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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pr 15. 2018

글 쓰는 중년: 글로 남기는 삶의 흔적

1장 중년,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중입니다.

글쓰기의 시작

인터넷에서 개인 블로그를 시작한 때는 정확히 2005. 8. 27이다. 오늘(2018. 4. 8)이 4606일째가 된다. 12년이 훌쩍 넘었다. 내 블로그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정보를 찾아봤다. 블로그에 올린 글은 모두 398개이고, 840개의 댓글, 90714명의 방문 횟수 등이 나의 블로그 흔적이다. 평균 12일에 하나 정도의 글을 썼고, 글 하나에  두 개 정도의 댓글이 달렸고, 하루에 20명 정도가 블로그를 방문했다는 결과다. 이 결과를 놓고 보면 블로그에 글을 부지런히 써지도 못했고, 블로그를 운영해온 기간에 비하면 방문자도 많지 않았다. 처음 블로그를 개설할 때, 내가 쓴 글들을 누군가에게 보여 준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인터넷에 일기장을 하나 만든다는 생각기 강했기 때문이었을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시작'이라는 제목을 처음 써 놓은 글이다.

 ’이집트에 온 지도 벌써 일 년 반이 지났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벌써 임기의 반이 훌쩍 지나 버린 것이다.

   뭔가 발자취를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다.

   학교에서의 일들,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부쩍 재미를 붙인 골프 이야기,

   그리고 여행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만들어 가고자 한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2005년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다. 2004년 2월에 이집트 카이로 한국학교장으로 부임하여, 그곳 생활이 18개월 정도 지난 후라서 어느 정도 적응도 되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을 즈음이다.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내게 주어진 그 시절의 추억이나 일상들에 대한 흔적을 남겨 놓고 싶었다. 외국에서의 생활, 그것도 고대 문명이 여전히 현재에 살아 숨 쉬는 이집트에서의 낯설지만 특별한 경험의 시간을  오랫동안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블로그의 처음 이름을 '카이로의 전설'로 정했다. 언젠가 시간이 한참 흐른 다음에 카이로에서의 생활을 전설처럼 느끼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 시절을 전설로 만들고 싶었던 조금 유치한 생각이기도 했다.


초기의 글들은 카이로의 이국적인 생활, 카이로 한국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경험들, 학교 스쿨버스 운전수 오마르와 파우지, 경비원 아흐메드, 청소부 라니야 등 학교에서 일하는 이집션들과의 소소한 일상들, 그곳에서 배우고 즐기기 시작한 골프(2004년 9월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2017년과 2018년 클럽 챔피언을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카이로의 전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가까운 유럽 여러 나라와 이스라엘, 요르단 등 인근 국가를 다녀온 여행 경험들을 글로 남겼다. 나름 중요한 일, 기억할 만한 일들을 기록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다시 살펴보니 매일 일기처럼 하루하루의 일상을 좀 더 자세하고 꼼꼼하게 기록해 두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 비가 잘 오지 않아 배수구 시설이 없어 비만 오면 물바다가 되는 카이로 >

4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2008년, 귀국 후에는 주로 책을 읽고 그 느낌과 생각을 나누고자 글을 썼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배들과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좋은 책을 공유하고,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 활동의 기록이 하나 둘 싸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블로그에 써 놓은 글을 수정하고 다듬어서 2017년 말에 독서에세이 『책의 이끌림(북랩, 2017)』 을 출간했다. 읽은 책들 중에서 나에게 많은 느낌을 준 책들을 소개하고, 그 책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지혜와 감동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책을 통해 느끼는 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의 감동을 통해 그 책이 또 다른 이의 손으로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았다.  

가끔 블로거를 들여다보며 이전에 쓴 글들과 사진들을 들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카이로 생활의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즐겁고 행복했던 느낌들, 해결점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밤을 지새웠던 사건들을 다시 접할 때마다 그 당시의 두근거림이 다시 내 몸에서 꿈틀거린다. 오래된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느낌이 이런 걸까. 블로그에 있는 글 하나를 옮겨왔다.


제목: 운전사 Mohamed(2006. 3. 23)

모하메드는 내 개인 운전사다.

나이는 서른 다섯, 아직 총각이다.

키는 나 보다 작은 165cm정도 인데 몸무게는 정확히 100kg이다.

제법 뚱뚱한 편이기는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그리 심하다고 볼 수는 없다.


내 차를 운전한지는 한 6개월쯤 된다.

원래 대사관에서 대사관 직원 개인차 운전을 하다가, 그 분이 귀국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다.

대사관 총무 서기관이 부탁을 하길래 쓰기로 하고서 지금까지 일을 한다.

영어도 조금 할 줄 알아서 의사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다.

카이로의 길도 아주 잘 알아서 별로 막히는 법이 없다.

주소만 알려 주면 어디든 찾아간다.

또 버스운전 면허도 없는 놈이 버스 운전도 잘 한다.(개인 운전사를 쓰는 이유 중에 하나가 비상시 학교버스 운전)

싹싹하고 운전도 잘 해서 카이로 떠날 때까지 일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근데,

요즘엔 고민이다.

2월에는 엄마가 아프다고 며칠, 그러다가 자기가 아프다고 며칠 결근을 했다.

한 달에 일을 반도 안 해서, 도저히 월급을 다 줄수가 없어 반만 주려다가 200파운드만 깎고 줬다.(월급이 800파운드, 한화 15만원 정도)

그랬더니 No problem하면서도 구시렁된다.

이집션들은 아무리 친절하다가도 돈이 관계가 되면 싹 변하는게 특성이다.

