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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 생각

꼰대 생각 09_ 혹시, 내가 폭탄?

by 배정철

얼마 전 NBA의 전설적인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가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소식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현역 시절 그의 기록들도 소개가 되는데, 엄청나다.

20년간 LA 레이커스 한 팀에서만 뛰었고,
5번이나 팀을 NBA 정상에 올려놓았고,
18번 올스타에 선정, 두 차례 득점왕을 했다고 한다.
2006년 시즌 어느 경기에서는 81 득점을 기록한 적도 있다니 ‘전설적인’ 게 아니라 ‘전설’이다.
하지만 그 전설적인 농구단에 득점왕 코비만 있었던 건 아니다.

농구에서 득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농구를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듯,
흔히 '보고서를 잘 만드는 사람'을 '일 잘하는 사람'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득점을 많이 하는 사람만으로 구성된 팀의 승률이 높지 않듯,
보고서를 잘 만드는 사람만으로 조직된 팀이 업무성과를 잘 내는 것은 아니다.

2011년에 개봉된 영화 <머니볼>은 당시 타율 중심의 야구에서 출루율로 관점을 바꾸면서 반전을 이끌어낸다.
잘 치는 선수만 있는 야구단이 좋은 성적은 내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타를 치거나, 볼을 골라 나가거나, 몸으로 향해 오는 공을 열심히 피하지 않아도 출루율은 좋아진다.
그런 선수들을 모아놨더니 팀이 승리하고 승률이 높아지더라는 거다.

농구 팀에서도 득점, 리바운드, 공 가로채기, 어시스트, 블로킹 등 다양한 재능과 기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조직과 업무에 있어서도 그렇다.
보고서를 잘 만드는 사람도 필요하고,
보고서는 서툴지만,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을 잘해 내는 사람,
몸으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사람도 필요하다.
나처럼 별 재주 없지만, 가끔 갓 구운 식빵과 드립 커피로 향긋한 아침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좋다.

그런데 가끔은 보고서도 잘 만들고, 일처리도 매끄럽지만,
늘 조직에 갈등을 만들어 불안감을 초래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부서나 학교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 폭탄이다.
이런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건, 큰 사안 몇 개가 터지는 것보다 더 힘들다.

‘올해는 이런 폭탄이 내 곁에 제발 없기를...’ 하고 꼰대 같은 생각을 하다가
문득 ‘맥락의 원칙’이라는 걸 떠올리게 된다.
그 밉상도 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그 맥락 속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 밉상도 내가 있는 여기, 나와 관계된 맥락 속에서는 까탈스럽고 골치 아픈 사람이지만,
이 곳을 벗어나면 유쾌하고, 의리 있고, 자상한 친구이자 선배일지도 모르지 않나.
내가 여기서 보고 있는 그 사람은 단지 그가 가진 여러 가지 페르소나 중에 하나일 뿐일 테니까.
뿐만 아니라 나도 어느 맥락과 관계망 속에서는 ‘폭탄’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도 없지 않나?

째깍... 째깍... 째깍...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 초침이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도 모른다.
‘설마~?’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폭탄도 그렇다.
하지만 알면서도 사실,
쉽지는 않다.


폭탄 제거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꼰대 생각>은 중년의 소소한 상념과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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