 세포를 구성하고 유지하며, 이것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으며, 생식을 통해 자손에게 유전된다(위키백과 인용). 모든 생물은 유전자에 따라 다양한 유전형질을 갖고 태어난다. 눈 색깔, 혈액형과 같은 것을 비롯하여 특정한 유전적 질환-혈우병, 낭포성 섬유증, 겸형 적혈구 빈혈증, 힌팅턴 증후군-과 같은 것도 유전된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기존의 형질과 다르게 질병을 일으키는 새로운 유전형질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다. 뿐만 아니라 생명활동에 관여하는 수 천 가지의 생화학 작용도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런 정보를 기억하고 있는 세포 단위가 바로 유전자다.


인간의 손에 쥐어진 진화

유전자의 존재는 유전학의 창시자인 그레고어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의 연구에서 알려졌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인간의 건강, 생명과 관련해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0년에 생명체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하는 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인간 유전자의 특징과 구조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체의 모든 염기서열을 해석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1990년에 시작되어 2003년에 완료되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프랑스, 영국, 일본 등 6개국 18개 기관이 참여하였고, 생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15년 계획이 13년 만에 완료되었다(투입된 예산은 자그마치 38억 달러다). 인간 유전자 수는 당초 약 10만여 개 정도로 예상했지만, 2만 6천 개~4만 개 이하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초파리 유전자의 약 2배에 불과한 것이다. 아울러 인간 유전체의 95% 이상은 기능을 알 수 없는 DNA 조각이고, 실제 기능을 가진 유전자는 1.1% 정도였다. 개개인의 DNA 차이는 전체의 2%에 지나지 않으며, 인종 간 차이 역시 근거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아무튼 1953년 제임스 왓슨(James Watson)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면서 출발한 분자생물학은 반세기 만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유전자 분석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활용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유전자를 직접 편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기술을 유전자 가위라고 한다. 유전자 가위는 동식물 유전자에 결합해 특정 DNA 부위를 자르는 데 사용하는 인공 효소로 유전자의 잘못된 부분을 제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말한다. 손상되거나 변이가 일어난 DNA를 잘라내고, 정상 DNA로 대체하는 것이다. 최근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CRISPR)가 개발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유전자 편집의 대상이 되는 크리스퍼가 표적 유전자를 찾아가 CAS-9라는 효소를 이용하여 잘라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크리스퍼는 모기부터 사람까지 거의 모든 동물이나 식물의 유전체에 적용할 수 있고,  유전체의 정보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유전적 질환을 갖고 태어나는 환자를 치료하거나, 태어나기 전에 치료할 수 있다. 2017년 국내연구팀이 인간배아에서 비후성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유전자 가위가 손상될 경우, 변형된 유전자를 정확하게 제거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은 부분을 자를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인간 유전자에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주게 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크리스퍼 기술을 알아낸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aoudna, 1964~) 교수도 새뮤얼 스탠버그(Samuel Sternberg)와 공통 집필한 『크리스퍼가 온다(프시케의숲, 2018)』에서 크리스퍼가 가져올 희망적인 미래와 함께 두려운 미래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마이크로 돼지, 출처=사진작가 Rechard Austin / Res Feature 작품 >

유전자 편집 기술의 현실을 보면 그녀의 희망과 또한 우려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자들은 이미 크리스퍼 기술로 90kg의 거대한 돼지를 13kg의 마이크로 돼지로 만들어 내는 실험에 성공했다. 몇 달 동안 창고에 보관해도 썩지 않은 토마토, 기후 변화에도 끄떡없는 식물,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는 모기, 무시무시한 근육질의 개, 뿔이 나지 않는 소는 이미 존재한다.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면, 진화는 자연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손에 의해 인간의 의도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자연과 인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적응을 통한 점진적인 진화가 급작스럽고 거대한 변화로 바뀌게 된다.   


유전자에 새겨진 고유한 역사

개인의 특성이 유전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환경 때문인지에 대한 논란은 진화생물학의 오래된 논쟁거리다. 최근에는 인간의 특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유전이나 환경 중 어느 한 요소를 절대적으로 보기보다는 이 둘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논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될지 모른다. 유전자를 인간의 의도대로 편집할 수 있는 시대에는 말이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단지, 인간의 질병 치료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유전자 편집이 쉬워지면, 크고 쌍꺼풀이 있는 눈, 오뚝한 코, 큰 키, 단단한 근육, 풍성한 머리숱 등 외모에 대한 유전적 선택이 많아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탁월한 기억력과 높은 IQ, 창의적인 사고력 등 명석한 두뇌에 대한 선호도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인간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편집하면 원하는 특성을 가진 아이를 가질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유전자 편집을 원하는 부모가 생길 것이다. 태어난 아이가 튼튼하고 똑똑하게 자라도록 돕는 수년 동안의 수고로움을 단숨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이런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이런 현실에서는 유전자 편집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경제력의 차이가 유전자의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제력이 있으면, 건강하고 잘 생기고, 똑똑해질 수도 있고, 그런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생존경쟁에서 밀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 돈이 없으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게 물려줄 수 없다니,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를 '경제적 유전자'로 변경해야 할 판이다.

< 공문룡의 '만만한 조상 탓', 출처=W주간현대 >

우리는 흔히, 잘 된 것은 자신의 노력 덕분이고 잘못된 것은 조상 탓이라고 한다. '조상 탓'이라는 것이 바로 유전자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다. 키가 작은 것, 코가 오뚝하지 않은 것, 머리카락이 잘 빠지는 것 등 외향적인 것뿐만 아니라 성질이 급하거나 소심한 것 등 심리적인 특성도 부모 탓을 한다. 과학적으로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들도 때론 같으면서도 다르다. 인간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 환경이라는 것도 그냥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각자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 탓만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되면 자신의 유전자 중에서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그 자식이 부모가 될 즈음에는 더더욱 그렇다. 손자들은 자신보다 더 키가 크고, 더 이쁘고,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 아니 인간의 속성일 테니까. 어찌 인간뿐이겠는가. 찰스 다윈이 진화가 진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강조했음에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더 나아진 후손을 바란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아무리 절실하더라도 그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기적 유전자'의 뜻대로 속수무책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서 단숨에 유전자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내 몸속에 새겨진 유전자는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 저 우주와 끊임없이 투쟁하고 적응하고 소통하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우리 각자는 실로 어마어마한 존재다. 그 모든 역사가 우리 몸에,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참고 도서

『크리스퍼가 온다(프시케의숲, 2018)』, 제니퍼 다우드나, 새뮤얼 스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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