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생각 10
태국의 2월은 건기다.
적어도 5월까지는 비를 보기 어렵다.
한국은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비를 가끔 만난다.
봄을 알리는 비구나,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추위도 끝나겠구나 싶은 날이 있다.
겨울비, 봄비와 관련된 노래도 많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박인수의 원곡은 애절하고, 음악대장 하현우의 봄비는 맑은 슬픔이다.
비 오는 날이 좋다.
오전엔 맑았다가 하굣길 즈음에 비가 오는 날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장면에도 가끔 나오는 그런 날.
내 어릴적도 그랬다.
엄마가 우산을 가져다주지 못해 그냥 비를 맞고 집으로 갔다.
그래도 영화에서 처럼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학교 현관에 서서 오지 않을 엄마를 우두커니 기다리지도 않았고,
엄마가 챙겨 온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지도 않았다.
친구랑 그냥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재밌었다.
이왕 비를 맞은 김에 운동장 한 켠에서 모래장난을 한참이나 하다가 가기도 했다.
일에 바쁜 엄마는 나의 젖은 모습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교사 시절엔 비 오는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게 좋았다.
마사 깔린 운동장에 드문드문 생긴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빗방울,
웅덩이를 피해 요리조리 흔들리는 아이들의 색색의 우산,
교실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물.
그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달콤한 믹스커피 한 잔이 제격이다.
커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문득, 먼 시간 저 쪽 어딘가에 있을 그리운 사람 생각도 난다.
방콕의 우기 때는 비가 많이 온다.
온종일 내리지는 않지만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한국의 장맛비처럼 쏟아진다.
길은 간간이 물에 잠기고, 그 많던 오토바이들도 고가 차도 밑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바람이 비에 젖은 한가한 도로를 휘젓고 다닌다.
우기가 오기 전, 4월의 태양에 학교 운동장의 잔디는 타들어간다.
그러다가 비가 내리면 야단법석이다.
밝은 초록 빛깔의 까까머리 잔디에 내리는 비는 예술이다.
우기 때는 하루가 다르게 잔디가 자라고, 정원사 나티는 바빠진다.
잔디깎는 차를 몰고 다니며 신나게 그림을 그려댄다.
지금, 2월의 방콕은 답답하다.
뿌옇고 흐리다.
올해는 미세먼지와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도 왔다.
얼마 버티지는 못할 게 뻔하다.
3~4월의 방콕 태양의 뜨거운 맛을 단단히 본 후에,
강력한 장대비에는 도리가 없을 테니까.
오늘 왠지 비 생각이 자꾸 난다.
비의 그리움과 슬픔과 추억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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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생각>은 중년의 소소한 일상과 상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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