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중년,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인생
"그 아저씨 진짜 멋졌어. 그때 생각하면 아찔해. 아르바이트 시작하자마자 바로 잘릴 뻔했다니까"
주말에 집에 와서 같이 식사를 하던 큰 애가 한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사연이 이랬다. 저녁에 수제 맥주 가게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단다. 주문받은 맥주를 쟁반에 담아 서빙을 하던 중이었는데, 맥주잔 하나를 탁자에 내려놓는 순간 무게 중심을 잃은 쟁반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손님 어깨로 쏟아져 버렸다고 한다. 서빙 초보였으니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얼마나 당황했을까. 죄송하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냅킨으로 옷을 닦아 드리려고 하는데, 그 아저씨가 하는 말이 이랬단다.
“아이고 그렇잖아도 오늘만 입고 내일 세탁소에 맡기려고 했는데...”
그러면서 옷에 묻은 맥주를 툭툭 털어 내면서 걱정 말라고 하더란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딸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르바이트 첫 주 대형사고를 치고 '아, 오늘 잘렸구나. 세탁비까지 물어주게 생겼네'라고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가 다시 환해졌을 거다. 그 짧은 시간에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가는 심정이었을 테다. 그 손님의 그런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평소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있는 상태가 아니면 그런 행동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가끔 KTX를 이용하기 위해 오송역에 간다. 세종시에서 오송역까지 승용차를 이용하게 되면 오송역 근처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유료 주차장은 위치에 따라 요금이 조금씩 다른데, 버스 정류장 옆 노천 주차장이 다른 곳 비해 조금 싸다. 주차료가 싸기도 하지만, 이 주차장을 이용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주차 요금을 징수하는 아저씨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오면서 주차요금을 정산하는데, 주차요금을 받으면서 그분은 꼭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밝게 인사를 건넨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늘 한결같으시다. 그냥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한다. 영수증과 잔돈을 내주면서 눈을 마주치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서 아주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일이라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지칠 법도 한데 늘 그렇게 인사말을 건넨다. 바로 옆 다른 차장에서 일하는 분은 그렇지 않다. 무표정하게 주차권과 카드를 받아 계산하고, 영수증과 함께 다시 돌려줄 뿐인데, 그 주차장의 그 분만 그렇게 하신다. 인사를 받는 사람도 밝게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 “수고하세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인사를 받아서 좋고, 또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서 좋다. 아마도 그분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힘들지만 즐겁게 일 하려고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자기 직업에 대해서도,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우아함을 가진 분이다.
어느 날 저녁,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갔다. 세종시 인근, 조치원 고복저수지에 가면 ‘구름나그네’라는 맛집이 있다. 예약을 미리 해 놓지 않으면 가끔 그냥 돌아서서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은 집이다. 그날도 가게 안에 손님이 가득했다. 예약된 자리에 앉았는데 홀 안이 시끌시끌하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남자 셋, 그 옆 테이블에는 여자 셋이 앉았다. 여자 셋이 앉은 테이블 쪽에서 그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무척이나 컸다. 세 사람 모두 목소리가 아주 컸고, 특히나 웃음소리나 너무 커서 귀에 거슬릴 정도다. 눈치를 줄려고 가끔 쳐다보면, 그쪽에서도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면 이쪽에서 불편해한다는 신호를 주는 줄 눈치챘으면 좋겠는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옆 테이블의 남자 셋은 우리보다 그 테이블 쪽에 더 가까이 앉았으니 더 불편한 상황이다. 그 사람들도 연신 여자 쪽을 쳐다보며 눈치를 준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여자들만의 유쾌하고 무지하게 큰 수다는 계속된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말을 걸어서 좀 조용히 해 달라고 직접 얘기는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불편함을 참고 얌전히 내 음식에 집중하는 게 나을까? 말을 걸었다가 봉변을 당하면 가만히 있는 것만도 못한 일이 될 테고, 가만히 있자니 모처럼의 외식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고,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에서의 예의도 없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조차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했을 테다. 자신이 불편한 줄은 알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모르기 쉽다.
