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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pr 11. 2018

프롤로그_당신의 중년은 안녕한가?

중년이라는데

   미국의 발달 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겪게 되는 발달 단계를 8단계로 이론화했다. 그중에서 7번째 단계를 장년기(35세~65세)로 명명하며, 이 시기에는 생산성 대 침체감이 대립하는 시기로 보았다. 생산은 개인이 다음 세대에 대한 복지와 개개인이 일하며 살아갈 사회의 성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 양육, 그에 따른 자기 자손의 성취에 관한 개인의 만족감을 생산성으로 본 것이다. 반면에 이 시기에 생산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침체감이 형성된다고 한다. 침체감은 생산성의 결여이며, 자신의 욕구나 안락에만 관심을 두고, 결국은 생을 무의미하고 단조롭게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40세가 되어서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고(불혹 不惑), 50세가 되어서는 하늘이 전해준 명을 알았고(지천명 知天命), 60세가 되어서는 귀로 들으면 그 뜻은 안다(이순 耳順)고 했다. 에릭슨이 말한 장년기와 공자가 말한 불혹, 지천명, 이순의 시기를 우리는 보통 ‘중년’이라고 일컫는다. 요즘은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를 사는 시대라고 하니 중년을 10~20년 정도 더 늦춰 잡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대략 40세부터 60세까지를 중년으로 지칭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중년의 위기와 꽃중년
   중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위기’다. 중년의 위기. 공자는 불혹이요 지천명이며 이순의 시기라고 했고, 에릭슨은 긍정적인 면에서 생산성의 시기라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위기’라는 단어를 먼저 떠 올리게 된다. 『인생의 재발견(2017, 스몰빅인사이트)』에서 바버라 해커티(Barbara Bradley Hagerty)는 '중년의 위기'의 시작을 1965년 캐나다의 정신분석가 엘리엇 자크가 발표한  <죽음과 중년의 위기>라는 논문이라고 했다. 논문은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78년 대니얼 레빈슨이 출간한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이라는 책을 통해 중년의 위기가 크게 부각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하지만 여러 문헌과 자료를 면밀히 조사하고, 전문가를 인터뷰한 결과, 해커티가 내린 결론은 ‘중년의 위기는 없다’이다. 중년은 방황하거나 좌절하며 위기를 겪는 시기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기,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구체화되는 흥미진진한 시기라고 한다. 중년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스쳐 지나가는 비행구역이 아니라, 새로운 목적지, 다양한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허브공항 같은 것이라 한다. 해커티의 주장을 들으니 왠지 기운이 다시 쏟는 듯하다.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같다.


   하긴 꽃중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전적으로는 '마흔 살 안팎의 나이를 뜻하며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는 그냥 중년이라는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 보다는 멋있는 중년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젊은 시절 몸매를 유지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멋이 있는 패션감각을 보이고,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고, 나름의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중년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까. 남자든 여자든, 40대 이후가 되면 자신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그 청춘을 꿈꿔 본다. 시절을 되돌릴 수 없으니 꽃중년을 기대하는 걸까?


   사실 생물적으로 보면 중년의 신체가 분명 절정기는 아니다. 20대와 30대를 지나, 40대에 접어들면 신체적으로는 분명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모처럼 운동이라도 좀 할라치면 쉽게 지치고 금방 몸에 반응이 온다.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흰머리카락이 생기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나타난다. 시력도 점점 나빠지고 노안도 오는 시기다. 기초대사량이 줄어 열심히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않으면 근육량이 감소하고 복부와 허리에 피하지방이 쌓여간다. 좀 심하게 말하면, 먹는 대로 대로 살이 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디 그뿐인가, 기억력이 감퇴하여 지인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자주 가던 음식점 상호도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렇게 중년의 변화를 풀고 나니 좀 슬퍼진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시기가 되면, 경제적, 사회적으로는 좀 더 안정적일 수 있다.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 전문성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고, 직장 내 위치나 직위도 높아지는 시기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힘겨운 시절은 벗어난 정도의 수준에 접어들 시기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쌓여 문제해결력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지식이 경험과 융합되어 지혜가 쌓여간다. 역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즉 가소성이 절정기에 다다르게 된다. 이제는 쉽게 좌절하지 않고, 천천히 그러면서도 좀 더 편안하게 고개를 돌아 산을 넘어간다. 나무가 아니라 숲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래서 일흔여덟의 김형석 옹은 『백 년을 살아보니(덴스토리, 2016)』에서 인생의 절정기가 55~70세라고 하지 않았나.


중년을 잘 보내는 사람의 특징
   그렇다 하더라도 중년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가정의 해체나 이직을 경험할 수도 있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삶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죽음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생각에 심리적 불안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시기를 잘 보내는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며, 해답을 찾아보자.
   첫째, 활기차게 산다. 중년을 잘 보내는 사람은 여전히 공부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도전하며, 주의를 기울여 열정을 쏟을 대상을 찾는다. 직장과 외부의 관계 중심에서, 배우자와 자녀에게 애정을 쏟으며 가정을 중시한다. 수입에만 연연하지 않고, 봉사활동이나 기부 활동을 하면 나눔에 관심을 갖고, 자기 계발과 취미활동에 몰두한다.

   둘째,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 진정한 행복은 일시적인 기쁨의 추구가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데서 온다. 수많은 연구에 의하면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있는 사람이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한 노년을 보낸다고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쓴 빅터 프랭클도 ‘삶은 환경 때문에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미와 목적이 결여되어 있을 때 힘들어진다.’고 하면서 삶의 의미를 강조했다.
   셋째, 관계를 중시한다. 관계 맺음은 관심이다. 가족과 친구, 친지, 동료 그리고 이웃에 대한 우호적이고 건강한 관계가 행복과 직결된다. 친구가 많은 사람의 사망 확률이 친구가 적은 사람에 비해 22% 더 적다는 노인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바로 관계의 중요성이다. 건강한 관계는 상호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안정감을 준다.
   넷째, 이타적인 생활을 한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우리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한 것은, 단지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기계라는 의미가 아니다. 결국 그 이기적인 유전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며,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결국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남을 돕는 행위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유전자뿐이겠는가? 남을 돕는 행위는 삶에 강력한 의미를 부여한다. 에릭 에릭슨도 중년의 시기에 생산성이 중요한데, 그 생산성이라는 것이 각 개인의 경력과 재산 등의 성취에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 즉 다음 세대, 공동체, 대의 등에 투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섯째, 생각의 유연성을 중시한다. 생각이 경험을 지배한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판단이 달라지고 경험과 그 결과물이 달라진다. 생각이 굳으면 삶의 여러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생각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일이 인생 여정의 중간에 선 중년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공부와 책 읽기 등을 통해 생각을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한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과 뱃살이 아침마다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중년의 시기에 선 자신에게는 사랑할 것이 더 많다. 인생의 중간 즈음에 서 있는 자신의 삶이 지나온 길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지 않은가. 열심히 노력했고,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었고,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쌓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살아온 삶의 흔적과 기록은 자신만의 것이다. 그것은 오롯이 지금의 자신, 중년의 당신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중년의 위기란 없다. 꽃중년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시간을 또 다른 것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느긋하고 여유로운 노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어떤가, 당신은 중년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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