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핸드폰 연락처에 적혀 있는 이름이다.
자기 아빠 전화번호에 어느 여중생이 이렇게 붙여 놨다고 한다.
어느 분이 강의를 하면서 한 얘기다.
어떻게 알았냐고?
딸이 핸드폰을 어디 뒀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했단다.
딸의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앉아있던 소파 틈 사이에서 소리가 나서 핸드폰을 들었더니,
'밥맛'에게서 전화가 왔더라고.
아, 자기가 딸에게 '밥맛'이었구나 하고 큰 충격을 받았더라는 얘기였다.
자식에게 어떤 부모로 읽히고 있는지 우리들은 아느냐고 그 강사가 물었다.
모두들 웃었지만, 확인하고 싶은 마음, 뭐라고 적혀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강의실에 퍼졌다.
나도 딸들에게 물었다.
누군덜 궁금하지 않겠는가.
나는 다행히 그냥 '아빠'였다. 그냥 아빠라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내에게도 물었다.
"뭐라고 저장해 놨어?"
'남의 편', 남편 두 글자 사이에 '의' 하나를 넣었을 뿐인데...
자기보다 바깥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의’자 하나를 끼워놨다.
센스쟁이라고 해야하나?
요즘엔 전화보다도 문자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카카오톡 문자가 올 때 알림음을 설정할 수 있는데, 나 같은 꼰대는 그냥 '카톡'이다.
그러니 알림음 만으로는 누가 문자를 보냈는지 알 수 없다.
열어봐야 안다.
어제저녁 식탁에서 아내가 자기에게 카톡을 보내 보란다.
'ㅇㅋ'라고 보냈더니, 아내의 핸드폰에서 '꼰대~' 한다.
여러 차례 문자를 보내니 '꼰대~ 꼰대~ 꼰대~'
들어보면 웃긴데, 슬프다.
이런 상황을 요즘 웃프다고 하나...
20대 중반을 넘은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유정이 폰에 아빠는 뭐라고 저장되어 있어?'
답이 왔다.
'로맨티스투'(로맨티스트를 약간 애교 있게 한 것으로 생각)
아내에게는 꼰대지만 딸에게는 로맨티스투다.
그럼 됐다.
<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