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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 생각

꼰대 생각 07_신종 상대하기

by 배정철

아침부터 마스크를 쓰고 출근해서 종일 쓰고 다녔다.
직원들에게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하라고 했다.
그래야 서로 마음이라도 편하지 싶어서다.

최근에 우리 학교 선생님이 겪었던 일,
공항에 친구 마중을 나갔다고 한다.
비행기가 언제 도착하나 확인하려고 도착 안내판을 보러 가는데,
옆 사람들이 줄줄이 피하더란다.
슬며시 모르는 척하고 피하면 그러려니 했을 테지만,
자기 가족들에게 큰소리로 피하라고 표를 내니...
(이런 건 전혀 모르는 외국 말이라도 희한하게 다 들린다)
한국 사람이 아니라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저들 눈에 한국인 중국인 구별이 되겠나.

이탈리아 어느 학교에서는 동양계 학생들 등교 중지를 시켰다고 하고,
유럽에서는 동양 사람들이 오면 모두들 피한다고 한다.
새로 생긴 인종차별이라고 해야 하나?
중국 사람이 아닌데도 그런 대접을 받는 게 억울하겠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을 겪거나 죽어가는 우한 사람 탓만 할 수도 없다.
그들도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인 건 마찬가지고,
일부러 만들어 퍼뜨리고 싶어 그랬을 리도 만무하니까.

어릴 때, 눈병이 유행한 적이 있다.
눈병에 걸리면 눈이 가렵고 빨개져서 금방 티가 났다.
눈병이 잘 옮는다 하여, 걸리는 아이들은 학교에 못 오게 했다.
그 녀석들이 빨간 눈알이 부러웠다.
그래서 증상이 있는 녀석의 눈을 내 손으로 만져서 내 눈을 비볐다.
내일 아침에는 제발 눈이 빨개지기를 기도하며 잤다.
그래도 눈병이 안 생겼다.
유행성 독감, 설사병뿐만 아니라 그 흔한 다래끼도 한 번 안 났다.
사스, 메르스가 맹위를 떨칠 때도 나랑은 별 상관없다고 아무 걱정도 안 했다.

근데, 이번엔 한국 가는 출장도 포기했다.
중국 사람들 천지인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것도,
6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불편할 자신이 없었다.
그 좋은 태국 마사지 샵에도 요즘엔 안 간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보이지 않으니 더 무섭다.
사는 동안 얼마나 더 많은 ‘신종’을 만나게 될지...

갈 때는 한 방에 훅 갈거라 큰소리치면서
솔직히, 훅~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
하긴 ‘신종’ 상대하려면 나도 새로운 게 있어야 하는데
오십 년을 넘게 쓴 구닥다리 몸으로 맞붙어서 이길 도리가 있나.
치사하지만 피하고 볼 일이다.



<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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