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 글씨는 가까이에서도 팔을 쭉 뻗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돋보기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가끔은 음식을 먹을 때도 쓴다.
삼겹살이 잘 익었는지, 고등어 가시는 붙었는지 살펴야 한다.
정말로 폼 안 난다.
그럴 때는 스스로 늙어다는 느낌이 팍팍 온다.
돋보기를 쓰기 시작한 건 마흔 중반쯤이다.
2013년에 노안라섹 수술을 했는데, 그때 중학교 때부터 쓰던 근시 안경을 벗었다.
수술 후 사흘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수술을 망설이던 나를 끝내 부추친 아내를 엄청 원망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사흘이 지난 후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심봉사 눈을 뜬 기분이라고 할까.
안경을 벗었는데도 먼 것도, 가까운 것도 모두 잘 보였다.
세수할 때 콧등을 없는 안경을 벗는 행동을 한동안 하기도 했다.
심봉사 눈 뜬 세상은 딱 1년이었다.
그 후로 점차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하더니, 책을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돋보기를 하나 구입해 써 보니 글씨는 잘 보이는데 머리가 어지러워 오래 쓸 수가 없어 책을 멀찍이 놓고 봤다.
안과를 가서 검사를 해 보니 노안이라고 돋보기를 사용하라는 권고를 받고 안경점에 가서 맞췄다.
처음에는 한 개, 그러다 2~3개를 사서 책상에도, 직장에도, 차 안에도...
그러다가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항상 쓰고 다니는 안경과 달리 썼다 벗었다 하다가 어디 뒀는지 가끔 잊어버리게 된다.
요즘 가지고 있는 돋보기가 4개다.
그중 하나는 학교 책상 서랍에 있다. 비상용이다.
방콕에 올 때 2개 가지고 왔었는데, 하나는 금방 잃어버려서 와이프가 한국 다녀올 때 4개를 더 구입해 왔다.
그 사이 하나를 또 잃어버렸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목에 걸치고 다니기도 하고, 안경걸이용 목걸이에 끼워 걸고 다닌다.
영 폼이 안 난다.
불편한 것도 불편한 거지만 너무 많이 늙어 버렸나 싶어 젊은 사람들 보기에 민망하다.
노안이 와서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가까운 것이 잘 안 보이니 먼지가 많은지, 책상이 더러운지, 입고 있는 옷이 깨끗한지 덜 신경 쓰게 된다.
그만큼 잔소리도 적어진다.
나이 들어 갈수록 다른 신체 기능처럼 시력이 약해지는 이유는 이젠 눈에 보이는 대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살아온 날의 경험과 지혜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커지고 맑아졌을 테니
눈에 다 담아내지 않아도 세상살이가 그리 불편하지 않다는 것일 게다.
또 하나 좋은 건 같이 돋보기를 쓰는 아내의 깊어지는 주름이 잘 안 보인다는 거다.
노안의 나의 눈에는 360 사진 앱을 사용한 것처럼 아내는 30년 전 그 피부 그 얼굴이다.
노안인 아내의 눈에도 나도 그렇게 보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니 돋보기를 쓰고 오래된 연인을 또렷이 쳐다보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