우리는 흔히 '우아하다'라고 하면 밖으로 신체나 외모, 의상이나 몸동작 등 신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아함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2010년 비평 부분 퓰리처상을 비롯해 여러 저널리즘 상을 수상한 무용 비평가인 사라 카우프먼은 『우아함의 기술(2017, 뮤진트리)』에서 ‘우아함은 잘 조정된 매끄러운 움직임 혹은 겸손하고 관대한 태도이고, 자제심에서 나오는 편안함의 문제이며, 자신의 반응, 욕구, 관심을 다스리는 것이고, 매끄러운 상호작용과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잘 조정된 매끄러운 움직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체적 우아함을 말한다. '자신을 다스리며 자제심에 나오는 편안함'이 신체적인 것과 함께할 때 우아함은 더해진다. 여기까지는 사실 혼자만의 우아함이다.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신체적 우아함과 다른 사회적 우아함이다. 사회적 우아함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카우프먼은 무용비평가의 시선으로 영화배우 캐리 그랜트,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신체적 우아함을 예찬한다. 저자가 우아함의 전형으로 특별히 캐리 그랜트를 본보기로 거론하는 이유는, 그가 멋진 외모와 탁월한 신체 연기뿐만 아니라 늘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보다 다른 이를 빛나게 해 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체적 우아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회적 우아함의 중요성을 역설하고자 함이다. 그녀는 ‘현대인은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우아함의 공백기라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눈과 귀에 장치들을 연결한 채 마음이 저 멀리 가 있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물리적, 정서적으로 어떤 인상을 주는지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한다.
‘구름나그네’에서 보았던 그 여자 손님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지도, 자신의 욕구를 다스리지도 않았다. 반면에 수제 맥주집의 그 손님은 맥주가 자신의 옷에 쏟아지는 그 황망한 순간에도 아르바이트생의 처지를 생각할 줄 알았다. 그런 상황이 그에게는 '재수가 없어서라고' 가벼이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는 결코 그렇지 을 수 있음을 순간적으로 알아챘다. 이렇게 자신을 다스리며 자제심에서 나오는 편안함, 즉 사회적 우아함은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카우프먼도 ‘사회적 우아함은 신체적 우아함과 마찬가지로 노력을 요한다. 바로 이것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예의범절에 관한 책들의 요점이다. 올바르게 행동하려면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은 여타의 기술들처럼 하나의 기술이자 훈련이다.’라고 노력과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벽 교수는 『인재혁명 (2010, 해냄)』에서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천지인(天地人)이라고 했다. 그중에 인(人)은 남과 더불어 사는 능력인 인성을 말하는데, 인성은 생득적인 게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라 하여 실력이라고 강조한다. 카우프먼이 말한 사회적 우아함과 조벽 교수가 말한 인성이 그래서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더구나 그 인성이 타고난 것인 아니라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좋은 인성을 가지는 것, 사회적 우아함을 가지려면 의도적인 수고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우아하게 보이길 바란다. 어느 누가 우아하지 못한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라겠는가. 하지만 우아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과 훈련을 해야 한다는 점점 종종 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저 주어지지 않는 것인데도 말이다.
다행히 인간은 타고난 모방자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인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뇌 속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가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아함을 많이 보고, 자주 모방할수록 더 우아해질 수 있다. 주위에 우아한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우아해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나보다 우아한 사람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열심히 따라 하면 우아해질 수 있다니.
한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홀을 걸으면서 청소부와 주먹 인사를 나누는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청소부들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부딪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는 지위의 높고 낮음도, 권력의 많고 적음도 보이지 않았다. 즐거움, 유쾌함,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 사진 속에 또렷이 담겼다. 대통령이 청소부를 백악관의 동료로, 인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우아함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우아함은 그래서 더 멋있다. 사람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느끼고 모방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 시민들과 거리낌 없이 셀카를 찍고, 사고 현장을 찾아 아파하는 이들을 진심으로 보듬고, 약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손을 잡는다. 따뜻한 우아함이다. 이와 같은 정치 지도자의 우아함은 많은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다만 우아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아함을 보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내 것으로 완벽하게 붙들기 위해서는 편안한 움직임을 익히고, 자기 통제력을 기르고, 따뜻함을 나누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한다. 저절로 생기거나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히 마련된 자리나 행사장에서 보이는 특별한 우아함보다 수제 맥주집에서의 그 손님, 주차비 징수원의 우아함처럼 평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의 우아함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몸매와 화려하고 단정한 차림새의 외부로 드러나는 우아함보다, 다른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내면적인 우아함이 더 큰 우아함이 아닐까. 힘들고 아파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살아갈 마음을 조금씩 보태는 따뜻한 우아함이 절실한 때다.
어떤 이의 우아함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듯, 내가 보여주는 우아함도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간다. 그러니 고개를 들고,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보여주자. 나의 우아함을.
참고도서
우아함의 기술, 사라 카우프만, 뮤진트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