이번달에는

급히 엄마(당뇨로 고생함)  약을 사러 간다고 하더니 반나절,

다음 날은 카이로에 약이 없어서 알렉산드리아에 있다고 결근,

다음 날은 전화도 없더니, 학교버스 운전사가 대신 전하길,

여동생 남편을 두들겨 패서 경찰서에 잡혀 있다고 또 결근.


어제, 오늘 일하더니 오늘은 합의금을 줘야 한다고 300파운드를 가불을 해 달란다.

그렇지 않으면 잡혀간다고.

몇 년을 일 하면서도 집에 저축해 놓은 돈이 하나도 없다는 게 한심하기도 하고,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형편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고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조상들의 우수함을 전혀 물려 받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사람들을 보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근데 저 놈을 어찌하지...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을 드러내어 놓는 일

『매일 아침 써 봤니?(위즈덤하우스, 2018)』에서 김민식 PD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중에서 일부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낸다고 한다. 그가 말하길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부담이 없고, 일로서 하는 게 아니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사 출판 기자나 출판사에서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것도, 리뷰를 쓰는 것도 모두 일로 하는 것이니 즐기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말에 공감이 된다. 의무감이 생기면 즐기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무런 부담도 없이 마냥 즐겁기만 할까?

 

한 편을 글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는 것은 자신을 내어 놓는 것이다. 원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포장하기도 하고,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부분을 일부 가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한순간이다. 블로그에 올려놓은 많은 글에 남겨져 있는 단어와 문장들, 문장들 사이사이에 스민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은 결코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블로그든 책이든 신문이든 세상에 글을 내어 놓는 일은 엄청난 부담이 되고 두려운 일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 길, 2015)』에서 그도,  '글쓰기는 재주만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논리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집, 미움받기를 겁내지 않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니 어찌 즐겁기만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해서 세상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어찌 된 일인가? 엄청난 부담이 되고, 두렵고 그래서 미움받기를 겁내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인데 말이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에서 밝힌 글을 쓰는 이유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는 그 이유를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 네 가지라고 했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이기심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미학적 열정 때문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역사적 충동이 글을 쓰는 또 하나의 동기가 되며, 마지막으로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이 동기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쓴 『동물농장(1945)』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한다. 그의 주장처럼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다(내가 글을 쓰는 동기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첫 번째가 제일 강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움찔함). 글(책)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어떤 귀신에게 이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힘든 일이지만 안 할 도리가 없다는 거다.

< 조지 오웰 >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그렇게 힘든 글쓰기를 김민식은 매일 한다고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글을 쓴단다. 특정한 주제를 정해 두지 않고, 그 날 그때의 생각과 느낌으로 쓴다고 한다. 잘 쓸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고려하지 않고 매일 그렇게 쓴다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공존, 2010)』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무의식의 비옥한 자양분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려면 무의식이 기선을 잡을 때 힘들지 않고 쉽게 글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터득하려면 평소보다 30분이나 한 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일어나자마자 말을 하거나, 조간신문을 읽거나, 전날 밤 치워 두웠던 책을 집어 들지 말고 글을 쓰기 시작하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내용이나 써라.'


도러시아 브랜디가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좋은 방법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을 김민식 PD는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책에서는 도러시아 브랜디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로 봐서, 아마도 그런 글쓰기 자세는 자신의 경험에 의해 터득하고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글쓰기 방법이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글을 써야 한다니...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방법이 아니다. 하긴 방법은 아는데 실천하지 못하는 일이 어디 글 쓰는 일 뿐이겠는가.

나 역시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고, 체력이나 정신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 나갈 생각이지만, 매일 글을 쓸 자신은 없다. 매일 글을 쓰고 또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럴수록 글 쓰는 게 즐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마음의 부담이 되는 것 같아 가끔 혼란스럽다. 그냥 지금처럼 쓰고 싶을 때 쓰고, 그러면서 좀 더 열심히 쓰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 현재의 자신에게 최선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고, 그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을 때, 주말 하루 여행을 다녀와서 그 감흥을 혼자만 누리기에 아까울 때, 우리 교육에 대한 걱정을 함께 하고 싶을 때 글을 쓸 것이다. 아침에 내린 커피 맛이 입안 가득 향기를 진하게 남길 때도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한다. 그 모든 것이 내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글로 남겨 놓은 흔적은 누군가의 인생이다. 그 인생이, 그 글을 읽는 사람의 것과 어쩌면 닮은 길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길이기도 할 테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그리고 살아갈 날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길잡이까지 되다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까? 아무렴 어떤가.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다시 곰곰이 들여다보게 한다. 들여다보면 안 보이던 것과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밝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체력은 약해지지만 감성을 더 풍부해진다고 하지 않나. 그러니 중년들이여 글을 쓰자. 나 자신과 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를 위해 내 삶의 흔적을 글로 남겨 보자.


일기장이나 나만의 수첩에 글을 남겨도 좋고, 핸드폰의 메모 앱을 이용해도 된다. 블로거를 만들어 쓴 글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면 더 좋다. '좋아요'에 목멜 필요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관심은 글쓰기의 보상이 된다. 보상은 다시 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 자신은 조금씩 성장해 갈 것이다. 글은 우리 자신은 성숙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강원국의 글쓰기(메디치, 2018)』에서 저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단지 글을 쓰며 사는 작가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나의 성장을 확인할 길이 없다.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의 나를 알 수 없고,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의 나를 기대할 수 없다. 글을 써야 내 생각, 내 감정이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글을 써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다.




참고도서

매일 아침 써봤니?, 김민석, 위즈덤하우스, 2018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생각의 길, 2015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작가수업, 도러시아 브랜디, 공존, 2010

강원국의 글쓰기, 강원국, 메디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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