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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 생각

꼰대 생각 03_팬서랑 까맹이

by 배정철

이름이 까맹이다.

온 몸이 새까맣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렇게 부른다.

방콕한국국제학교에 같이 사는 고양이 이름이다.


2018년 어느 날에 학교에 나타났다고 한다.

행정실 직원들이 좋아하고, 아이들이 좋아해서 식구가 되었단다.

2019년 초에, 새로 부임하는 교장이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걱정이 많았단다.

다행히,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행정실 직원이랑 학생들에게서 점수를 많이 땄다.


녀석 생김이 한국에 두고 온 '팬서'랑 무지 닮았다.

물론 팬서가 까맹이 보다 훨씬 잘생겼다.

팬서나 까맹이 모두 겁쟁이라는 건 같다.

팬서는 아파트 밖을 못나가고, 까맹이는 1학년 상훈이가 오면 도망가기 바쁘다.


파견 나온 지 9개월만에 서울에서 팬서를 다시 만났는데, 기억을 잘 못한다.

안아주면 이상하게 울었다.

내 귀에는 "나 한테 왜 이러세요?, 놔주세요~"라고 들렸다. 그래서 무지 서운했다.

아내랑 딸들은 재밌다고 무지 웃었다.

나랑 숨바꼭질을 할 정도로 똑똑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까맹이는 요즘 강아지처럼 나를 따라 다닌다.

생선으로 갈아만든 간식을 얻어 먹기 위해서라는 걸 안다.

그래도 좋다.

아침에 출근하면 중앙현관 앞에 기다렸다가 뛰어온다.

교장실로 따라 들어와서 간식 달라고 떼를 쓴다.


까맹이는 간식을 얻어 먹기 위해 나를 따르고,

팬서는 자기를 두고 멀리 가버렸다고 나를 잊었다.

사람도 잘 해 주는 이를 따르고,

멀리 가면 잊기 마련이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마찬가지인 걸,

가끔은 나 혼자만 크게 서운해 한다.




<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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